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서관에서 발견한 한국 책 읽기
다른 사람들과 별반 바르지 않게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다른 사람들의 삶이나 생각을 이야기를 통해 읽는 재미와 즐거움, 그리고 이야기가 주는 흥미진진함 때문일 것이다. 내 일이나 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이야기에 몰입하는 순간에도 거리감이 두고 읽을 수 있다는 편안함이 종종 소설책을 펼치게 만든다. 아마도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연애 소설이나 러브 스토리를 읽으면서 나와 다른 세계에 사는 것 같은 인물들의 사랑에 관한 생각과 느낌 그리고 그들의 사랑 이야기에서 짜릿함이나 신선함 또는 가끔은 기이함을 글을 통해 맛보면서 나는 묘한 만족감을 느끼곤 한다. 책에 나온 인물들의 뜨겁거나 차갑거나 또는 끔찍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사랑과 애증의 이야기 속에서 내가 감히 생각지도 못했고 엄두도 내지 못한 것들에 대한 대리 만족이나 간접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인 모양이다.
신기한 것이 실제 상황이라고 하면 스캔들이나 가십거리가 될만한 사랑이야기를 소설책이나 드라마를 통해 보다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그 얼마쯤 퇴폐적이고 매우 얼토당토않은 그들의 사랑이 애절하면서 아름답게 느껴지곤 한다.
백영옥,「애인의 애인에게」, 위즈덤하우스, 2016
백영옥 작가의 ‘애인의 애인에게’를 읽는 동안에 나는 사랑하지만 자신의 사랑만큼 사랑받지 못하는 간절하고 목마른 인물들의 돌고 도는 사랑이야기에서 아이러니하지만 애절한 아름다움을 읽을 수 있었다. 아마도 작가의 글을 통해 묘사되는 인물들의 깊은 내면을 글자를 통해 읽어 내려가는 시간들이 읽는 나로 하여금 그들에게 공감하며 안타까움을 느끼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제목처럼 이 이야기는 한 남자를 사랑했었던 마음을 어쩌지 못하는 여자 마리와 그 남자와 사랑하고 있는 것 같은 여자 정인 그리고 두 여자의 사랑을 받은 그 남자가 사랑하고 있는 여자 수영의 이야기이다.
어찌 보면 서로 받아들일 수 없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연적들이 서로를 받아들이고 위로하는 이야기가 전체적인 맥락을 이루고 있는데 이것이 매우 비현실적인 듯하면서도 묘하게 이해가 되었다. 아마도 작가의 뛰어난 심리묘사 때문에 나도 모르게 이야기 속 인물들에게 설득되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가끔 영화였다면 심의에서 잘려나갔을 수도 있는 선정적인 부분들이 있긴 했지만 글을 읽는 동안에는 그런 부분마저 이야기의 개연성과 인물들의 심리를 들려주기 위한 이유로 그 자리에 있었으리라 생각했다. 사실 영화에도 굳이 넣지 않아도 될 화면이 적나라하게 보이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 느껴졌지만 그 또한 이야기의 주인공들의 삶을 보여주기 위한 작가의 필수 불가결한 이유가 있었으리라.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뉴욕의 맨해튼에서 벌어지는 한국 유학생 예술인들의 이야기와 함께 보여준 뉴욕의 모습과 미술관에 대한 내용을 읽을 때는 오래전 뉴욕으로 가족여행을 갔을 때 지났던 그곳을 다시 찾아간 듯 인물들의 삶이 전개되는 그곳이 친숙하고 친밀하게 느껴졌다. 읽으면서 생각했다. 백영옥 작가가 몇 년쯤 그 지역에 살면서 수많은 예술에 종사하는 한국 유학생들이나 이민자들을 경험했거나 작가가 그들 중 한 명이 아니었을까?
관계를 깨는 것보다는 자신에게 원인을 돌리는 편이 더 익숙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습관적으로 ‘나에게는 분명 문제가 있다’로 시작해서 집요하게 자기 잘못을 찾아내는 거죠. 결국 상대편의 문제인데도 내 문제로 돌리는 게 익숙한 거예요. 그리고 그걸 이해심이라고 착각하는 거죠. 도덕적 우월감을 그렇게 스스로 확인하는 겁니다.
마리가 의사를 통해 듣게 되는 마리의 심리상태에 대한 진단에서 나를 비롯하여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부지불식 간에 갖고 있는 이해에 대한 오해를 발견했다. 괜한 피해의식에 젖어 스스로를 괴롭히고 그런 자신의 참고 견딤이 상대방을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착각하는. 한국사회의 문화와 제도의 틀에서 사는 사람들의 경우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마리와 같은 착함으로 상처를 입으면서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나무는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으로 혹독한 겨울 준비를 마친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나무의 절정이라고 말하는 단풍의 붉은빛은 ‘나를 건드리지 마!’라는 메시지를 프로 쓴 혈서다.
단풍에 숨겨진 생명의 간절함과 단호함을 실감하지 못했던 나에게 단풍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는 문장이었다.
진실과 진심은 종종 어긋난다. 그것은 서로를 향해 맹렬히 달려가지만 자주 만나지 못한 채 서로에게 등을 돌린다. 어떤 진실은 한 사람의 진심을 거짓이나 배신으로 만든다. 죄책감 때문에 진실을 말하는 사람과 상대가 받을 상처 때문에 진실에서 멀어진 진심을 선택하는 사람 중에, 어느 쪽이 조금 더 윤리적인 걸까. 어디까지가 뻔뻔한 솔직함이고, 어디까지가 선의의 거짓말인 걸까
남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 느긋하게 읽던 책에서 이런 문구를 발견할 때면 생각한다. 소설가들은 이야기 꾼만이 아니라 사람의 심리를 집요하게 파헤치고 분석하고 종합하여 소름 끼치는 문장들로 사람의 마음을 후벼 파는 냉정한 심리학자인 것이 아닐까?
‘애인의 애인에게’는 다른 멜로나 사랑이야기에서 심심찮게 발견되는 유사한 구도를 가지고 있었고 나는 그 뻔한 듯한 이야기를 또 한 번 재미있게 읽었다. 아마도 섬세한 심리 묘사와 작가의 통찰력이 담긴 문장들이 등장인물에 비추어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기 때문인 듯하다.
이것이 내 주변의 이야기였다면 결코 용납하거나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 남자를 둘러싼 세 여인의 이야기는 어쩐지 책을 읽는 내내 묘하게 이해되고 신기하게 공감되었다. 아마도 그것은 작가의 필력과 이야기의 흡입력 때문이었으리라.
책을 읽다가 논리와 이성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그들과 같은 마음으로 몰입하게 되는 순간이면 감히 꿈을 꾼다. 나에게서도 이런 문장과 글이 나올 수 있는 날이 왔으면……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