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남다른 아이들 속으로 초대한 아이
남다른 아이들과 있었던 일화를 통해 우리 남다른 아이들의 특별함을 추억해 본다.
나와 특별한 관계였던 R의 이야기를 모두 늘어놓다가는 며칠 밤을 샐 수 있을 것 같다. 적당한 시점에서 이야기를 멈추고 그 나머지는 추억의 갈피에 간직하기로 해야겠다.
연일 결석을 하던 R은 내가 출근한 지 일주일이 되었을 때, 연락 없이 길었던 결석에 대해 엄마가 가지 말라고 해서 안 왔다는 이유를 가지고 학교로 돌아왔다. 자신이 결석한 사이 이미 나를 자신들의 영역에 넣어준 다른 아이들과의 반가운 인사를 나누는 나에게 의심의 눈초리 보내던 R은 내가 “Good Morning, R”하며 밝게 인사하자 얼굴을 찡그리며 누구냐고 물었다. 내가 새로운 보조 교사라고 하며 네가 일주일이나 결석을 해서 보고 싶었다고 하자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OK”하고 다시 자기 가방을 흔들며 뭔가를 계속 중얼거렸다. 나는 R의 행동이 새로운 인물의 출현이 반갑지 않아서 보이는 행동인 줄 알았으나 그것은 R이 스쿨버스에서 내려 교실에 들어가기까지 즐기는 가방 역할놀이였다. R의 가방은 아침마다 운동장에서 춤추는 소닉이 되기도 했다가 생일파티에서 터지는 풍선이 되기도 하고 어떤 날은 R을 공격하는 괴물이 되기도 했다.
R은 남다른 특별한 아이들 가운데 특별히 더 특별한 아이였다. R의 엄마는 그 전의 두 초등학교 특수 학급에서 트집거리를 찾아 소송한 재판에서 모두 승소하여 그 학교와 교육청으로부터 꽤 합의금을 받아낸, 보기 드문 “센 엄마”였다. 합의금이 정리된 후, R의 엄마는 R을 우리 학교로 전학시켰다. 그런 전력 때문에 교장과 담임 Ms. R을 비롯한 모든 교직원들이 R의 일거수일투족에 예민했고 소송할 빌미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런 사정으로 R은 1:1 보조교사 프로그램 대상이 되었고, 그로 인해 내가 이 학급에 보조교사로 고용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학교에서는 전학과 동시에 R에게 1:1 보조교사를 배정했으나 전임 보조교사는 2주 만에 교육청에 특별 전근을 요청, 다른 학교로 떠났고 내가 오기까지 매일 임시 교사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나의 주된 임무는 R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다른 아이들을 보호하는 울타리가 되는 것이었다. 물론 R에게는 그 울타리가 가끔 감옥 같이 느껴졌을 수 있다.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R이 무사히 졸업을 할 때까지 R 엄마가 우리 학교를 상대로 소송할 거리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남다른 아이들 속에서 존재하는 이유를 상기며 항상 R의 최대한 가까이 머물면서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늘 조심했다.
R은 다른 아이들이 2명씩 같이 사용하는 2인용 책상을 혼자 독차지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었고, 두 개의 책상 서랍 모두 R의 물건이 가득했다. 내가 오기 전까지 아이들과 여러 가지 분란을 일으킨 역사가 있어서 2인용 책상에 혼자 앉히고 그 옆자리를 비워둔 것 같았다. 모든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몇몇 남다른 아이들은 R이 누리는 특별한 대우를 부러워하면서 그를 더 특별한 존재로 여기는 듯했다.
갑자기 움직이고 싶은 충동이 일면 우리가 예상도 하기 전에 저만큼 달려가 있거나 이미 사고를 쳐버리는 R에게는 테이블을 혼자 차지하고 점심을 먹는 특권도 주워졌다. 물론 그것은 엄마에게 영향을 받은 R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급식 시간에 반 별로 한 테이블에 모여서 점심을 먹는데 우리 반 자리를 다른 보조교사들이 돌보는 사이, 나는 남들과 동떨어져 점심을 먹는 R 앞에 앉아 R을 챙겼다. 그 시간에 나누는 짤막한 대화들을 통해 나는 센 엄마의 품에서 휘둘려온 R의 열 살 인생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처음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 그것도 부딪히는 것은 모두 부수는 강철 공 같던 R은 알면 알수록 귀엽고 사랑스러운 구석이 있는 아이였다. 그러나 R의 센 엄마 때문에 나는 R과 적당한 거리까지만 친해지기로 했다.
