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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실의 Boss

누가 우리 대장님 좀 말려줘요~

by 날마다 소풍

MK는 내가 남다른 아이들 교실에서 일하기 시작한 후 제일 먼저 나를 그들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준 아이다. 나는 그때는 그 사랑스러운 소녀가 누구도 못 말리는 고집불통이라는 것을 상상도 못 하였다.




내가 출근한 지 둘째 날 아침, 아이들이 나에게는 어색한 인사를 날리는 중 교실에 들어온 MK는 나를 밝은 미소와 함께 따뜻하게 안아준 첫 번째 아이였다. 나는 그것이 무척 고마웠고 보조개가 쏙 들어가며 짓는 MK의 미소가 남다른 아이들 세계에 적응하는데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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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5학년 소녀, MK의 고집이 아주 세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 따뜻한 포옹 며칠 뒤였다. 체육시간 스쿨버스를 타러 갈 시간이 되어서 모두 교실로 돌아가려고 줄을 서는데 갑자기 MK가 한쪽 구석으로 가더니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때, Ms. D가 자기가 다른 애들 데려간다면서 MK를 나에게 부탁하고 다른 아이들을 데리고 교실로 향했다. 그때까지 나는 MK의 고집이 황소 심줄보다 셀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였다.


10분을 넘게 어르고 달래고 갖가지 아부와 아첨을 떨면서 모시다시피 하는 데도 조금 듣는가 싶더니 다시 팽하고 고집을 부렸다. 버스 탈 시간은 다가오고 급한 마음에 Ms. R에게 전화를 했다. 배가 불러오는 Ms. R이 와서 엄포를 놓으면서 학급 포인트를 다 없애겠다고 하자 발을 떼기 시작했고 겨우 스쿨버스에 올랐다.


그 날부터 나는 MK의 위력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항상 체육시간이면 우리는 MK의 심기를 잘 살펴야 했다. 자기가 찬 공이 엉뚱한 곳으로 간다거나 누가 한 말이 기분 나빴다거나 혹은 어떤 애가 자기 말대로 안 하면 비위가 상했다. 내가 볼 때는 그냥 나무에서 이파리가 떨어져서 화가 난 것 같은 날도 많았다. 왜 화가 나게 된 건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런 날은 갑자기 바닥에 앉거나 줄 서는 곳과 반대쪽으로 걸어가버렸다. 그리고는 교실에 가서 정리하고 하교해야 할 시간인데 입을 앙 다물고 눈썹을 찡그린 채 버텼다. 그때마다 Ms. R의 엄포와 폭풍의 학급 포인트 감점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그 고집의 위력으로 MK는 우리 보조교사들을 자신의 뜻대로 조종하곤 했다. 그래서 우리는 MK를 Boss라고 불렀다. 우리를 향해 MK가 단호한 목소리로 뭔가를 요청하거나 MK의 기분이 상했을 때 웬만하면 맞춰주었다. 그의 뜻대로 해주지 않으면 불어올 후폭풍이 무섭다기보다는 피하고 싶었다는 게 정직한 표현일 것이다. 게다가 MK는 마음이 풀리면 보조개가 들어가는 그 예쁜 미소를 날리며 달콤한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사랑스럽게 변했기 때문에, 적당히 맞춰주고 즐겁게 지내다가 집에 가는 것이 모두에게 기분 좋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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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자기 나름대로 우리 교사들에게 지시할 것이나 전달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MK의 말에서는 남다른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우리는 그 아이가 Boss의 기질을 갖고 태어난 것 같다고 진심이 담긴 농담을 하곤 했다. 그리고 우리가 자신이 바라는 것을 잘 완료하면 우리의 Boss MK는 "You are the best teacher ever!"이라며 칭찬을 날려주었다.


남다른 아이들과 있다 보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면 칭찬과 격려,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이 아이들도 우리 교사들도 즐겁게 지내는 비결이었다. 한 번 비위가 상하거나 화가 나면 논리적인 설득이나 합리적인 대화 같은 것은 전혀 먹히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이들 마음이 풀린 뒤, 기분이 좋을 때 이야기하면 나름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것이 돌아서면 곧 잊히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 중학교에는 우리의 꼬마 Boss가 그 카리스마를 어떻게 표현하며 지내는지 궁금하다. 남다르지 않게 태어났더라면 어디에서든 한자리할 만한 배포와 포스가 있는 MK의 보조개와 예쁜 미소가 여전한지 보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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