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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리제 본느 Jun 05. 2020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가 나간 것인가 내가 내보낸 것인가



"그냥 우리 이혼하자."


나는 사고의 기능이 사라진 빈 껍데기였기에 매일 이혼 하자는 말만 반복했다. 남편이 내 인생에서 사라지는 것 만이 내가 숨을 쉬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대화 없이 서로를 유령처럼 바라보며 오랜 기간을 지냈고, 나는 나를 무시하는 남편이 지긋지긋했다.


"이혼 서류 꼭 프린트 해오길바래"


남편은 늦은 퇴근길에 내가 보낸 이혼 서류를 뽑아서 집으로 들고 왔다. 나는 긴 감정싸움으로 좀 지쳐있었다. 이 상황에서 제발 그만 벗어나 쉬고 싶었다. 남편의 눈에는 여전히 차갑고 검은 증오가 가득했다. 우리는 아이의 양육권 문제를 식탁 위에 올려놓은 채 날카로운 기싸움을 시작했다.  


"내가 둘 다 키우던 당신이 둘 다 키우던 상관없어. 선택해."


나는 아이들은 서로 함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3살 2살 연년생이지만 이미 서로에 대한 존재를 느끼고 있다. 둘째는 형아 바라기였고, 첫째 역시 동생이 자고 있으면 심심한 듯 계속 찾았다. 가뜩이나 엄마 없이 혹은 아빠 없이 살 아이들인데 자기들끼리라도 함께 있어야 덜 외로울 것이라 생각했다.  


"난 한 명만 데려갈 수 있어. 공평하게 너 한 명, 나 한 명 데려가"


남편은 시어머니께 아이를 맡겨야 하는데 둘은 어머니 혼자 보기 버거우시니 둘 다 데려갈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게 어떻게 공평한 거야? 지금 이 상황이 물건 두 개를 하나씩 나눠 갖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나는 그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는 협의가 전혀 되지 않았다. 늘 그래 왔듯이 여전히 나의 생각은 옳고 너의 생각은 틀렸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자 남편은 당분간 혼자 나가서 살 원룸을 알아보겠다고 했다.


"애들은 어쩌고? 넌 혼자 나가서 편하게 살고 나는 애 둘 다 보면서 개고생 하라고?"

"네가 혼자 본다며?"

"차라리 내가 나갈게. 내가 일하면서 양육비 지급할 테니까 당신이 집에 남아."


말은 이렇게 해도 내가 무책임하게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나갈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남편이 나가도록 내버려 두는 일은 더더욱 할 수 없었다. 남편이 나가버리면 나에게 제대로 돈을 줄리가 없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혼자 월세를 구해서 나간다고 하니 눈이 뒤집히고 정수리로 피가 몰리는 느낌이었다.  


"너 같은 새끼에게 줄 배려 따위는 남아있지 않아. 우리 상황에 원룸을 구할 돈이 어디 있어? 당장 짐 싸서 어머니 댁으로 가!!"  


꼴도 보기 싫은 마음의 나는 내 생각을 그대로 내뱉었고 남편은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는다며 방으로 문을 닫고 들어갔다. 새벽 늦게까지 싸운 남편은 몇 시간 뒤 이른 새벽에 출근을 했다.

 



아침에 멍하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오후에 출근을 앞두고 아이들을 친정에 데려다 놓고는 잠시 쉬며 감정을 추스르던 중이었다. 점심 즈음 현관 비밀번호가 눌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남편이 갑자기 들어왔다. 베란다에 있던 커다란 여행 가방을 꺼내더니 옷장에서 옷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싸늘한 냉기를 내뿜으며 남편이 짐을 챙기기 시작하자 나에게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급습했다.


어제의 나의 패기는 어디로 갔을까. 어제까지 그렇게 독하게 싸우면서도 내 안에 어딘가에서는 남편이 나에게 용서를 구하며 잘못했다고 싹싹 빌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일까.
 
남편은 필요한 모든 것을 챙겼다. 아이를 낳고 첫 가족여행으로 발리에 갈 때 산 가장 큰 여행 가방에 물건을 차곡차곡 넣으며 정리하는 무표정한 남편의 얼굴은 냉정하고 차분했다. 나는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초조하게 주방 한편에 서서 이 상황을 불안해하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집에 아이 둘과 나만 남는다는 것이 조금 두려웠다.
 
'밤에 혹시 아이들 중 한 명이 아프면 나 혼자 어떡하지?'
'내가 혹시 아프면 아이들은 어쩌지?'


두려움 다음으로는 억울함이 몰려왔다.


'이렇게 무책임하게 가버리면 아이들은 나 혼자 감당하라고?'

' 혼자 편하게 살려고?'


남편이 집에 있을 때도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런데 도대체 왜 갑자기 혼자되는 것이 두려워지는 것일까.


큰 가방을 들고 남편은 방에서 나와 현관 앞에 내려놓았다. 신발장에서 마지막으로 운동화와 정장 구두를 챙기는 남편 뒷모습에다 대고 나는 불안함을 숨긴 채 딱딱하게 말했다
 
"애들은 어떻게 할 건데? 앞으로 어떻게 할지 말은 하고 가야지"
 
남편은 대답도 없이 나가버렸다. 남편이 나간 현관을 잠시 바라보다가 나는 그 자리에 스르르 주저앉았다. 텅 빈 신발장이 눈에 들어왔다. 곧 주체할 수 없는 감정들이 올라오더니 몸이 심하게 떨리고 눈물이 터져 나왔다.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된 걸까.


미친 사람처럼 소리치며 바닥에 엎드려 숨도 제대로 못쉬며 울부짖었다. 혼자되었다는 생각에 눈물과 콧물이 얼굴을 뒤덮었다. 한참을 울고 나니 몸 안에 수분이 눈물로 다 빠져나와 메마른 스펀지가 된 느낌이었다. 더 이상 나올 물이 없고 힘이 없어 현관 벽에 기대어 멍하니 거실을 바라보았다. 31평의 아파트가 텅 빈 느낌이었다. 내가 나가라고 했지만 그가 나를 버리고 떠났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이럴 거면 도대체 왜 결혼을 한 거야'

'나는 그렇다 쳐도 어떻게 아이들을 버리고 이렇게 갈 수 있어?'

'책임지지 못할 거면서 아이는 도대체 왜 둘이나 낳은 거야'
'왜 나를 사랑한다고 한 거야!!!'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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