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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주 Jan 02. 2019

20년 만에 같은 상처 앞에 서다.

얼마 전 고등학교 졸업 밴드를 통해 아주 오래전 연락이 끊겼던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무려 20년 만이다.

중. 고등학교 때 그렇게도 붙어 다녔던 친구였는데 결혼하고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멀어져, 어디에 사는지조차 모르고 잊고 살던 내게 톡이 왔다.

"상주 맞니?"


와~ 톡을 보고 누군가 사진을 발견하고선 정말 소름이 돋았다. 그렇게 찾고 싶어도 연락이 닿지 않았던 친구의 소식에 잔잔했던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마치 오랜만에 남자 친구한테 서 연락을 받은 것 마냥 마냥 기쁘기 시작했다. 책을 출간한 후 어쩌면 나에게 연락이 올 수도 있을 거란 작은 희망의 기운이 닿았나 보다. 


너무도 반갑고 너무도 설레고 너무도 보고 싶어서 다음날 바로 약속을 잡은 우리는 그렇게 세월을 건너 다시금 학창 시절의 친구가 되어 만났다. 

우리만 그렇게 느끼는 걸까? 20년이란 세월이 무색할 만큼 친구의 모습은 그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지지배 어디 있었냐.'

참 여리면서도 씩씩하고 착했던 친구~

유도를 해서 남자 같은 면도 있던 그 친구가 한동안은 홈패션을 했다는 소리에 참으로 의아했다. 오히려 작가가 된 나를 보며 더더욱 깜짝 놀라는 친구다.



20여 년 동안 서로에게 있었던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 친구가 왜 유도를 하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단순히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라 생각했었는데 아빠 때문이라는 사실은 처음 알게 되었다. 술을 먹고 자신은 물론 엄마와 동생들까지도 괴롭혔던 아빠를 피해 집을 나올 이유를 만들었던 것, 그것이 유도의 시작이었다는 얘기에 마음에 서서히 요동이 일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엄마가 우리를 놔두고 집을 나가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는 말은 더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그 마음이 어떤 건지 잘 안다. 그 피하고 싶은 순간이 얼마나 숨 막히는지, 겁에 질려 눈을 감고 있던 시간들, 아빠를 피해 멀리 도망가 있어야 했던 그 순간들이 마치 주마등처럼 지나가기 시작했다. 나 또한 엄마가 우릴 두고 떠나지 않았다는 것에 너무 감사했다.    


그렇게도 씩씩하고 밝던 친구의 모습 속에 그런 상처가 있었다는 것은 듣는 내내 왠지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친구였음에도 전혀 몰랐으니 말이다. 20년이 지난 뒤에야 아무 거리낌 없이 지난 상처를 털어놓는 친구를 보니, 우리가 어느새 그만큼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어떤 일에도 이젠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나이가 된 것이었다.


우리 모두에게는 나만이 기억하는 상처가 있다.

그 상처가 켜켜이 쌓이기만 한다면 우린 그 누구의 상처도 보듬을 수 없다. 마음을 나눈다는 건 그 상처까지도 나눌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진정한 친구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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