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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셋, 피할 수 없는 함수 문제 , 삼각관계

사람 숫자 셋이 만들어내는 관계의 슬픈 아이러니, 그 늪에 빠진 아이들

by 날마다 소풍

삼총사가 삼각관계가 되기까지...

두 친구를 너무나 소중히 여기던 한 소년이 마음을 주지 않는 소녀 때문에 가슴 아파하는, 스캔들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순수한 남다른 아이들의 삼각관계 이야기




JA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금발머리, 하얀 피부에 유난히 빨간 입술, 그리고 남다른 신체 발육으로 비너스 조각상 같은 몸매를 자랑하는 5학년 소녀, JA는 눈에 띄는 외모와 어른스러운 제스처로 남자아이들이 자신을 주목하는 걸 알고 있었다. 깊이 파인 여성복을 입고 바람결에 흩날린 긴 금발머리를 뒤로 넘기는 JA의 움직임을 보고 있자면 그 아이가 나르시시즘에 빠져있는 듯 보였다.

JA의 독특한 점은 자신이 정한 사람에게만 곁을 주고 그 외의 사람이 신경을 거슬리게 하면 도에 넘치게 분노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JA를 흠모하는 남자아이들은 마음과 눈은 그 아이를 향했지만 함부로 다가가지 못했다. 너무 발육이 빠르다 보니 혹시 안 좋은 일을 경험할까 봐 애가 타는 JA 엄마가 다른 사람의 접근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가르쳐 온 것 같았다.




SA

5학년 남자아이들 중에 우리 반에서 가장 키가 작고 통통한 SA 애니메이션 호빵맨의 주인공처럼 동글동글 귀엽게 생겼다. 무대공포증이 있는 대부분의 남다른 아이들과 달리 SA는 앞에 나가서 발표할 기회가 주어지면 생글생글 웃으면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들어오는 무대 체질이었다.

그의 남다른 점 중 하나는 글을 쓸 때 , 단어 사이의 간격을 손가락으로 맞춰 완벽한 띄어쓰기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가 쓴 문장을 보면 감탄이 나온다. 그러나 그 과정이 엄청 길 수밖에 없어서 옆에서 보조교사가 얼른 끝내고 다음 활동으로 넘어가자고 하면 “Oh, wait. Wait.”하면서 손가락 간격 맞추어 글쓰기를 마무리해야 하는 아이였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채근이라도 할라치면 통통한 볼이 빨개지면서 화를 내는 통에, 우리 보조교사들은 그를 통해 느림의 미학을 배워갔다.



W


나는 남다른 아이들 중에 가장 얌전하고 수업 태도가 좋고 학습동기가 있는 W가 빨간 머리 앤에 나오는 앤의 소년 버전 같다고 생각했다. 웨이브가 있는 붉은 오렌지 색의 곱슬머리에 주근깨가 가득한 얼굴, 그리고 오렌지 색의 속눈썹은 정말 동화책에서 읽은 앤의 모습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작년에는 굉장히 공격적이고 화가 나면 침을 뱉는 행위로 교사들을 매우 곤란하게 했다는 것을 전혀 믿을 수 없게끔 W는 우리 반 최고의 우수 학생이었다. 물론 그것이 약물치료의 시작으로 인한 변화라 할지라도, W는 모든 수업 시간에 흐트러짐이 없었고 옆에서 채근하지 않아도 수업 분량을 완료하였다. 나는 내가 없던 시절의 침 뱉기 대장이었던 W는 모른 척해주기로 했다. 연산에 매우 뛰어난 재능이 있어서 수학 연산 학습지를 가장 빠른 속도로 마치는 W의 취미는 주말에 수학 학습지를 만들어 와서 주중에 반 아이들이 자투리 시간에 그 학습지를 푸는 것을 보며 즐거워하는 것이었다.

집에 복사기가 없는 W는 3개 학년의 3가지 종류로 된 학습지 13장을 손수 손으로 빽빽하게 써왔다. 다른 아이들 같으면 진력이 나서 절대 할 수 없는 수작업 학습지 제작에 몰두하면 4-5시간을 꼼짝하지 않는다고 W 엄마가 알려주었다.




내가 남다른 아이들과 함께 지내기 시작했을 때, 이 세 아이는 그 누구도 쉽게 풀 수 없다는 삼각관계 문제의 늪에 빠져 있었다.

