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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리제 본느 Jun 18. 2020

혼자가 될 준비

처음 하는 이혼 준비

“엄마 이거 내일도 놀 거야! 치우지 마!”

“응. 그러자” 

 

거실에 아이들이 책과 블록으로 복잡하게 만든 자신들만의 성을 절대 치우지 말라는 말을 그대로 들어줄 수 있어서 나도 아이들도 기분 좋게 잠자리에 들었다. 아이들을 재우고 어둠이 내려앉으니 마음속에 있던 미움과 증오가 불타오르며 나의 잠을 밀어내었다. 아이들에게 핸드폰 불빛이 가지 않도록 등지고 누워 구직 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이력서를 넣은 곳에서는 늘 연락이 왔기에 자신 있게 여러 곳을 스크랩해놓고 그곳과 가까운 곳의 원룸들을 검색했다.  

 

‘무슨 이렇게 작은 원룸이 보증금이 5000이나 하는 거지’

‘100만 원이 넘는 월세를 주고 나면 시터 비용은 얼마로 해야 하나’

‘근처 어린이집을 보낼 곳이 있을까’  

 

이혼만이 나의 행복을 되찾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시물레이션을 백번이고 스무 번이고 해 봤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당장 나가서 살기에는 경제적인 준비가 너무 안되어있었다. 거실로 나와서 노트북을 켜고 다이어리를 옆에 펼쳐놓았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며 엄지손톱 옆의 굳은살을 계속해서 뜯어냈다. 답이 없는 이 검색을 한 달이 넘게 하다 보니 이젠 조금 지쳐온다.  

 

‘당장 내일 카드값과 대출 이자가 나가야 하는데 어쩌지’

‘엄마 월급 드릴 돈이 부족한데’ 

 

오른쪽 엄지를 다 뜯어내고 왼쪽 엄지의 살을 다 뜯어냈는데도 계속 뜯고 싶었다. 

방법이 영 없는 건 아니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남편에게 굴복하는 것. 우습지만 나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나를 지키기 위해 넌덜머리 나는 그의 가부장적인 가치관에 나를 맞추는 게 지금 상황에서는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억울하고 분한 마음은 잠시만 저 깊은 바다 밑 어둠 속으로 넣어두기로 하자. 


지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건 내가 홀로 서기를 하기까지의 준비 시간. 준비를 하다 보면 아이들이 조금 더 커서 말이라도 제대로 할터이니 그때 어린이집을 보내면 되겠다. 내 진심은 그렇지 않지만 겉으로라도 철저하게 남편을 속이고 내가 그의 가치관에 맞춰 살기로 굴복하면 남편은 받아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것도 남편이 나에게 굴복하는 것이었으니 남편 역시 마찬가지겠지. 그는 생각보다 원하는 게 단순한 사람이지만 그걸 맞춰주기가 소름 끼치도록 싫었다. 그렇지만 지금 나에겐 방법이 없다.


딱 2년만 남편을 속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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