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서관에서 발견한 한국 책 읽기
미국 도서관에 있는 한국 책에서 책을 고르는 것이다 보니 선택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생각지 못한 좋은 책을 만나게도 되고 읽을수록 마음을 건드리는 책을 만나기도 한다.
하유지,「집 떠나 집」, 은행나무, 2016
하유지 작가의 '집 떠나 집'은 2016년 한경 청년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주인공 스물아홉 오동미가 집을 떠나 낯선 이들과 인연을 맺으며 자신의 새로운 터전을 찾게 되어 삶이 회복되는 이야기이다.
동미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시도하던 재취업이 안되어 집안일을 자처하면서 반찬가게 하는 엄마와 명문대생 남동생의 구박덩이 밥순이가 되었다.
너도 기죽어 살아봐. 없던 죄도 꾸며내서 불게 되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게 맞을 일이냐?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에어컨 켜서 한 대, 없는 살림에 수박 깨서 한 대......
루저가 되어 버린 것 같은 서글픔에 모아둔 5백만 원을 가지고 집을 나온 동미는 옆동네에서 마주친 고양이를 따라가다가 모퉁이라는 찻집에 다다르게 된다.
마땅히 갈 곳이 없던 동미는 모퉁이에서 일을 하게 되고 모퉁이 찻집의 주인인 삼촌과 조카, 그곳을 찾는 손님들, 찻집 옆에 있는 작은 밥집 주인, 그리고 음식 재료를 배달하는 슈퍼집 아들 등 새로운 사람들과 어우러진 삶을 경험하게 된다.
소설에는 동미가 그들과 소통하면서 집에서 밥순이로 살던 시간에 쌓인 서러움이 치유되고 사라진 자존감이 회복되는 과정과, 주변 사람들의 소소하지만 그들에게는 아프고 소중한 일상이 함께 전개된다.
거울에 얼굴을 가까이 댔다. 본 것 같았다. 그 별 모양의 주근깨가 별처럼 반짝, 빛나는 것을.
봉수, 리경, 나리, 홍, 보키, 참새, 살금 이, 콩이, 꺅꺅이, 그리고 선호 반갑습니다. 동미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몸은 한 공간에 있지만 마음은 그곳에 둘 수 없어서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가족이 사는 집을 떠난 동미가 생면부지의 사람들의 작은 배려와 망설임 없이 내어주는 공간에 새로운 집을 지어가는 이야기는 내 마음을 살그머니 건드렸다.
대단한 갈등이나 흥미진진한 사건은 없지만 소설을 읽는 내내 주변에서 만난 적이 있거나 살면서 마주친 적이 있는 사람들을 만난 것처럼, 그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향긋한 차 한잔 마시며 듣는 기분이었다.
소설 속 인물들이 너무도 평범하고 그들의 이야기가 너무도 사소한데 그들의 마음의 온기가 느껴져서 읽는 동안 마음이 흐뭇한 그런 책이었다.
편히 쉴 집도 없는 누군가가 우연히 내 삶에 들어온다면 그리고 내 삶의 한편에 그 마음을 내려놓는다면, 그 사람에게 내가 내어주는 공간이 모처럼 마음을 편히 뻗을 수 있는 집이 되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누군가가 거리낌 없이 곁을 내어준 덕분에 가끔은 나도 그곳에 마음을 뻗고 내 마음의 집을 세우기도 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집은 내 몸이 편히 쉴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마음이 쉴 수 있는 곳이기도 해야 한다.
그게 진짜 집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휴교와 휴업, 외출 금지령과 재택근무 그리고 사회적 거리두기와 모임 금지 같은 국가적, 사회적 제재로 우리의 생활 모습이 변하고 있다.
들쑥날쑥하는 확진자와 사망자의 숫자로 여전히 불안한 요즘, 어쩌면 제일 안전한 곳은 "집"일 것이다.
그러나 집이 누구에게나 안전하고 모두에게 편안한 곳은 아닌 모양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이후 이혼율과 가정폭력이 늘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가족들과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경제적 어려움과 삶의 위기감이 가중되면서 가족들끼리 상처를 더 많이 주고받는 모양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는 안전할지라도 가족 거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가족 미움과 가정 폭력의 증상이 발현된다면 그것은 집이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라 증거일 텐데, 참 마음이 아프다.
가족도 사이가 좋으려면 아침에 헤어졌다가 헤질 녘에 만나는 적당한 거리 조절과 적절한 시간 배분이 필요하다는 것을 체감하는 요즘이다.
가족일지라도 적당히 떨어져 있는 시간이 필요한데 자꾸 집에 있으라니 답답하고 짜증이 치미는 것을 나 스스로도 매일 경험 중이다.
가족이 고작 넷인 우리 집에서도 별것 아닌 일로 투닥거리거나 언쟁하는 상황이 소소하게, 자주 발생한다.
가족에게 곁을 내어주어 마음을 뻗을 수 있는 여유를 주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는 일상에서 최대한 평온을 유지하는 이성적인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며 잔소리하고 싶은 마음을 비우려 애쓰며 살고 있다.
가끔은 감정과 이성 사이에서 갈팡질팡하지만, 이 또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일 테니 말이다.
바이러스의 위험과 삶의 위기 가운데 집을 떠나는 일이 없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 고단한 몸과 힘든 마음을 쉬게 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 되어주기를, 집을 떠나서야 진짜 집을 찾은 동미를 보며 생각했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쇼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