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의 대상으로 종이조각을 선택한 사랑이 고픈 아이
나이 많은 부모에게서 사랑을 채움 받지 못하고, 자신의 사랑을 나눠줄 대상도 갖지 못해 매일 새로운 종이조각을 애완 종이 삼아 만지고, 뽀뽀도 해주고 주머니에 꼭 넣고 다니는 MT의 이야기
우리 반의 HUG-Boy, MT는 기회만 되면 교사들의 Hug를 요청하는 키가 작고 빼빼 마른 5학년 아이다. 수업을 하다가도 그네를 타다가도 간식을 먹다가도, 문득 옆에 있는 교사에게 어떤 때는 저 멀리 있는 교사에게도 달려와서 “Hug!”라고 한다. 우리 반 교사들은 MT가 Hug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또 MT에게 그것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럴 때마다 아무 말하지 않고 꼭 안아준다.
MT는 평생 장애 아동들을 입양하여 키우는 두 부부에게 입양된 아이다. 자기보다 서른 살도 더 많은 형도 있는 입양가정의 막내이니 MT의 부모는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보인다. 실제 손자 소녀를 한참 전에 봤을 나이이기도 하다. 좋은 마음으로 장애아들을 입양하지만 경제적인 형편도, 부모의 건강도 좋지 않으니 당연히 따뜻한 보살핌을 주지 못해 사랑에 늘 배고픈 아이다. 그래서 학교에서 선생님들에게 또는 마음 좋은 친구 부모들에게 Hug를 받고 싶어 하였다.
MT의 취미이자 삶의 기쁨은 잡지에서 오린 그림이나 그날 마음에 닿는 것을 우리 보조교사들에게 부탁해서 우리가 써 준 글씨나 그려준 그림이 있는 종이를 하루 종일 접고 쓰다듬고 뽀뽀까지 해주며 만지작거리는 것이다.
지난번에 잃어버릴까 봐 그네 아래에 둔 종이를 못 챙기고 왔는데 수업이 시작되자, 주머니를 뒤적이던 MT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나를 부르더니 종이가 그네 아래 있단다. 수업 끝나고 가지러 가자고 하니 어쩔 줄을 몰라 허둥거리며 당황해하기에 Ms. R의 허락을 받고 둘이 종이를 찾으러 갔다. 흙에 파묻힌 종이 조각을 발견한 MT는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은 것처럼 종이를 얼굴에 비비고 뽀뽀를 하더니 잘 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렇게 아끼던 종잇조각들도 새로운 종잇조각이 생기면 슬그머니 어디론가 사라진다. 매일 새로운 애완 종이들을 선택하는 MT다. 그런데 미식가들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아무 음식이나 먹지 않는다는 것처럼 아무 종이나
MT에게 사랑받는 것은 아니었다. MT의 애완 종이는 기분에 따라 그 날의 선호도에 따라 신중하게 정해졌다.
MT가 가장 좋아하는 종이 조각은 수업 시간 들었던 단어나 Cromebook으로 수업을 하다가 발견한 단어를 교사에게 적어달라고 해서 갖게 되는 메모이다. 어찌나 까다로운지 이건 색연필로 써라, 저건 빨간펜으로 써라, 글씨가 더 두꺼워야 한다… 요구가 많다. 이와 같이 MT에게 뽑혀서 애완 종이를 만들어주는 교사는 가끔 진땀을 빼기도 한다. 가장 어려웠던 도전은 스페인 국기에 꽂힌 MT가 너무 간절하게 스페인 국기를 그려달라고 해서 한참을 낑낑거려야 했던 것이었다.
다른 아이들과의 갈등이 무서워서 언쟁이 날 거 같으면 피하고 마는 MT를 우리들은 늘 안타까워했다. 5학년이 끝나면 중학교에 가는데 MT가 소중한 애완 종이를 빼앗길 때, 드센 아이들이 그네 타려고 줄 서있는 MT 앞을 새치기할 때 누가 도와줄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MT에게 억울한 상황에 대처하는 기술을 좀 가르치기로 했다. 그네를 빼앗기거나 자기 차례가 되어도 타고 있는 아이가 안 비켜줄 때, 다른 아이들이 MT가 싫어하는 것을 할 때 얼굴이 빨개져서 혼자 왔다 갔다만 하다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던 MT에게 우리는 “내 차례니 비켜줘.”,”나는 그것을 싫어해. 하지 마. “라고 말하도록 가르쳤다. 그러나 그것을 다 배우기도 전에 졸업식이 다가왔다.
마이크를 비롯해 큰 소리를 두려워하는 MT는 전교생이 모이는 조회나 행사가 있으면 꼭 빨간색 헤드폰을 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긴장해서 교사 옆에 붙어 꼼짝을 하지 못했다. 이제 중학교에 가면 누가 헤드폰을 챙겨주고 누가 Hug를 해줄지 우리는 졸업이 다가올수록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중학교와 초등학교의 차이를 체감하지 못하는 MT는 졸업식이 끝나자 끼고 있던 빨간 헤드폰을 교사에게 주고 나서 신나게 할머니 같은 엄마를 따라 학교를 나섰다. 오늘의 애완 종이를 만지작거리면서.
MT가 중학교에 가서는 종이조각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사랑을 느끼고 사랑을 나눠주고 싶어 지면 좋겠다. 그래서 두 손에 꼭 쥐고 있는 것이 종이조각이 아닌 누군가의 따뜻한 손이기를, 그리고 충분히 사랑을 받아보는 삶이 그에게 주어지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