쉬는 시간, R의 놀이는 한 가지, 학교 운동장 울타리에 뻗은 넝쿨식물의 가지를 줍거나 몰래 꺾어서 흔들면서 자기가 지은 이야기를 중얼거리며 역할놀이를 하는 것이었다. 그 나뭇가지는 아침에 책가방이 한 역할을 대신하여 적과 싸우는 소닉이 되기도 하고 생일 파티를 엉망으로 만드는 장난꾸러기 풍선이 되기도 하였다. 넝쿨식물 가지와의 역할놀이에 빠진 R은 나뭇가지를 흔들면서 크게 웃기도 하고 활짝 핀 꽃들을 툭툭 치면서 춤을 추거나 나뭇잎을 향해 호통을 치기도 했다. R은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넝쿨식물과 역할놀이가 R만의 스트레스를 풀며 노는 방식이라 우리들은 다른 아이들이 근처에 가지 못하도록 하면서 적당히 허용해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뭇가지 놀이로 인해 다른 아이가 다칠 뻔했고 Ms. R은 나뭇가지 놀이를 금지시켰다.
나뭇가지를 건들 수 없게 된 R은 식물을 애타게 바라보며 그 옆을 오락가락하다 바닥에서 마른 가지를 슬그머니 줍더니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내려놓으라고 신호를 보내자 “They are so beautiful. I want to play with them.” 하면서 슬픈 표정을 지었다. 계속 슬픈 눈으로 식물을 바라보며 그 주변을 맴돌더니 땅에서 넝쿨에서 떨어진 꽃을 주워 들고 물었다. “How about this?” 눈에 간절함이 가득한 R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나는 그것을 허용했고 꽃 두 개를 들고 혼자 역할 놀이를 하며 왔다 갔다 했다.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꽃이 만개한 그 넝쿨 식물은 R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쉬는 시간 친구였다. 그리고 그 소중한 친구는 R의 눈에는 항상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다음 날, 그다음 날도 R은 가지 대신 잎이나 꽃을 주워서 놀았다. 아무도 안 볼 때면 슬쩍 가지를 들었다가 내가 눈짓을 하면 내려놓고 잎을 하나 따서 왔다 갔다 하면서 놀았다.
그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였다. 저 운동장에 가득한 아이들 중에 한 명도 이해할 수 없는 놀이가 너무 즐거운 아이. 물건을 가지고 상상의 나래를 펴며 노는 R의 남다름이 마음 붙이고 같이 놀 친구 하나 갖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졸업이 가까워지면서 R이 제일 아쉬워한 것은 남다른 아이들이나 우리 교사들과 과 헤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넝쿨식물을 볼 수 없을 거라는 것이었다. 자기가 갈 중학교에는 이 사랑스러운 식물이 없을 텐데 어떻게 하면 좋은지 나에게 몇 번이나 묻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중학교에 가면 새로운 친구들이 많을 테니 친구들과 놀라고 말해주었다.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
“I hate people. I love those plans. They are so adorable!”
가끔 R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R의 깊은 내면에 다른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관계에 대한 갈망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R의 과도한 사람에 대한 혐오, 사람들을 선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마음이 그의 센 엄마의 영향일 것이라 짐작했다. R의 삶의 절반인 학교생활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진심을 봐주지 않고 그들이 하는 모든 행동을 감시하고 분석하여 발견한 실수를 가지고 법정에서 그것이 얼마나 자신의 아들에게 악영향을 미쳤는지, 그들이 얼마나 나쁜 사람들인지 주장하고 정죄하는 동안 R에게 강요되고 주입된 부정적인 감정일 것이리라.
1년 내내 긴장하고 맘 졸이게 만들며 수시로 Ms. R에게 이메일로 따지고 교장에게 전화를 걸어 더 많은 혜택을 요구하던 R의 엄마는 졸업식이 끝나고 교실에 들러 인사 한 마디 없이 R을 데리고 학교를 떠났다. 1년을 함께한 남다른 아이들도, R의 5학년 생활을 무사히 마치게 도와준 교사들도 R의 엄마에게는 의미가 없었던 모양이다. 아마도 R엄마 입장에서는 이 학교에서는 소송을 못해보고 떠나게 되어 화가 났을지도 모르겠다.
졸업식이 다 끝나고 우리 보조교사들은 Ms. R을 도와 남다른 아이들이 떠난 교실을 뒷정리를 하였다. 동료 교사들이 갑자기 R의 이야기를 하던 중 2주 만에 전임 보조교사를 떠나게 만든 R이 Ms.P와는 잘 지내는 게 신기했다며 나에게 비결을 물었다. 나는 동료들의 도움 덕분이라는 인사 후 말했다. “This is a top secret. Maybe he can speak Korean.” “… Hahahaha” 잠시 동작을 멈춘 동료 교사들의 웃음이 빵 터졌다. 하지만 나도 그들이 물어보는 비결을 잘 모르겠다. 그저 운이 좋았던 걸까, 아니면 내 어떤 점이 R의 코드에 맞았던 걸까? 어쩌면 그냥 내가 복 받은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나를 남다른 아이들 속에 초대한 R에게, 내가 처음 보조 교사로 일하게 된 이곳을 마지막까지 떠나지 않고 무사히 내 임무를 마칠 수 있었음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