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 (1)

미국 도서관에서 발견한 한국 책 읽기

by 날마다 소풍

제8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 「눈으로 만든 사람」과 「문상」,「고요한 사건」에 대한 짧고 좁은 나의 소견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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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미, 「눈으로 만든 사람」 , 문학동네, 2017


‘눈으로 만든 사람’은 조카인 자신을 성추행한 작은 아버지의 아픈 아들을 보름간 집에 데리고 있게 되면서 자신의 아픈 과거와 성조숙증을 앓고 있는 딸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현실 사이에서 힘겨루기를 하는 강윤희의 어느 겨울에 대한 이야기이다.

자신 때문에 과거의 트라우마와 싸우며 지금까지 질염으로 고생하는 조카에게 네 몸에 손가락밖에 넣지 않았는데 아들이 불치병을 앓게 된 것은 과한 벌이라는 말로 사과도 아닌 원망도 아닌 말을 그녀의 작은 아버지는 내뱉었다. 강윤희는 복잡한 심정으로 얼마나 살지 알 수 없으나 미래를 살고 싶어 하는 작은 아버지의 아픈 아들을 얼마간 맡게 되었고. 그 와중에 어쩔 수 없이 생겨난 작은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애틋함 때문에 그 아이를 미워할 수도 없게 되었다. 강윤희의 삶의 일부분을 읽으며 딸과 여자로, 그리고 어머니로 살고 있는 나는 그녀의 오래고 질긴 아픔에 마음이 아팠다.


이 애랑 저 애가 헤어지면 다음날은 저 애랑 그 애가 사귀고…. 그 아이들을 보며 강윤희는 언젠가 중학생이 될 백아영을 상상했다. 그러면 암울한 기분이 되었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어도 성폭력의 그늘에서 가해자가 될 확률이 많은 것이 남성이고 피해자가 될 확률이 많은 존재들이 여성이라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사실인 듯하다.

아들과 딸을 가진 나는 자라나는 아이들이 대견스러우면서도 가끔 나도 모르게 강윤희가 갖고 있는 것과 비슷한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기도한다. 부디 이 아이들이 그런 상처를 주거나 상처를 받는 아픔이 없게 하소서.




김금희, 「문상」 , 문학동네, 2017


이야기를 읽고 나서 저자에 대한 짧은 설명을 읽어보니, 얼마 전 내가 읽은 7회 젊은 작가상 대상작인 ‘너무 한낮의 연애’의 작가였다.

김금희 작가의 소설을 두 편 밖에 안 읽었지만 나는 이 작가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독특함을 떠올렸다. 재단의 사무장인 송과 그 재단에서 지원하는 연극을 기획하는 연극배우 그리고 그들의 화제의 주인공이었던 양. 그들에게는 각자의 독특한 색깔이 있었다.

송이 연극배우 아버지의 문상을 가서 나누는 대화와 그들의 대화를 통해 엿본 이야기 속 인물들의 삶의 단편을 보며, 어쩌면 우리는 가까운 사람들보다는 그저 그런 관계의 사람들에게 더 솔직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집에서 부대끼며 살았거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솔직하게 말하기 어려운 어떤 것들. 그것을 문득 뱉어낼 수 있는 적당한 거리의 사람들을 이 소설에서 읽을 수 있었다.


다시 기차가 움직일 때 송은 문득 내가 나빴지, 하고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런 나쁘지 않음에 대한 기대, 이를테면 속죄 같은 것은 그 공허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듣지 않을 때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어서


헤어진 연인과 담담한 통화를 하며 떠올린 송의 생각 한 자락이 어쩌면 옳을지 모른다. 마지막 남은 미안함을 털어버리기도 미안해서 차마 사과하지 못하는 것이 스스로에 대해 벌을 주는 그 자신만의 속죄일 수 있으므로.




백수린, 「고요한 사건」 , 문학동네, 2017


재개발의 행운을 꿈꾸는 부모를 따라 서울의 유일한 달동네로 이사를 온 고등학교 소녀는 제법 살면서 공부를 잘하는 부류에도, 달동네에 사는 무기력한 부류에도 속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달동네에 사는 해지와 무호 덕분에 담배를 배웠고 재개발로 동네가 비어질 때까지 외롭지 않게 살 수 있었다.


나는 차가운 유리창에 이마를 댄 채 그렇게 한동안 서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것이 내 인생의 결정적인 한 장면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나는 평생 이렇게, 나가지 못하고 그저 문고리를 붙잡은 채 창밖을 기웃거리는 보잘것없는 삶을 살게 되리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었으니까.


동네의 길고양이를 돌보던 외로운 아저씨가 폭행을 당한 것에 대한 자기 부모의 이기적인 외면과 죽은 고양이에 대한 망설임 끝에 발견한 자신의 이기적인 주저함에 대한 소녀의 생각이 이렇게 적혀있었다.


그때 나는 창밖으로 떨어져 내리는 아름다운 눈송이를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모든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우리는 가끔 눈송이를 바란다. 차마 보기에는 안타깝지만 용기 있게 나설 수도 없어서 하늘의 눈송이가 그것들을 다 하얗게 덮어버리기를. 그래서 나의 용기 없음과 두려움이 부끄럽지 않을 수 있길를.

아마 소녀도 그런 마음으로 생전 처음 보는 눈송이에 눈과 마음을 빼앗긴 채 오래오래 서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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