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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리제 본느 May 26. 2020

이게 어디서 나이도 어린 게 꼬박꼬박 반말이야

나는 과연 몇 살까지 어린 취급을 받게 될까


가사도우미로 살기로 하기 5개월쯤 전의 일이다.


"넌 고작 5시간 정도만 일하잖아"


근무 시간이 5시간이라는 이유 하나로 남편은 늘 나를 파트타이머 취급을 했다. 그 보다 일하는 시간이 적고 월급이 적다는 이유로 살림도 육아도 온전히 나의 몫으로 떠넘겼다.


파트 타이머라고 해도 나는 하루에 쓰리잡을 뛰는 멀티 노동자였다. 가사노동 5시간, 육아 5시간, 그리고 강의 5시간. 남은 시간에 강의 준비. 오로지 휴식시간인 잠자리마저 3세 2세를 양쪽에 끼고 자느라 매일 쪽잠을 잤다.


내 인생에서 나라는 존재는 잊은 채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고 있었다.




“엄마 어서 퇴근하셔”

“거실만 정리하고 갈게. 네가 아이들 양치시켜”

“내일 아침에 이모님 오시는 날이야. 괜찮아”

“아범 오면 또 정신없다고 기절 할라”

“괜찮다니까!! 제발 그냥 어서 가셔 좀!”


아침에 엄마에게 아침부터 짜증 낸 게 미안했던 나는 강의가 끝나자마자 레이싱 하듯 달려왔다. 마음은 엄마를 어서 쉬게 해드리고 싶은 거였는데. 엄마까지 남편 눈치를 보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또 짜증이 났다.


"엄마 나 이거 읽어줘!"

"하나만 읽고 자자."

"싫어, 열개!"

"세 개."


돌이 막 지난 둘째가 깰 까 봐 조심스럽게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게 자고 있는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화장을 지울 겸 일어나서 나오니 시계가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다.


'미친 거 아냐'


현관부터 안방까지 그가 지나간 공간 모든 곳에서 알코올 냄새가 진동을 한다. 하루 종일 모아 두고 저장해 놓았던 짜증과 스트레스가 폭발해버렸다.


"또 술이야? 맨날 술이야? 술 없이는 일을 못하니?"

"내가 마시고 싶어서 마시냐? 내가 언제 매일 마셨냐?"

"나는 술 안 마시고 싶어서 안 마셔? 친정엄마가 우리 둘 중 하나라도 일찍 들어와야 일찍 퇴근하시지!"

"어머니 충분히 월급 드리는 거고 일하시는 거잖아"

"엄마는 언제 쉬셔? 이렇게 아침부터 불러서 늦게까지 일하는 직업이 어디 있어?"

"네가 아침에 애들 보고 어머니 늦게 출근하시라고 하면 되잖아"

"나는 아침마다 입에서 피 맛이나. 1시간이라도 눈 붙이고 일어나야 나도 일을 하지. 밤새 애들 한 번 이상씩 깨는데 얼마나 피곤한지 알아?! 당신이 애 한 명이라도 데리고 자던가!"

"나는 그럼 안 피곤해? 새벽에 나가서 밤늦게까지 일하는데 나는 언제 쉬냐? 이게 어디서 나이도 어린 게 꼬박꼬박 말대꾸야!"


그는 6살이 어린 나에게 늘 군번 타령을 했다. 그리고는 버릇없이 굴지 말라고 했다. 내 생각을 분명하게 이야기하는걸 늘 이렇게 말대꾸로 단정 지었다.  


34세였던 내가 늘 어린 취급을 받았으니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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