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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hing wrong with you, A.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달아나던 생각을 향해 슬픈 질문을 던지던 아이

by 날마다 소풍

내 미소가 좋다고 심지어 내 머리카락도 좋다고 말해주던, 자신의 남다름에 대해 젖은 눈으로 의문을 던지던 A의 이야기




“Hi, Ms. P!” A가 스쿨버스에서 내려 나에게 “안녕한지”물어줄 때면 나는 그 인사에서 A의 진심이 느껴지는 기분이 들곤 했다. A는 금발머리에 통통한 볼이 몹시 사랑스러운 3학년 남자아이였다. 다른 아이들의 인사에서는 미국식 매너 교육에 의한 자동반사적인 인사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A가 내 눈을 바라보고 “Hi, Ms. P!” 하며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면 A가 진심으로 나에게 “Hi”라고 묻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했다.

이 사랑스러운 볼 통통이 A에게는 요즘 표현으로 “멍 때리는” 습관이 있었다. 멍 때리기 대회에 나가면 우승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실력을 가지고 있는 A는 수업 시간에 수시로 허공을 응시하며 멍~하고 있어서 지적을 받곤 했다. 이름이 불리면 잠깐 제정신으로 돌아와 자신이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있음을 깨닫는 듯하다가 수업 중간에 보면 슬그머니 시선이 허공을 향하고 학습지는 아무것도 안 쓰인 채 비어있었다. 바로 옆에서 같이 학습지나 받아쓰기 단어 공부를 하다가도 잠깐 다른 아이를 봐주다 돌아보면 정신이 저기 교실 밖 어딘가를 맴돌고 있는 A를 보곤 했다.

처음에는 멍하게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A를 발견하면 “A!” 하고 크게 이름을 불렀다. 그럴 때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스스로도 정신이 딴 데 있었다는 것에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얼굴이 불그레해지는 A를 보며 마음이 불편했다. Ms. R은 가뜩이나 쓰는 것이 느린데 자꾸 멍 때리면서 딴생각에 빠져 수업 내용을 놓치는 A를 꾸짖곤 했다. 그래서 나는 멍~하고 있는 A를 발견할 때면 다가가서 작은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며 어깨나 팔을 살짝 건들어 주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A의 멍한 표정이 슬픈 표정이 되면서 “What’s wrong with me?”라고 내 눈을 보고 물었다. 그 말을 들을 때, A 스스로도 자꾸 생각이 딴 세상으로 흘러가는 것을 힘들어하는 것 같아 참 안타까웠다.

“What’s wrong with me?”라며 울상을 짓는 A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There is nothing wrong with you.”라거나 “You have nothing wrong, Try to focus on your work.”라며 뒤처진 수업 내용을 따라가도록 돕는 것뿐이었다. 그러면 잠시 침울해서 삐뚤빼뚤 글씨를 쓰던 A는 조금 뒤 다시 통통한 볼 가득 미소를 지으며 뜬금없이 “I like your hair."이라든지 “I like your T-shirts.”라는 말을 던진다. 아마도 고맙다는 뜻 이리라.

미소가 귀여운 볼 통통 A는 글씨를 참 독특하게 썼다. 글씨를 쓸 때마다 대문자와 소문자를 섞어서 쓰곤 했는데, 지적을 해도 안 고쳐진 건지, 철자만 맞으면 그냥 두었기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대문자와 소문자를 섞어서 쓰는 것이 습관으로 굳어진 듯했다. 그런데 이 삐뚤삐뚤 대문자와 소문자의 섞인 조합이 간혹 외계 문자처럼 여겨질 때가 있었다. 문장을 쓸 때도 대문자와 소문자가 삐뚤빼뚤 섞여 있어서 한눈에 알아보기 쉽지 않아서 A의 학습지를 확인할 때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첫 글자만 대문자로 쓰라고 이야기하지만 A 나라의 독특한 조합의 글씨 쓰기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네 마니아(Mania)이기도 한 A는 쉬는 시간에 늘 그네를 탔다. 그네 앞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기분이 좋을 때 A는 요즘 미국 학생들 사이에 유행하는 'Backpack Kid Dance' 춤을 추곤 했다. 내가 너무 귀여워서 춤 잘 춘다고 칭찬을 해주면 통통한 볼 가득 미소를 지으면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 I like your smile.”이라는 말로 대답하곤 하였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교실 밖에서는 놀 때는 멍 때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A의 멍해지는 습관은 A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 A의 마음과 정신이 도망가게 하는 “수업”이라는 녀석이 잘못이지. 이 날도 몇 번이나 멍 때리기 후, 슬픈 눈으로 “What’s wrong with me?”했던 A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It’s not your fault!!!”라고. 그러나 어쩌리… 실제로는 OK가 아닌 것을. 만날 밖에서 놀 때만 정신 차리고 수업시간에는 멍 때려도 괜찮다고 한다면 A는 배워야 할 기본적인 지식과 학습 능력을 배우지 못한 채 초등학교를 졸업하게 될 것이다. 중학교 가기 전에 제대로 읽고 쓰고 더하고 뺄 줄은 알아야지. 그래서 나는 이 날도 적당히 타협하여 말해줬다. “You are totally okay, but you need to focus on class.”



남다른 아이들의 사건과 사고 속에 지쳐서 웃음이 안 나오는 날 또는 여러 가지로 분주한 마음에 웃고 싶지 않은 날, 체면치레로 웃는 척하고 있는 나에게 A는 뜬금없이 말하곤 했다. “I like your smile.” 그 말을 하면서 통통한 볼에 한가득 웃음을 머금은 A의 반짝반짝한 미소를 바라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반짝반짝한 미소를 짓고 있다. 삐뚤빼뚤 대문자와 소문자가 뒤섞인 A의 학습지의 글씨들도 같이 웃고 있는 기분이 들어 나는 A를 향해 진심으로 웃으며 말해주었다. “I like your smile, t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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