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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 Jul 17. 2024

"너는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

[울림의 몸 이야기] 내가 들어온 말, 말, 말


"너는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


어릴 때 친척 어른이 내게 한 말이다. 나는 으레 공부 열심히 하라는 잔소리인 줄 알고 별 대꾸 없이 밥을 계속 먹었다. 그는 이어서 내 여동생을 보고 말했다. "너는 미스코리아 나가도 되겠다." 그제야 진짜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말이 아니었다는 걸 알았다. 어린 마음에도 이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던 건지, 그 장면이 몇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동생과 나는 꽤 닮았다. 그런데 버전이 좀 다르다. 동생은 예쁜 버전, 나는 좀 못난 버전. 가끔씩 우리 둘의 외모를 비교하는 남성 어른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사이가 좋았다. 거울을 보면서 동생을 질투하고 있기엔, 재미있는 일들, 하고픈 일들이 너무 많았다. 나는 오히려 친구들에게 "내 동생 예쁘다"라고 말하며 자랑스러워했다. 동생의 미모가 왜 내 자랑거리인지 모르겠지만 마흔이 넘은 지금도 그런다. 사람들과 대화하다가 동생 이야기가 나오면 팔불출처럼 칭찬을 한다. 어릴 때 들었던 말대로 공부는 내가 조금 더 잘했다. 아마 그래서 콤플렉스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동생이 잘난 부분이 있듯이 나도 잘하는 게 있으니까, 우린 조금 다를 뿐이니까 괜찮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초등 시절에는 뛰어노느라 외모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때 사진을 보면 엄마가 복직하시면서 머리를 예쁘게 묶어주지 않기 시작한 시점을 정확히 알 수 있다. 4학년 이후로는 산발 머리의 망나니에 패션 테러리스트가 늘 사진에 등장한다. 그래도 친구들 중 누구도 내 외모를 지적하며 놀린 적은 없다. 친구 사이에 외모를 지적하기 시작한 건 중학교 때부터였다. 갑자기 똑같은 교복을 입고, 귀밑 3cm 똑 단발을 하고, 색깔 있는 운동화도 굽 높은 학생화조차도 신을 수 없는 중학생이 되자 역설적으로 얼굴과 몸매가 더 부각되기 시작했다. 2차 성징이 오고, 남녀 분반을 해놓았고, 이성에 관심이 생길 때라 더 그랬을 터다.


중학교 때 친구들에게 들은 말은 이런 것들이다. "너는 이마가 운동장이니까 꼭 앞머리를 내려야 돼. 바람이 불어도 절대 이마가 보이지 않게 앞머리를 손으로 누르고 다녀." "너 다리 모양이 이상하다. 다리가 일자가 아니네." "너는 몸에 비해 다리가 굵다." "너는 가슴이 너무 작다." "너는 나중에 꼭 쌍꺼풀 해야겠다. 왜 쌍꺼풀 테이프 안 붙여?" "너는 눈썹이 너무 없다. 왜 안 그려?" 나를 싫어해서 괴롭히려던 게 아니라 절친들이 악의 없이 한 말이다. 나 역시 그 친구들에게 아무 생각 없이 외모 품평 또는 지적을 했을 거다. 문제라고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문제의식이 없었다고 해도 외모에 대해 들어온 나쁜 말들은 안에 차곡차곡 쌓여서 수시로 나를 공격했다. 여기가 문제야, 여기가 예쁘지 않아, 나는 부족해. 외모 말고 다른 장점이 많이 있었고, 스스로도 그걸 잘 알고 있었기에 우울해하거나, 더 나은 외모를 가지기 위해 애쓰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예쁜 친구 앞에서는 괜히 주눅이 들었다. 패션잡지가 유행하던 시절이라 이대 앞이나 압구정에 가면 길거리 패션을 찍는 기자들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내 친구들은 한 번씩 다 찍혀서 잡지에 실렸지만 나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친구가 주목받을 때 옆에서 기다리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스무 살 이후에 나이트에 가면 친구가 웨이터에게 손목 잡혀 부킹 다녀올 때 자리를 지키는 것도 금방 익숙해졌다.


