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어떤 점이 너를 사랑할 수 없게 하는 것일까' 고민하게 한 아이
말썽을 부려도 사랑받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무엇을 해도 남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아이가 있다. 참 불공평한 일이지만 그런 불합리한 상황을 내 삶 속에서도 보고 들어왔다. 우리 반에서는 H가 두 번째에 해당하는 아이였다. 일부러 그러는 건지, 몰라서 그러는 건지 친구들에게도 교사들에게도 호감을 사지 못하던 아이. 얄궂게도 그것이 안 됐으면서도 진심으로 다가가기 어려웠던 아이. 그 안타까운 사연의 H의 이야기
우리 반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는 3학년 H이다. 긴 금발 머리를 어깨에 찰랑거리고 발꿈치를 들고 종종걸음으로 돌아다니는 이 소년은 늘 손에 포켓몬 캐릭터 책을 들고 있다. H의 문제점은 남다른 아이들 속에 있기에는 너무 똑똑한 반면, 남 같은 아이들 속에 있기에는 너무나 너무나 게으르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그 딜레마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 같은 H가 안쓰럽기보다 미움이 불끈 솟게 얄미울 때가 더 많아 교사들을 혼란에 빠뜨린다는 것이다.
3학년임에도 5학년 아이들보다 수학 문제 이해력이 빠르다. 게다가 교사가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의 독특한 방법으로 문제를 척척 풀어 내기도 한다. 그런데 그렇게 자신의 능력을 공부에 사용하기까지 발동 걸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문제 풀기를 시작하려면 교사와 실랑이를 벌이기 일쑤다. 못 되게 굴기로 마음먹은 때는 보조교사가 달래기도 하고 화를 내도 못 들은 척에, 일부러 말썽을 부린다는 것이다. 또 공부에 집중하는 시간이 너무 짧아서 한두 문제 어찌어찌 풀고 나면 칭찬을 하고 포인트 점수를 주고 꼬셔서 다음 문제로 넘어가기까지 또 보조교사 진을 뺀다. 그러다 그것조차 수 틀리면 연필을 일부러 부러뜨리고 연필 깎으러 간다고 한참을 부산을 떤다. 보조교사가 하는 말이 잔소리로 접수되면 답을 쓰면서 일부러 힘을 주어서 반복하여 숫자를 써서 책에 구멍을 내고, 그것이 보조교사 때문이라고 억지를 쓰곤 했다.
사람을 진 빠지게 하는 그 과정으로 인해 보조교사들이 H을 맡게 될 때면 도 닦는 심정으로 인내하다가 끝내는 화를 내거나 절망감에 빠지곤 했다. 모르고 서툴러서가 아니라 다 알면서 심사가 뒤틀리면 시비 걸 거리를 만들어 내는 H는 가끔은 불쌍히 여기고 싶은 마음도 사라지게 했다. Ms. R이 가방에 포켓몬 책을 넣고 교실에 들어가라고 하면 두 손을 사용하여 넣으면 잘 들어갈 것을 가방에 대충 넣는 척하고 일부러 지퍼를 닫지 않아 가방의 물건이 포켓몬 책과 함께 쏟아지게 하고는 그냥 교실로 들어간다. 그것을 본 보조교사가 다시 정리하라고 하면 보조교사의 탓을 하며 못 들은 척하는 것이다.
교사들끼리 H는 어떻게 해야 사람이 화를 내는지 너무 잘 알고 그것만 찾아서 하는 것 같다고 농담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가끔 보면 그런 태도 또한 교사의 관심과 돌봄을 받고 싶기 때문인 것 같다. 어쩌다 이야기는 하는 것에서 집안의 분위기를 파악해 보면 부모가 관심을 두지 않고 매우 엄격하게 훈육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다 학교에만 오면 봉인 해제가 된 것처럼 모든 규칙과 해야 할 것들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 같았다.
교사들에게뿐만 아니라 H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데도 그 바람과 달리 다른 아이들의 외면을 받기 일쑤였다. 게다가 관심받는 방법으로 아이들을 이간질시키는 전략을 사용하였다. 그러다 보니 일반 학급 아이들뿐 아니라 남다른 아이들조차 H가 자신들이 하는 것에 끼어들거나 관심이라도 가지면 화를 내며 밀어내어 늘 외면당하는 상황이 되었다.
교실에서 사용하는 열세 개의 Chrom Book 중에 H의 크롬북 자판만 이가 빠지고 툭하면 화면이 끊겼다. 조금만 비위가 상하면 일부러 크롬북을 고장 나게 만들 줄 아는 아이가 H였다. 어떻게 알아낸 건지 작동이 되지 않도록 만들거나 이상한 화면이 나오도록 만들어서 수업을 할 수 없다며 뻗대는 H. 마우스 버튼이 다 망가지고 자판 키가 사라져서 자판 안의 부속이 보이는 크롬북을 보면 그것이 H 마음속이 아닌가 싶다.
누구보다 관심과 사랑받고 싶은데 사랑을 잃어버리는 행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그 아이의 마음에, 어떤 키가 사라졌기에 발바닥 전체를 땅에도 딛지 못하고 이리저리 종종거리며 다니면서도 누구에게 동정의 마음조차 받을 수 없는 미운 행동들을 하게 되는 걸까?
새 학년에 H의 크롬북은 아마 다시 사용할 수 없을지 모른다. 아니 어쩌며 뛰어난 기술자가 잘 고쳐줄지도 모르겠다. H의 마음과 생각 속에 부서진 조각들도 고쳐질 수 있으면 좋겠다. 아직은 늦지 않았을 텐데... 두 발을 맘 편하고 딛고, 사람들과 긍정적인 교류를 할 수 있는 H가 될 수 있도록 내가 그 부서진 키를 하나라도 찾아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