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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적인 그녀의 Olive

지킬과 하이드 중 어느 것이 진짜 너의 모습인지 궁금해.

by 날마다 소풍

고요한 호수 같던 E가 폭력적으로 변할 때마다 나는 "엽기적인 그녀"라는 영화 제목을 떠올렸다. 늘 우리가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돌변하던 남다른 아이 E와 다행이기도, 안됐기도 한 쌍둥이 자매 A의 이야기.




우리 반의 "엽기적인 그녀" E에게는 남들과 같은 반에서 공부하는 쌍둥이 자매 A가 있다. E와 A를 처음 봤을 때는 둘이 정말 똑같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다음 날, 난 정신을 차리고 둘을 확실히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항상 아이들이 교실에 들어갈 때까지 운동장에서 양쪽에 붙어 수다를 떠는 쌍둥이들과 함께 머물다 가는 E의 아빠가 이틀째 아침에 나에게 누가 누구인지 구분할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안경 넘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내가 자기 딸이 있는 반에 적합하게 배정되었느지 시험하는 사람처럼 나를 쳐다보았다. 유심히 살펴보고 다행히 나는 E를 찾아내어 E의 아빠의 마음을 흐뭇하게 기쁘게 했다. 여유 있게 웃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살짝 식은땀이 났다. ‘휴~’

E와 A는 인도계 혼혈 미국인 소녀들로 크고 동그란 눈에 긴 속눈썹이 아주 예쁜 데다가 평생 파마를 하지 않아도 될 거 같은 자연스러운 굵은 곱슬머리를 가졌다. 둘을 비교해서 말하자만 E가 조금 남자아이 같은 굵은 선을 가지고 있고 A가 조금 더 여성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비슷한 듯했지만 점차 둘을 한 번에 구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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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장한 얼굴에 귀를 가까이 대고 집중하지 않으면 알아듣기 힘든 모기만 한 소리로 말하는 E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 같은 전혀 상반된 이면을 가지고 있었다. 말도 없이 가만히 있다가 갑자가 자학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내서 학급 전체가 뒤집어지는 사태가 종종 일어났다. 수업 시간에 글자를 틀려서 고치다가 종이가 지저분해지거나 동그라미가 비뚤어진다든가, 약을 먹으러 학교 간호사에게 가야 하는데 먹기 싫거나, 받아쓰기 단어 공부 같이 하기 싫은 것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될 때, 잠잠하던 바다에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폭풍이 몰아치는 것처럼 갑자기 벌떡 일어나 앉았던 의자를 발로 차거나 책상 위의 물건을 집어던지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 분위기가 느껴지면 교사들은 가위 통이나 크롬북 같은 위험하거나 부서지면 안 되는 물건들을 치우기에 바빴다. 분이 안 풀리면 E는 자신을 자학하는 행동을 보였다. 연필로 자신을 긁어대거나 어느새 가위를 가져와서 자기 손가락에 가위질을 해대기도 했다. 그래서 가위는 E에게 멀리 두어야 하는 물건이었다. 의자나 물건을 던질 정도의 분노가 아닌 사소한 분노가 일 때 E는 몰래 어디서 주워온 클립 같은 것으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손가락에 상처를 내곤했다. 그래서 E의 손에는 늘 밴드가 여러 개 붙어있었다.

그런 E가 제일 행복할 때는 자기의 애완조 “Olive”이야기를 할 때였다. 그래서 E의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Olive 이야기를 꺼내며 한참 애를 쓰다 보면 조금씩 진정이 되어 E는 자주 이야기하는 Olive가 하는 동작, 만드는 소리, Olive의 습관에 대해 종알종알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물론 항상 Olive의 효과가 먹히지는 않았다. 수업시간에는 자발적으로 말하는 법이 없는 E는 교사와 둘이 있을 때는 쉬지 않고 Olive 이야기를 하는 수다쟁이였다. 처음에는 정말 열심히 들어주었는데 시작하면 끝이 없고 늘 비슷한 내용의 Olive 이야기를 늘 집중해서 들어주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유일하게 행복한 표정의 E를 보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잘했다고 칭찬도 해주면서 맞장구를 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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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Olive를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E가 자기 손 반만 하다는 그 작은 새에게 고마워했다. 수시로 태풍과 폭풍이 이는 E의 마음속에, 떠올리면 웃음이 나고 평화가 찾아오는 대상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그리고 E에게는 늘 그림자처럼 조용히 함께 있어주는 쌍둥이 자매 A가 있다. E는 엽기적인 공격 성향이 있지만 A는 늘 한결같이 조용하고 온순한 아이였다. 그래서 E의 친구이자 보호자가 되어 주었고 수업 시간에 발표는 못하지만 종알거리며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E의 유일한 대화 상대였다. 다른 아이들은 E와 이야기하려다가 웅얼거리는 말투, 늘 Olive로 종결되는 패턴 때문인지 E와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다. 그래서 쌍둥이 소녀 둘은 쉬는 시간이면 늘 운동장 한구석에 둘이 꼭 붙어 있고, 집에 갈 때면 둘이 손을 꼭 잡고 갔다.

E에게 Olive와 A는 그 혼돈스러운 삶에 선물 같은 존재인 듯하다. 나는 쉬는 시간마다 E 옆에 앉아 뭐라고 소곤거리거나 E의 손을 잡고 가는 A를 보면 혼자 궁금하곤 했다. A의 삶에 E는 어떤 존재일까? E에게 A가 선물인 것처럼 A에게도 E가 선물일까? 짐은 아닐까? 지킬과 하이드 같은 성향을 가진 E의 삶이 힘들고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어쩌면 앞으로도 그 곁을 함께 해야 할 A의 삶에 E는 늘 어떤 부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의 성향 때문에 부모들은 늘 E에 대해 노심초사하며 E의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의 대상이 되는 상황 속에서, A는 남다르지 않고 남들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알게 모르게 소외되고, E와 같은 어린 소녀에 불가한 A의 필요는 소홀히 여겨지고 있을지 모른다. 그것이 상처가 되어 A의 마음 깊은 곳에 폭풍이 일지 않기를, E가 A에게도 선물이 되기를 바란다. 더불어 E의 열 살 인생 이야기의 전부인 Olive의 무병장수도 혼자 소망해 본다.


aes.png?type=w773 서로가 서로에게 축복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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