과거에, 예민한 JA가 곁을 준 유일한 친구들이 W와 SA였고, W와 JA, SA는 삼총사와 같은 끈끈한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급격한 발육으로 인한 호르몬 변화로 비너스에 가까운 몸매를 갖게 된 JA의 마음에 변화가 생겼다. SA 에 대한 감정이 우정에서 사랑이라고 말하기는 너무 성급하고, 애정 가까운 어느 시점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점점 SA를 구속하기 시작했다. 구속이라는 표현이 좀 웃습지만 정말 그렇게 보였다. 쉬는 시간 간식을 먹을 때나 점심시간에 꼭 옆에 앉아 먹는 것 하나하나 잔소리하고, 그네 마니아인 SA가 그네만 타면 왜 자신 옆으로 안 오냐고 소리를 지르고, 누군가 SA의 그네를 빼앗으면 달려와 화를 냈다. 그런데 문제는 SA는 전혀 그런 감정의 정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천진한 아이라는 것.


JA와 SA가 함께 있는 모습을 묘사하자면 이모와 조카 같달까? 학교에 새로 온 직원이 간식 시간에 나에게 살짝 오더니 JA가 SA의 1:1 보조교사인지 진지하게 물었을 정도였다. 땅딸만 하고 동글동글한 SA는 과자 먹으며 다리를 흔들고 있고, 그 직원만큼 크고 왕성한 발육을 보이는 금발머리의 미녀에 여성 브랜드 옷을 입은 JA는 옆에 앉아 과자를 흘리지 마라, 왜 그런 걸 먹냐며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계속 잔소리를 하고 있으니 그럴만했다.



문제는 자꾸 SA에게 집착하는 JA가 자신을 소외시키는 것 같은 느낌 받는 W가 SA와의 우정, JA를 향해 미묘해지는 우정 이상의 감정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한다는 것이었다. JA와 더 가까워지고 싶어 애쓰는 W와 반대로 JA는 SA에 대해 관심이 커지는 동시에 W를 귀찮아하게 되면서 W가 다가가면 “Leave me alone, W!” “Come here, SA!”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럴 때마다 그 큰 눈에 눈물이 가득해져서 오렌지 속눈썹을 껌뻑거리며 어쩔 줄 몰라하는 W가 너무 안쓰러웠다. JA가 노골적으로 자신과의 우정을 귀찮아하는데도 W는 자유시간이 주어지면 늘 JA를 가운데 그리고 양쪽에 자신과 SA를 그린 뒤 Best Friend Forever!라고 쓰곤 했다. 그런 애증의 중심에 선 SA는 전혀 두 사람의 감정선을 인지하지도 못했고, 적당히 JA의 잔소리를 무시하며 자기 하고 싶은 걸 했고, 심심하면 W에게 명랑하게 말을 걸곤 했다.




스피치 수업 후 잠깐 칠판에 낙서할 자유를 갖게 된 W. Gluteen free 만 먹을 수 있어 Junk Food에 갈급한 R가 자기 자리 가득 아이스크림과 사탕 먹는 이야기만 쓰는 사이, 오늘도 W는 여느 때와 같이, 가운데 여자 아이와 양 옆에 남자아이, 세명을 그렸다. 그리고 아이들 머리 위에 커다란 하트를 그린 뒤 그 안에 "BFF(Best Friend Forever)"라 썼다. 커다란 하트 아래 세 아이는 모두 크게 미소 짓고 있다. 그런데 자기가 그린 그림을 물끄러미 보는 W의 눈에는 슬픔이 가득해서 그런 W 바라보는 내 마음도 슬펐다.




삼각관계가 드라마의 흔한 소재가 되는 이유는 쉽게 풀 수 없는 얽히고 섥힌 그 긴장감이 시청자들을 자극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결말이 어떻게 흘러가든 삼각관계에 얽힌 인물들은 승자도 패자도 그 뾰족한 꼭지점에 세 사람 모두를 상처입히기 마련이다. 실생활에서 듣는 삼각관계의 사생활을 들어봐도 좋은 쪽보다는 안 좋은 쪽으로 흐러가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요즘 초등학생들이 예전 같지 않게 조숙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만, 여러 면에서 아직 미숙한 남다른 아이들이 삼각관계의 애정 문제로 힘들어하는 것을 보며 요즘 아이들의 조숙한 현상은 남들과 같이, 이 아이들에게도 찾아왔다는 것이 것이 우스우면서도 안타까웠다. 학습과 삶의 기술을 익히는 것에 느린 만큼 감정의 성장도 느리면 좋으련만. 아직 지적, 정서적으로 어눌한 아이들이 벌써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둘리다 삼각관계의 꼭지점에 찔려 상처 입게 될까 걱정하는 것은 괜한 우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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