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서관에서 발견한 한국 책 읽기
태평양 넘어 먼 나라 미국에 있는 도서관에서도 익숙한 한글로 된 한국 책들을 꽤 많이 만날 수 있다.
게다가 어디선가 들은 적 있는 책을 어느새 다 읽고 기증한 어떤 부지런한 한국 사람들 덕분에 기대치 않은 따끈따끈한 책을 만나는 행운을 누리게 되기도 한다.
그런 고마운 이들 덕분에 이 먼 미국에서 나는 좋은 책을 공으로 빌려 읽을 수 있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민음사, 2016
동네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갔다가 한국 도서 코너에서 제목에서 다큐적인 냄새가 나는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순간 지난가을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영화가 개봉되고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하다는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요즘 장안의 화제인 영화의 원작 소설을 미국 도서관에서 발견하다니.......
어느 부지런한 분이 벌써 책을 읽고 도서관에 기증까지 했을까?
고마운 마음으로 책을 빌려와 살펴보니 책의 출판일이 3년 전이다.
책이 출판되고도 여러 가지 논란이 있었다던데 나는 영화가 개봉된 후에야 이 책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 책의 무엇이 사람들의 논쟁거리가 되었나 궁금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82년생 김지영의 이야기는 예상했던 것과 같이 마치 김지영에 대한 일지나 다큐멘터리의 원고를 읽는 느낌이었다.
김지영이 태어나면서부터 보고 듣고 경험한 소소한 일상들이 당시 사회적, 시대적 분위기와 함께 잘 버무려있어서 나보다 십 년 정도 어린 김지영의 삶에서 나와 내 친구들 인생의 일부와 내 주변의 다른 여자애들이 자라온 삶을 파노라마로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도 비슷한 일을 겪었거나 주변에서 그런 일들을 겪는 여자 아이들을 보면서도 그냥 그런 거려니 또는 지나가는 과정이고 그런 게 우리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이려니 생각하며 넘겨왔던 것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그냥 넘어가도 괜찮은 것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자각이 들면서 흐릿해진 기억과 대충 보아 넘겼던 나의 지난 시간들이 내 마음을 콕콕 찔렀다.
* 김지영보다 열 살쯤 더 많은 한국 아줌마의 소설「82년생 김지영」에 대한 몇 가지 생각 *
괜찮다. 셋째는 아들 낳으면 되지.
나는 삼 남매 중 첫째다. 어릴 적 엄마가 우리 삼 남매를 데리고 버스를 타면 "아들 낳으려고 딸을 둘이나 낳았구먼."이라고 말하는 할머니들이 꼭 있었다. 특히 할머니들은 내 여동생을 보면서 그 말을 하곤 했는데 나도 그 말에 기분이 나빴지만 못 들은 척하곤 했다. 아마도 내 여동생은 그런 말들에 오랫동안 맘이 상했을 것이다.
남자애들은 원래 좋아하는 여자한테 더 못되고 굴고, 괴롭히고 그래.
이런 말과 생각, 그리고 그것을 용인하는 관습이 우리 사회에 일그러진 성차별이나 그릇된 성역할을 용인하게 만드는 것 같다. 심하게 말하면 성희롱이나 성폭력으로 이어져도 여자들에게 원인이 있었다고 보는 잘못된 사회적 분위기도 남자들의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용납하게 만드는 사람들의 이런 말들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남매를 둔 엄마로서 나조차도 가끔 아들의 짓궂은 장난에 딸이 화를 내면 무의식 중에 이런 말들을 내뱉기도 했음을 고백한다. 사실, 그런 편파적인 판정이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성별과 별개로 인간들에게는 지켜야 할 예절이 있는 것이다. 게다가 성별과는 별개로 소중한 사람은 더 아껴주고 보호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 되어야 한다.
남자가 1번이고, 남자가 시작이고 남자가 먼저인 것이 그냥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다.
정말 그렇다. 대부분의 집단에서 남자들에게 먼저 번호를 부여한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나 역시 그런 것이려니 받아들였다. 교사로 일하던 시절 우리 반 1번도 남자아이였고 남자아이의 번호가 22번에서 끝나 중간에 번호가 없음에도 여자 아이의 첫 번호는 41번이었다. 그리고 평생 신분증이라고 소중히 간수해 온 주민등록증에 박힌 뒷자리의 첫 숫자 "2"는 내가 여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이 된다. 그것이 이상하다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나 또한 남자가 먼저 오는 사회 분위기에 젖어 있었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자신의 인생을, 김지영 씨의 어머니가 된 일을, 후회하고 있었다. 길게 늘어진 치맛자락 끝을 꾹 밟고 선 작지만 묵직하고 굳건한 돌덩이. 김지영 씨는 그런 돌덩이가 된 기분이었고 왠지 슬펐다.
막내라서가 아니라 아들이라서겠지!
