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나간 조용한 집에서 아이들과 차분하게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예쁘게 웃는 아이들을 보며 잠시 막장 드라마 같던 남편과의 전쟁은 잊고 행복해지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밤에 아이들을 재우고 어둠이 내려앉으면 마음속에 있던 미움과 증오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밤에 아이가 울어서 물을 찾으면 화가 났다. 나는 밤에 이렇게 깨서 물도 주고 하는데 당신은 혼자 이 밤에 푹 자겠구나. 매일 밤 아이들을 양옆에 끼고 재우며 나는 새우잠을 자는데 그 쓰레기는 혼자 편안하게 자며 생활할 생각을 하니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았다.
그의 존재를 내 인생에서 도려내 버리면 편안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들 때문에 그를 온전하게 떨쳐 내기란 불가능했다. 아이들이 아빠를 가끔 이야기할 때, 주변 사람들이 남편의 안부를 물을 때, 친정 부모님이 남편을 위해 반찬을 가져다주실 때마다 숨이 다시 막혀왔다.
아이들은 언제나처럼 아빠 얼굴을 잘 볼 수 없기에 크게 신경 써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잊을 만하면 찾았고, 찾다 가도 금세 잊었다.
한 달 정도 지났을까, 남편에게 문자가 왔다.
"필요한 정장 놓고 온 게 있네. 가지러 가도 될까?"
"어"
"애들도 잠시 보고 올게"
"어"
무덤덤하게 대답하면서도 고민이 되긴 했다. 남편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아이들을 위해서 아빠와의 만남을 막는 건 할 수 없었다.
'애들은 보고 싶긴 하구나'
아이들까지 인생에서 도려내 버리는 쓰레기는 아니었네. 알 수 없는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일요일 저녁 7시 즈음 남편은 벨을 눌렀고 아이들은 아빠를 보자마자 환호성을 쳤다. 2살짜리 둘째는 물고 있던 쪽쪽이를 떨어트려도 아빠 품에서 떠나지 않았다. 새로 산 장난감 자랑을 하고 싶은 첫째는 아빠를 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주방에서 조용히 설거지를 하며 정리를 시작했다. 한 시간 조금 넘게 아이들과 방에서 시간을 보낸 남편이 나왔다.
"아빠 회사 갔다 올게. 그때까지 잘 놀고 있어"
남편이 말하며 인사를 하자 아이들이 둘 다 울기 시작했다. "아빠 출근하셔야 해, 치카하자" 인사 대신 남편을 등지고 이야기하고는 아이들을 데리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우는 아이들에게 양치를 시키는데 내 두 볼에도 눈물이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