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피노 에일리에겐 아무 잘못이 없다"고 말해 주세요.

미국 도서관에서 발견한 한국 책 읽기

by 날마다 소풍

동네 도서관의 빽빽한 영어 서적 사이의 외국어 서적 코너 중 한국 서적 코너에 꽂힌 책들을 훑어 보다가 소설치고는 너무 솔직하게, 제목에 작정하고 전달하고 싶은 메세지를 담은 것 같은 느낌에 이끌려 이 책을 집었다.




최형아,「에일리에겐 아무 잘못이 없다」, 새움,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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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부터 아무 잘못이없다고 작가가 변호하고 있는 소설 속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에일리는 코피노이다.

언젠가 인터넷 기사에서 코피노에 대한 글을 읽고 답답한 마음이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한국인(Korean)과 필리핀인(Filipino)의 합성어로 한국인 아버지와 필리핀 출신의 어머니를 둔 혼혈아를 일컫는 말이다. 관광이나 사업ㆍ유학차 필리핀에 간 한국 남성들이 현지에서 아이를 만들고 책임지지 않는 사례가 급증하는 등 아버지로부터 버림받는 코피노가 증가하면서 큰 문제가 됐다. 더욱이 대부분의 코피노가 극심한 가난과 사회적 냉대 속에서 자라고 있어 필리핀에서도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한편 미국 월스트리트저널과 아동성착취반대협회(ECPAT) 등에 따르면 2014년 현재 코피노 숫자는 3만 명에 달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코피노 (시사상식사전, 지식엔진연구소)



"코피노"를 검색하면 나오는 비슷한 설명들.

책임지지 않는, 책임감 없는, 버림받는, 고통받는, 냉대, 사회 문제, 불법 성매매……




이 소설은 작가가 작정하고 코피노와 그들의 뻔뻔한 한국인 생부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필리핀에서 성공적인 사업을 기반으로 한국에서 영향력있는 정치인으로 거듭한 한 남자가 있었다.

사업을 하는 동안 필리핀 여자와 동거를 하여 딸을 낳았으나 한국으로 떠난 뒤 연락이 두절되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그 남자의 큰 아들이 필리핀에서 사업을 하는 것을 알고 접근한 코피노 딸이 시도한 복수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그 사건으로 형을 찾으러 간 둘째 아들이 필리핀에 들어가게 된다.

아버지의 과오와 자신들의 배다른 코피노 여동생, 에일리와 아버지에게 버림받는 여자의 존재에 대해 괴로와하는 두 아들과 달리 마지막까지 아버지는 부끄러움을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그렇게 된 거로구나. 내 피의 절반을 이룬 그는 나의 존재를 알지도, 사랑하지도 않는구나. ……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어쩌면 어느 얼빠진 관광객이 부려놓고 찾아가지 않는 짐과 같은 존재였겠구나


이런 마음으로 살아온 에일리를 대신해 작가는 어머니와 자신을 버린 한국인 생부 때문에 망가진 어머니 옆에서 살아가야했던 에일리의 복수의 방식이 옳은 것은 아니지만 에일리에게 잘못은 없다고 코피노들을 대신해 항변하고 있는 듯하다.




필리핀의 국화이자 소설 속 곳곳에 등장하는 삼파귀타 ( Jasminum sambac - Arabian jasmine)는

코피노와 그들의 어머니의 모습을 상징하는 듯하다.

중독될 것 같은 깊고 진한 향기와 부드러운 하얀 꽃잎의 모습을 매혹적이지만 금새 시들어 떨어져 버리는 모습이 어쩌면 그들의 인생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도 하다.








남의 나라에 왔으면 남의 나라 사람들과 섞여 살 줄도 알아야지, 자꾸 주인 행세를 하고 과욕을 부리니까 이런저런 문제들이 생기는 거 아니겠어? 알고 보면 우리나 그쪽이나 그렇게 다른 처지도 아닌데, 좀 잘 살게 되었다고 거드름만 피울 게 아니라 형제애 같은 걸 가지면 얼마나 좋아.

형의 실종 때문에 만난 필리핀 형사가 주인공인 둘째 아들에게 하는 말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무책임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일본인들의 뻔뻔함에 분노하는 한국인들이 일부의 몰지각한 사람들일지라도 우리나라 국민들이 저지른 코피노 상황에 대해서 책임을 제대로 지지 않으려는 그 개인들과 우리 정부의 모습에 대해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과연 위안부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 일본인들과 코피노 사태에 대해 알면서 모른척하는 한국인들이 무엇이 다를까?

고통의 모습과 형태는 다를지라도 무책임한 아빠들로 인해 받는 코피노와 그들의 엄마들이 받는 고통과 뻔뻔한 일본군들 때문에 위안부 여성들이 받았던 고통의 깊이와 아픔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소설을 덮고도 불행한 코피노를 양산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고 있다는 내 나라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가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아서 부끄러움에 뒤통수가 후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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