그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우리 엄마도 아들을 위해 딸들이 희생하고 아들이라서 특별한 대접을 받는 그런 시절에 자란 탓에 두 외삼촌만 대학에 진학하고, 엄마와 이모는 고졸학력을 가지고 계시다. 시골에서 자란 내 후배는 할머니가 아침이면 닭장에서 꺼낸 달걀로 프라이를 만들어 남동생 밥그릇에만 얹어주셨던 서운함이 자기 아이를 위해 계란 프라이를 만들 때에도 여전히 불쑥 올라온다고 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그 딸들과 함께 자란 아들들은 자신들이 딸들과 다른 특별한 대접을 받았던 것을 깨닫지 못하거나 기억하지 못한다.
이제 그만 마시겠다고 해도 여기 이렇게 남자가 많은데 뭐가 걱정이냐고 반문했다. 니들이 제일 걱정이거든. 김지영 씨는 대답을 속으로 삼키며 눈치껏 빈 컵과 냉면 그릇에 술을 쏟아 버렸다.
오래전 회식자리에서 꼭 남자 상사들 옆에 싫다는 초임 직원들을 앉히고 굳이 잔을 돌리는 중년의 남자 선생님들의 호기로운 표정과, 눈칫껏 술잔의 술을 적당히 처리하며 상사들과 거리를 만들기 위해 엉덩이를 들썩이던 회식자리가 기억났다. 지금은 억지로 부추기는 회식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내가 제일 싫었던 것은 회식 후 커다란 손에 이끌려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노래를 부르고 몸을 흔드는 것을 피할 수 없었던 노래방이었다.
내가 많이 도와줄게
나 역시 엄마가 되었다는 기쁨은 잠시, 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으로 살면서 집안 일과 육아에 대한 우리 사회 불평등에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강요하지 않아도 당연히 내가 감당해야 할 것처럼 인식되는 묵직한 집안 일과 육아에 대한 부담은 떨치기 어려웠다. 일하면서 어린 두 아이의 엄마로 전투적인 삶을 살던 그 시절, 나도 김지영 씨처럼 뱃속에 아이를 가지면서부터 내가 잃어야 했던 것과 함께 아이를 키우지만 별로 잃는 게 없는 것 같은 남편에 대해 화가 솟아오르곤 했다. 그리고 그런 일로 갈등이 생길 때면 하던 남편의 '더 도와주겠다'는 말, 그 말이 참 싫었다. 각자 직장이 있는데 집안일은 나의 일이라 전제하며 남편은 선심 쓰듯이 도와준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 그 말이 정말 싫었다.
지금은 적당히 포기하고 적당히 눈감아주면서 동지애로 사는 삶에 익숙해졌지만 아이 둘과 살면서 아등바등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날마다 부딪히는 실제 상황에서 나에게 찾아오던 김지영 씨와 같은 생각과 감정에 스스로 자책하기도 하고 남편을 원망하기도 하며 괴로워했던 시간이 지금도 기억난다.
동명의 '82 년생 김지영' 영화가 원작보다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더 많다, 영화 때문에 원작 소설이 다시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소설과 영화에 대해 여러 면에서 혹평이 적지 않다는 기사를 읽은 뒤에야 책을 읽었고 그다음에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 보는 내내 책과는 다르게 각색된 부분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지만 영화는 영화로서 관객을 만나야 하므로 또 다른 많은 고민들로 만들어졌을 거라 생각했다.
마지막에 재취업에 성공한 영화 속 김지영의 모습과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단면에 여전히 자신을 찾지 못하는 책 속의 김지영의 상황은 전혀 상반된 느낌이 든다.
요즘 내가 제일 싫어하는 단어, '맘충'이라는 말로 끝나는 소설 속 김지영의 마지막은 너무 아프고 슬펐다.
반면에 영화에서는 공유가 멋들어지게 육아휴직을 하고 정유미는 재취업에 성공해 해맑게 웃는다.
영화는 달라지는 한국 사회와 한국의 젊은 남편들의 모습, 그리고 사회의 편견에도 당당한 김지영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에게 희망을 주었을지 모른다.
반면, 소설은 우리가 지나온 현실을 담담하지만 솔직하게 담아내어 무심히 보아 넘기며 자각하지 못했던 사회의 일그러진 부분을 돌아보게 만들어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성 독자들에게 씁쓸하고 쓸쓸한 공감을 준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영화는 소설을 쓴 작가의 의도와 다소 거리가 있는, 너무 긍정적인 결말을 보여준 것이 아니었나 생각했다.
그럼에도 엄마와 아내로 살고 있는 나는, 소설보다 영화의 결말에 더 기분 좋았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딸을 키우는 엄마로서 영화의 결말이 현실이기를, 더 이상 82년생 김지영과 같은 인생을 반복하는 여성들이 없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사진 출처 : 영화 '82년생 김지영'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