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서관에서 발견한 한국 책 읽기
공지영 작가는 이제 그 이름만으로도 모두가 떠올릴만한 인상 깊은 책을 여러 권 쓴 훌륭한 재능을 가진 작가이다.
미국 도서관에서 공지영의 소설 중 많은 화제가 되었던 "도가니"를 집어 들었고 나는 도가니 속으로 빠져들었다.
공지영,「도가니」, 창비, 2009
오래전 ‘도가니’라는 영화를 우연히 보게 되었고 영화를 본 후에야 나는 그 영화가 공지영 작가가 쓴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것임을 알았다.
기회가 되면 소설도 읽어보고 싶다고 할 만큼 영화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내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광주의 인화학교에서 벌어진 끔찍하고 잔혹하게 장애학생들을 대상으로 벌어진 성폭력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 속에서 보는 내내 소름이 돋았다.
시간으로 무뎌져 잊고 있었는데 우연히 미국의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했고 예전에 기억을 떠올리며 책장을 넘겼다.
소설은 영화와 여러 가지 다른 점이 있었지만 그것은 소설과 영화라는 장르가 다르고 읽는 것과 보는 것이라는 독자나 관객을 만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일 것일 것이다.
그렇지만 소설로 표현된 진실은 더 끔찍했고 그 속에 나오는 나쁜 사람들은 더 잔인했다.
그리고 '도가니'를 영화로 보던 시절의 나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나와 다른 세계의 이들로 느끼며 살았다.
그러나 '도가니'를 책으로는 읽는 나는 매일 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부대끼며 살고 있었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 내내 영화의 장면이 떠오르면서 실화였다는 소설 속 이야기가 더 소름이 끼치도록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다가왔다.
문제는 고소가 된 걸 어떻게 학교에서 먼저 알았냐는 거야/지금 이 순간 그 애가 또 린치를 당하고 있다 해도 우린 속수무책인 거야.
듣다가 나도 몇 번이나 내 귀를 의심했어. 이 무슨 미친 …… 광란의 도가니야?
서울에서까지 기자들이 몰려들었고 텔레비전 뉴스마다 자애학원의 비리가 보도되었다. 시장에서 학교에서 관공서에서 인터넷에서 온 사방에서 자애 자애 자애……. 무진은 자애의 도가니였다. 정의는, 깊은 땅속에 묻혀 있던 부드러운 흙이 깊은 쟁기질에 얼굴을 내밀듯 솟아나서 세상은 그래도 살 만하다는 오래된 전설을 확신시켜 버리는 듯했다.
진실이 가지는 유일한 단점은 그것이 몹시 게으르다는 것이다. 진실은 언제나 자신만이 진실이라는 교만 때문에 날것 그대로의 몸뚱이를 내놓고 어떤 치장도 설득도 하려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이 세상 도처에서 진실이라는 것이 외면당하는 데도 실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면 있는 것이다.
나 그 아이들 그렇게 사랑하지 않아. 그래서 그러는 거 아니냐. 그런데 이건, 너무 아니야. 너무 아닌데 그걸 그렇다고 할 수는 없어서 그러는 거야.
그래서 그저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려 한 건데, 초장부터 이거 미안하게 됐어요.
그게 말예요, 목사님, 상식이 말이지요, 상식이…….
정말 미친…… 광란의 도가니 같아. 이건 말이 안 돼.
왜 세상에서는 착한 사람이 맞고 고문당하고 벌 받고 그리고 비참하게 죽어가나? 그럼 이 세상은 벌써 지옥이 아닐까?
그런데 얼마 전, 자애학원 사건을 접하면서 나는 깨닫게 된 거야. 어른이 되면 그 대답을 알게 되는 게 아니라, 어른이 되면 그 질문을 잊고 사는 것이라고 말이야.
어린 시절 어머니는 말했다. 하늘이 무섭지도 않은지, 하고. 그런데 이제 강인호는 생각했다. 그 무서운 하늘이 없을까 봐 무섭다고.
소설을 읽은 후 생각했다.
우리는 어머니의 격려에 힘입어 마지막까지 아이들과 함께한 영화 속 강인호, 나쁜 인간을 응징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강하고 정의로운 영웅을 기대한다.
하지만 사실은 아내의 간청에 못 이겨 말도 없이 무진을 떠나 아이들과 서유진에게 아무 소식도 전하지 못한 강인호가 우리가 만나는 현실일 수 있다.
정작 나였더라면 영화 속 강인호는커녕, 소설 속 강인호까지도 닿을 수 없어서 어쩌면 훨씬 더 빨리 무진을 떠났을 것이다. 그리고 광란의 도가니에서 울부짖는 자애의 아이들을 잊기 위해 눈과 귀를 닫은 강인호가 되었을 것이다.
옳지 않은 것에 부르르 떨 줄은 알지만 그것을 위해 성큼 발을 내딛지는 못하는 겁 많고 비겁한 사람이 바로 나라는 인간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책을 덮고도 한참을 저릿 거리며 솟아오르는 울분을 누르기 위해 창밖의 하늘을 향해 길게 한숨을 내쉴 뿐이다.
# 덧없이 붙여보는 단상
대한민국이 촛불로 뒤덮일 때, 몸은 미국에 있었지만 마음으로는 함께 초에 불을 붙였었다.
그때는 찬바람을 맞으며 초를 들고 거리로 나선 용기들에 감사하며 달라진 대한민국을 보게 될 거라 믿었다.
그러나 도가니에 나온 무진이라는 도시처럼 무엇이 진실인지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가 진짜라고 우기는 가짜 뉴스와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진실이라 믿는 사람들의 광란의 도가니가 되어버린 듯한 대한민국을 보면서 내 마음도 내 생각도 갈 길을 잃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