공대를 다니는 동안에는 여자 친구들이 거의 없어서 편했다. 몇 명 안 되는 여학생들끼리 서로 외모 품평을 하거나 경쟁할 필요도 없었고, 대다수를 차지하는 남학생들은 내 헤어스타일이 어떤지, 어제 입은 티셔츠를 또 입었는지 등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가끔 여학생들 따돌리고 자기들끼리 여대 학생들과 개강파티나 미팅 등을 하긴 했지만, 여름에 CC인 남친과 손잡고 걸어가면 뒤에서 "네 다리가 남친보다 굵다"고 놀리곤 했지만 딱 그 정도였다. 다들 외모에 별다른 관심이 없어서인지 외모 때문에 부족하다는 평가를 듣는 일이 대학 시절에는 거의 없었다. 


한 번은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남자 사람 동생이 술을 사달라고 학교 앞에 찾아왔다. 늘 다니던 차림으로 나갔더니 "누나, 여자는 피부 화장에 눈썹이랑 입술은 발라주는 게 예의야."라고 말했다. 주변에서는 못 듣던 말이라 조금 놀랐고 그러냐고, 내가 원래 예의가 없다고 웃어넘겼다. 그런데 그 말이 내 안에 남아있다가 첫째를 낳고 육아 동지들과 수다를 떠는 중에 불쑥 튀어나왔다. 화장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파운데이션에 눈썹, 입술까지는 발라야 예의라던데 나는 예의가 없어서 그것도 안 하고 다녀."라고 말했는데 듣고 있던 육아 동지들이 화를 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여자는 화장을 해야 예의라는 말을 누가 만들었으며, 대체 예의가 뭐냐고. 화장이랑 무슨 관계냐고. 나는 십수 년 전 알던 동생의 발언에 대해 전혀 문제를 느끼지 못했기에 별생각 없이 옮겼다가 뜻밖의 반응에 당황했다. 


그제야 생각해 보니 과연 문제적 발언이었다. 왜 남자들은 로션 하나라도 바르거나 말거나 누구에게도 평가를 당하지 않는데 여자들은 어디까지 화장해야 하는지에 대해 남이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걸까. 지금은 사회적으로 인식이 많이 바뀌어서 저런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도 줄었을 것이고, 누가 했다고 해도 듣는 사람이 바로 반박을 하거나 속으로 '손절'을 할 것이다. 그 당시 인기 있던 드라마를 지금 보면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깜짝 놀라곤 하는 것처럼 당시엔 문제를 느끼지 못했던 말이 지금은 불쾌한 발언이 되기도 한다. 그만큼 페미니즘에 대해, 다양성에 대해 인식이 높아졌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다. 문제는 뭐가 잘못된 건지 알기도 전에 너무 많은 말들을 들어왔고, 또 내면화해 왔다는 점이다.         






꿈을 펼치겠다고 대학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하지 않고 방송 아카데미에서 방송 연출을 배웠다. 이제 사회인이 되어서일까, 방송계라는 특성 때문이었을까.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이 아닌데도 현직에 있는 PD들은 수시로 지망생들의 외모 품평을 했다.  예쁜 여성 수강생한테는 꼭 시험 잘 봐서 우리 회사 들어오라고 다정하게 말하다가, 꾸미지 않은 여성에게는 머리도 좀 예쁘게 하고 화장도 하라고 나무랐다. 나도 ‘츄리닝’ 입고 다니지 말라고 여러 번 지적을 받았다. 방송사 면접에서 떨어졌다고 말하자 '어떤 부분을 더 준비해 봐라'가 아니라 "그렇게 하고 다니니까 떨어지지."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남자 수강생들은 대부분 트레이닝복이나 반바지에 '쪼리' 차림이어도 누구도, 단 한 번도 지적받지 않았다.


