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서관에서 발견한 한국 책 읽기
이름이나 책 제목만 대면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들어본 적 있을 작가 박완서. 미국 도서관에서 책에 인쇄된 박완서라는 작가의 이름을 보자마자 나는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책을 펴 보니 작가가 등문한 지 10년 안에 쓴 70년대에 쓴 48편의 콩트가 담긴 책이었다.
박완서, 「나의 아름다운 이웃」 , 작가정신, 1995
작가의 말에 박완서 작가가 적은 것처럼, 반세기는 된 법한 콩트이기 때문에 지금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내가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을 통해 들었던 그분들 젊은 시절의 이야기이지만 곳곳에서 시대를 넘어서는 박완서 작가의 통찰력과 창의력 그리고 뛰어난 이야기꾼으로서의 재치와 위트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이 그들의 청년시절에 경험한 우리나라의 진솔한 삶의 모습을 엿보는 시간은 한 귀로 듣고 흘려들었던 그분들의 삶의 모습 구석구석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보는 기분이 들었다.
글에서 찾은 생각
<키 큰 신발>
그렇다고 이런 남녀 불평등에 대한 분노를 함부로 내색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여권 운동자 취급을 받을지도 모르니까. 우리 과 남학생들은 여권 운동자를 무슨 털벌레처럼 싫어하고 있었다. 아마 세상의 남자들도 우리 과 남학생들과 대송 소이하리라.
내가 어린이에서 어른이 되던 시기에도 여전히 이런 논쟁이 사회 여기저기에 남아있었다. 페미니즘이나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2018년 가장 '핫'한 검색어였다니 이 논쟁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제인 듯하다.
<마른 꽃잎의 추억 2>
나는 공허했다. 고생 고생해서 내 집을 장만하고 나니까 살림 재미는 이제부터라는 설렘은 고사하고 몸과 마음이 껍데기만 남은 것처럼 공허했다. 남부러울 게 없는 모모한 부인들이 거액 노름판을 벌이는 것도 혹시 이런 공허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미움보다는 이해가 앞서는 스스로의 마음에 소스라치면서도 좀처럼 그 공허감을 극복할 수는 없었다.
바라던 것을 기어이 이루고 났을 때 공허함만큼 사람을 외롭고 허무하게 만드는 것도 없을 듯하다. 이 산만 넘으면 행복할 것 같은데 그것을 넘고 보니 내 생각과 달라 여전히 행복하지 못하기도 하고, 가끔은 그럴 것을 알면서도 무모하게 지금 행복할 수 있는 시간들을 버리면서 미래의 행복을 위해 그 산을 향해 달려간다. 어쩜 뉴스에 오르내리는 연예인과 정치인들의 도를 넘어선 폐해들 또한 그런 스타가 된 뒤 또는 높은 지위를 얻은 뒤 오는 공허감을 메우기 위해 뭔가를 더 얻으면 그 공허감이 메워질 거라 기대하며 시작된 그릇된 행태일 수도 있다. 어찌 보면 성공 이후에 오는 공허감이 어떤 면에서는 사람들을 더 탐욕스럽게 만들기도 하는 것 같다.
<식구와 인구>
엄마는 가끔 이런 심각한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한 집안의 주부 노릇도 이렇게 고되거늘 만일 나라 살림하는 자리에 있는 양반들이 국민이란 걸 고루 나누어 먹여야 하고 지껄이고 싶을 때 지껄여하는 하는 사람의 입, 인구( 人口 )로 인식한다면 그 자리가 얼마나 고된 자리가 될 것인가 하는.
작가가 이 글을 쓸 때는 아마도 나라 살림하는 양반들이 ‘국민들이란 제 먹을 것을 위해 얼마든 사람을 버릴 수 있으며 지껄일 수 없도록 입을 막아두어야 하는 존재’로 치부하고 있었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이 짧은 콩트를 읽었더라면, 읽고 마음이 뜨끔했더라면 그 시절 국민들은 덜 아픈 세월을 지나왔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노파>
온종이 몸이 시렸다. 나는 가을비가 싫다. 봄에 비 한 방울 뿌리고 나면 산천에 한결 생기가 돌고 햇살도 도탑고 길어지건만 가을비엔 쓸쓸한 소명의 예감이 스며 있다.
봄비와 가을비를 짧지만 너무도 선명하고 실감 나게 표현한 이 구절이 마음에 와 닿았다. 마치 내가 가을비에 젖은 기분이 들만큼.
<외래어 노이로제>
처음부터 무슨 말인지 모를 때는 그래도 괜찮은데 아주 쉬운 말을 내가 이해한 뜻과 전혀 다른 뜻으로 쓰고 있는 걸 들을 때는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중고등학교 정도의 또래들이 저희들끼리 찧고 까불면서 조잘대는 은어 속어 따위를 들을 때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요즘 학생들이 인터넷이나 SNS에서 쓰는 말을 만날 때마다 내가 느끼는 것을 작가는 70년대 학생들을 보면서도 느꼈나 보다. 어느 세대나 십 대의 아이들은 은어와 속어를 생산해내는 특별한 재능을 갖게 되는 모양이다. 게다가 요즘 아이들이 사용하는 말의 형태와 의미는 내가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다른 말로 대치되어가나 사라져 버린 뒤일 정도로 빠른 속도로 변형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 나는 자신들도 곧 그 말이 있었다는 것조차 잊을 아이들의 그런 말들에 궁금해하는 것을 조금씩 포기하고 있다.
<노을과 양 떼>
전 지금 오래간만에 행복합니다. 가슴이 소년처럼 울렁입니다. 늙어도 행복할 권리만은 포기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아마도 작가가 이 글을 쓸 때는 노인과 행복은 함께할 수 없다는 생각이 보편적이었을 것이다. 박완서 작가는 70년대에 이미 요즘 젊은 노인들의 슬로건이 될 시대적 생각을 꿰뚫어 보고 있었나 보다. 요즘은 노인들은 젊다. 70년대의 '노인'은 늙은 사람을 말했지만 지금은 '노인'이란 말로 부를 수 있는 늙은 사람을 찾기 어렵다. 그 당시 노인의 연령이었던 사람들이 여전히 행복할 권리를 위해 자신에게 투자하며 젊은이들과 다름없이 자신의 삶을 전투적으로 산다. 어쩌면 더 열심히 활기차게 살아간다.
어느덧 중년이라 불리는 나이에 가까이 가고 있는 나는 그들을 보면서 생각하곤 한다. 나도 생명이 있는 순간까지는 행복할 권리만은 포기하지 않고 살고 싶다.
소설집에 나온 콩트 대부분의 소재는 남자와 여자의 맞선과 결혼 연령이 늦어지는 여자들, 월세방에서 아파트로의 이사,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벌어지는 일들 등이었다. 아마도 70년대의 화두가 여권의 신장으로 인한 결혼에 대한 생각의 변화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달라진 사람들의 생활이었던 모양이다.
박완선 작가의 "나의 아름다운 이웃"을 읽는 동안 오랜만에 내가 어릴 적 보고 들었던 동네를 거닐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 시간은 나에게 어린 눈과 귀로 보고 들었던 그들의 모습과 그들의 삶을 중년이라는 나이를 먹은 눈과 귀로 다시 돌아보는 추억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