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서관에서 발견한 한국 책 읽기
「호수-다른 사람」와「그 여름」,「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 세 편의 제8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
에 대한 개인적인 소감을 옮겨본다.
강화길, 「호수-다른 사람」 , 문학동네, 2017
이야기를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읽는 내내 분명히 주인공인 진영이 절친인 민영의 남자 친구로부터 무슨 일을 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에서 간간히 접하게 되는 데이트 폭력이라는 소재로 이루어진 ‘호수-다른 사람’이라는 이야기는 민영의 남자 친구가 자신의 과오를 숨기기 위해 마침내 민영의 친구인 주인공 진영을 해하려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에 대항해 진영이 무엇인가를 하는 장면에서 이야기는 끝난다. 아마도 나는 진영이 물속에서 잡았던 그 길고 얇고 날카로운 물건으로 민영의 남자 친구를 찌르고 도망을 쳤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조심했어야지. 그랬어야지. 그래. 그랬어야지. 그러게 호수에 왜 갔느냐고? 왜 왔느냐고?
여자들이 폭력에 희생되는 사건들에 대해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보이는 반응이다. 가해자에 대한 비난이 쏟아져야 마땅한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피해자인 여자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해서 가해자를 도발했는지 묻는다.
사람들의 의식이 과거보다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피해자에게 눈총을 보내는 이 사회에서 딸을 키우는 엄마로서 마음이 답답할 뿐이다.
최은영, 「그 여름」 , 문학동네, 2017
다시 책을 읽자고 마음먹고 미국 도서관에서 처음 집어 들었던 책이 「쇼코의 미소」이라는 소설집이었고 그 소설집을 통해 나는 최은영 작가를 처음 만났다. 이 단편 소설은 제5회 젊은 작가상을 수상한 최은영 작가의 또 다른 수상작이다.
‘그 여름’은 열여덞에 서로를 만남으로 자신들의 성 정체성을 깨닫고 확인한 이경과 수이 두 소녀가 스물한 살이 되어 헤어질 때까지의 환희와 고통, 기쁨과 아픔에 대한 이야기이다.
열여덞이던 시절의 나는 결코 알지 못했던 사람들의 성 정체성 그리고 사랑과 결혼에 대한 다양한 화제가 대두되는 요즘, 이경과 수이를 통해 나와 다른 세계를 사는 것 같았던 사람들의 삶의 단편과 그들의 투쟁적인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수이를 만나기 전, 세상이 얼마나 삭막하고 외로운 곳이었는지 이경은 기억했다. 자기를 좋아해 주는 사람도 없었고, 무리를 이뤄 다니는 아이들과 좀체 어울릴 수 없었던 기억. 아무리 아이들을 따라 하려고, 비슷해지려고 노력해도 그렇게 되지 않았고, 자기 자신이라는 존재를 애써 바꿔보려 했지만 불가능했으며 그렇다고 바뀌지 않는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디에도 속할 수 없어 고통받는 이들이 어디엔가 속하기 위해 싸우는 문제는 나에게는 아직도 낯설고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이경과 수이를 통해 어찌할 수 없어서, 그럴 수밖에 없는 그들의 삶의 여정이 아주 조금은 이해되었다.
천희란, 「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 , 문학동네, 2017
소설의 제목을 보고 아주 오래전 음악 시간에 들은 것 같은 용어인데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검색을 해 보았다.
프렐류드(Prelude) : 전주곡. 본래 모음곡 등에 도입 역할을 하는 소품을 가리켰지만, 오늘날에는 독립된 소곡을 일컫는 용어로 쓰인다.
푸가(Fugue): 하나의 주제가 각 성부 혹은 각 악기에 장기적이며 규율적인 모방 반복을 행하면서 특정된 조적 법칙을 지켜서 이루어지는 악곡
<파퓰러 음악 용어사전>
제목을 보고 음악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음악에 대한 언급이 나오기는 하지만 음악이야기는 아니었다. 이 소설은 서로를 사랑했지만 세상의 기준 앞에서 타협할 수밖에 없어 헤어졌던 두 여인과 그 딸의 이야기이다. 오랜 이별 후 다시 만났으나 호수에 빠지는 사고로 연인을 잃은 한 여인과 호수에 빠져 세상을 떠난 다른 여인의 딸, 효주가 다섯 통의 편지와 또 다른 한 통의 편지로 나누었던 이야기를 음악 용어에 비유한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아주 모르지 않으면서 겨우 조금 아는 것에 사로잡혀 살아간다는 것을 새삼 떠올렸을 뿐입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후 자신을 돌봐준, 엄마 죽음의 목격자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효주가 보낸 첫 편지의 구절이다.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었던 가끔 스치던 나의 생각을 적어놓은 듯 보였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조금 아는 것을 가지고 아는 척하는 나와 다른 이들의 모습을 한 줄로 정리한 듯한 이 문장이 소설을 읽는 내내 마음에 남았다.
나는 다른 사람과 나의 사랑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었고, 그래서 그 특별함에 대해서는 생각할 여력이 없었던 거야. 그걸 좀 더 빨리 깨달았어야 해. 그때 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랑 앞에서, 평범하므로 당당해져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목격자인 선생님이 사실은 엄마의 오랜 연인이었음을 고백하는 마지막 편지로 다섯 통의 편지에서 무언가 석연치 않게 보였던 여인과 효주 그리고 효주의 엄마의 관계가 명확해진다. 세상의 기준과 거리가 먼, 힘든 사랑과 그 잔재로 어려운 삶을 살았던 선생님과 자신의 엄마를 효주는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그들의 사랑이 여전히 어렵게만 느껴지는 나는 몹시 궁금했다.
여전히 사회적인 논란거리이자 다양한 시각차가 존재하는 소재이기 때문인지 8회 젊은 작가 수상작 중 두 가지가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