계약직 조연출로 일을 시작했다. 아카데미에서 듣던 외모 품평은 현장에서 듣는 것에 비하면 애들 장난이었다. 방송계는 영상 매체 특성상 보이는 게 중요하고 출연자의 ‘급’을 매겨 출연료를 책정한다. 그래서인지 출연자가 아닌 사람을 대할 때도 외모에 대해 평가하거나 급을 나누려는 성향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 선배들은 대놓고, 스태프들이 다 있는 현장에서도 수시로 내 옷차림이나 외모를 비난했다. 촬영이나 편집을 못해서 혼나면 부족한 점을 고치고 보완하면 되는데 "출연자들도 예쁜 PD를 좋아하고 기억하는데 너는 어떡하냐"라는 말을 들으면 내가 어찌할 수가 없는 일이라 대꾸도 할 수가 없었다. 회식 때는 여성 연예인과 날 비교하는 농담을 했다. 기분은 물론 나빴지만 잘못되었다고 느끼진 않았다. 오히려 그 말이 다 옳다고 생각했다. '나는 뚱뚱하고 못생긴 게 사실이니까 어쩔 수 없지, 그렇지만 내가 연예인은 아니니까 상관없잖아?' 나 역시 선배들이 하는 그대로 연예인 출연자들의 외모를 품평하고 대상화하면서 정신승리를 했다. '난 카메라 뒤에 있으니까 괜찮아, 그렇지만 카메라 앞에 있는 당신들은 외모가 출중해야지.'라면서. 그런데 사실은 '어느 팀 조연출이 예쁘더라', '아니다 어느 팀 작가가 더 예쁘다' 등 카메라 뒤에 있는 여성들도 언제나 품평의 대상이었다. 


일을 그만둔 지도 10년이 넘었는데 유튜브 콘텐츠에 대해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말했다. 영상에 나온 여성이 대기업에 다니는 데다 얼굴도 예뻐서 조회수가 잘 나온 것 같다고. 방송 일을 할 때 하던 그대로, 나름 모니터링을 하고 성공 요인을 분석한다고 한 말인데 듣고 있던 여성들이 말이 없어졌다. 순간 얼굴이 화끈해졌다. 아직도 구닥다리 외모 품평에서 벗어나지 못했구나, 심지어 문제의식 없이 그걸 입 밖에 내다니, 너무 부끄러웠다. 곧 실수했다고 사과를 했고, 다들 나를 나무라지 않고 넘어갔지만 꽤 오랫동안 이불킥을 하며 곱씹었다. 


살면서 들어온 말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어느새 내 생각이 되어 버렸다. 여성은 어떠해야 돼. 그래야 예쁜 거야. 예쁜 여성만이 인정받을 수 있어. 그런 말들은 여성이면서도 다른 여성을 동료 시민이 아닌 품평 대상으로 보게 만들었고, 나 스스로에 대해서도 자책할 이유가 되었다. 먹는 걸 좋아하지만 불룩 나온 뱃살을 혐오하고, 움직이기 편한 옷을 좋아하지만 핫하다는 장소를 갈 때면 주눅이 들고, 예쁘고 날씬한 그녀들을 동경하지만, 나는 외모 가꾸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거라며 자위한다. 실은 외모 경쟁에 승산이 없다는 걸 알고 참전하지 않으려는 거지만. 예쁜데 공부도 잘해, 성공도 했어, 그런 여성은 너무 밉다. 경쟁조차 해볼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책 몇 권 읽는다고 사라지는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잘못이라는 것을 인식하지만 그래도 마음속으로는 계속 외모 품평을 한다. 예쁜 동생은 미스코리아 나가고 나는 공부 잘해야겠다는 말을 들은 그날부터 주욱 그렇다.


[울림의 몸 이야기] 내가 들어온 말, 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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