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의 몸 이야기]
아팠지만 해결이 됐고, 그 뒤로는 괜찮았으니 좋게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다시 돌이켜보니 이후에도 병명은 모두 달랐지만 오랫동안 병을 키워서 의사에게 "그동안 어떻게 참았냐", "이렇게 심각한데 안 아팠냐"는 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다.
고 3이 된 후엔 자주 배가 아팠다. 아직 겨울이었던 어느 날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다리가 풀려 주저앉을 정도의 복통이 찾아왔다. 잠시 동안 숨을 못 쉴 정도로 배가 아팠다.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통증이 처음이었기에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몇 분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괜찮아졌다. 그래서 그 길로 친구를 만났고 한참 놀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로는 종종 배가 아팠다.
복통의 양상은 같았다. 아픈 순간에는 허리를 피지 못할 정도로, 식은땀이 나고, 숨을 못 쉴 만큼 극심한 고통이지만 몇 분이 지나면 다시 멀쩡해져서 일상을 이어갔다. 동네 내과에 가면 의사는 "맹장은 아니고 고 3이라 신경성 복통이다"라며 진통제를 처방해 줬다. 하지만 약을 먹어도 통증은 나아지지 않았다. 배가 아플 때는 선생님들이 보기에도 심각해 보였기에 자주 조퇴를 할 수 있었다. 조퇴를 하면 병원에 갔다가 약을 타서 집으로 가서 쉬었다. 그러다 나아지면 독서실에 가기도 했고, 좀 더 컨디션이 좋은 날은 당시 좋아하던 젝스키스 멤버 고지용을 보러 갔다. 신경성이라면 기분이 좋아지는 일을 해야겠다는 나름의 논리였다.
2학기가 되었는데도 복통은 가실 줄을 몰랐고 오히려 더 심해졌다. 주변에서는 역시 신경성인 모양이라고, 수능이 가까워지니 스트레스가 더 심해서 아픈 거라며 대수롭지 않은 듯 넘겼다. 듣는 소리가 늘 그렇다 보니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꾀병이구나, 하고. 그렇지만 엄마는 달랐다. 몇 달째 배가 아픈데 동네 내과에서는 신경성이라는 소리만 하고 나아지질 않으니 무슨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일찍 퇴근하신 날에 내게 조퇴를 하고 큰 병원에 가보자고 하셨다. 담임 선생님은 그동안 조퇴가 너무 많아서 더는 안 된다고 '외출증'을 내주셨다. 나는 교복을 입고 엄마를 만나서 따로 건물이 있는 '큰 병원'에 갔다.
언제부터, 어떻게, 얼마나 아팠는지 이야기를 듣고 이런저런 검사를 하더니 의사는 다급하게 "당장 수술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병명은 맹장염이었다. 동네 내과에서 늘 아니라고 하던 바로 그 맹장이었다. 나는 조퇴가 아니라 외출이기 때문에 다시 학교에 가봐야 한다고 말했다. 의사는 기가 차다는 듯 "당장이라도 터져서 복막염 되기 일보직전"이라며 호통을 쳤다. 학교에 전화를 걸어 수술을 하게 되어 다시 못 가게 됐다는 말을 전했다. 엄마는 진작 큰 병원에 와볼걸 괜히 내과에 다녀서 엉뚱한 약만 먹였다고 속상해하셨다.
교복에서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나니 모든 게 정신없이 빠르게 진행됐다. 정말 응급상황이었던 모양이다. 의사는 내게 많이 아프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맹장염이 이 정도면 통증이 상당했을 거라고. 책이나 미디어를 통해서 맹장이 터지면 데굴데굴 구를 정도로 아프다고 들어왔기에 몇 분간 숨을 못 쉴 것 같은 통증이긴 했지만 데굴데굴 구를 정도는 아니어서 맹장은 아니라는 동네 의사 말을 믿었다. 누워서 수술실에 들어가면서 '고 3이라 공부하기 싫어서 꾀병 부린 게 아니라 진짜 아픈 게 맞았구나' 하는 생각에 왠지 안도감이 들었다. 내 아픔이 의사에게 아픔이라고 인정받으니 뭔가 당당해지는 느낌이었다.
수술은 금세 끝났다. 마취에서 깨면서 아프다고 많이 울어서 부모님이 속상하셨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전해 들었다. 병실에는 작은 브라운관 TV가 있었다. 4인실이었는데 그 작은 화면을 환자와 보호자 모두가 함께 봤다. 고 3이라 그동안 실컷 못 보던 TV를 당당하게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뮤직뱅크>도 보고 그동안 참고 있던 드라마 <가을동화>도 봤다. 친구들은 만화책을 수십 권 빌려서 면회를 왔다. 고 3이라 양심상 만화책도 거의 안 보고 있었는데 회복 기간이라는 핑계로 누워서 만화책을 실컷 봤다.
10대의 회복력은 무서울 정도였다. 보통 맹장을 떼어내는 개복 수술을 하면 일주일 정도 입원한다는데 내 회복 속도를 보더니 의사는 3일 만에 퇴원하라고 말했다. 학교에서는 일주일 동안 입원하는 줄 알고 있기에 남은 4일 동안은 집에서 만화책을 마저 보며 쉬었다. 며칠 후 실밥을 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네 만둣집에서 만두를 먹고 멀쩡히 걸어서 돌아왔다. 수능 한 달 전, 꿀 같은 일주일 간의 휴식이었다.
한 가지 아쉬웠던 건 당시 우리 학교에 <도전 골든벨> 촬영을 오게 되어 출연 신청을 해서 제일 앞줄 자리를 받아놨는데 딱 수술한 다음 날이라 출연이 무산되었다는 점이다. A4 크기 갱지에 한 장 가득 어떻게 장기자랑을 할지 빼곡히 써서 내서 받은 자리였는데 아쉬웠다. 나중에 TV로 친구들이 틀리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공영방송에 출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다니, 맹장이 왜 하필 그때 터졌을까.
회복 후 학교로 돌아가니 수능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고 눈 돌릴 틈 없이 공부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수술과 입원이 리프레시가 되어 집중이 잘 됐다. 이제 배도 아프지 않으니 개운했다. 컨디션이 좋았던 덕분인지 평소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던 좋은 점수를 받았다. 아팠지만 해결이 됐고, 그 뒤로는 괜찮았으니 좋게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다시 돌이켜보니 이후에도 병명은 모두 달랐지만 오랫동안 병을 키워서 의사에게 "그동안 어떻게 참았냐", "이렇게 심각한데 안 아팠냐"는 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다. 내 몸의 신호를 빨리 알아차리지 못하고 병을 키우는 패턴이 10대 후반에 이미 시작되었다는 걸 글을 쓰면서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