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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Dec 31. 2018

Happy Age-Free New Year!

한국 나이 말고 미국 나이를 먹고 있어요.

이 글은 새해가 다가오면 새로운 해에 대한 희망보다 나이 한 살 더 먹어야 한다는, 

내 나이가 벌써 몇이라는 서글픔을 먼저 느끼는 주변 사람들과 나 자신을 보며 2018년 마지막 날 쓴 글이었다.

이 글을 브런치에 올린 며칠 뒤, 뉴스를 검색하다가 깜짝 놀랐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황주홍 위원장이 출생일부터 연령을 계산하는"만 나이" 사용을 권장하는 법안을 발의했다는 것이다.


태아를 한 인격으로 존중하는 의미에서  뱃속에서의 열 달을 1년으로 계산하여 출생 후 1살, 새해가 되면 2살이 되는 한국식 나이(12월 31일 태어난 아기는 다음 해 1월 1일이면 벌써 2살이다), 

병역법이나 청소년 보호법 같은 일부 법률에서 사용하는 연 나이, 

그리고 '빠른 68년이야' 같은 사회적 나이를 비롯해 

법률관계에서 사용되는 만 나이까지.(생일을 맞을 때마다 한 살을 먹는다. 3월 4일 태어난 아기는 다음 해 3월 4일이 되면 만 1살이 된다. 실제 1살이 되는 돌에 하는 돌 잔치는 아기의 탄생 1주년을 축하하는 것)

우리나라에서는 4가지 나이가 사용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나이 문화에 불편함을 느껴왔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브런치에 약간의 반항적 색채를 띤 사적인 글을 올리는 것뿐이었고 이 글은 아마 몇몇 구독자가 읽은 후 사장될 텐데, 

나랏일을 하는 분이 우리나라 나이의 불합리함을 깨닫게 되니 국회에서도 논의가 되는구나. 와우~ 유레카!

역시 옳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 아닐까?


황 위원장에 대해 아는 것이 전무했지만 복잡한 나이 문화 때문에 '누가 오래 살았나' 심지어 '몇 월생이냐'  같은 문제로 말도 안 되는 서열다툼이나 일어나고, 법률적 처리나 서류작성에서도 수시로 마찰이 일 수 있어 '몇 살'보다 '몇 년 생'이라 해야 정확하게 나이를 알 수 있는 우리나라의 불합리한 상황을 국회에서 논의할 수 있게 앞장섰다는 점에서 황 위원장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덕분에 오랜만에 국회에서 정말 해결해야 할 민생의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모습을 보게 될 거 같아 반갑다.


내가 사랑하는 대한민국이

살다 보면 나이 같은 거 정말 별거 아닌데 

한 살 더 많아서, 빠른 68년 생이라 또는 한 달 먼저 태어나서 대우받겠다고 아등바등거리는 나라가 아닌

깊이 생각하고 많이 배려하고 넓게 베푸는 사람들이 대우받는 합리적인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반가운 소식을 읽고, 우리나라 나이 체계에 대해 소심하게 반항했던 내 원글 머리말에 

의미 있는 황 위원장의 발의안 관련 사족을 달아보았다.



소심하게 한국의 나이 문화를 성토했던 지극히 사적인 나의 글 원문



올해 몇 살이야? 또는 몇 살이에요?

새해가 되면 듣는, 피하고 싶은  이 질문을 받을 때 이렇게 대답해도 될까요?

여전히 그 나이예요. 저는 한국 나이 말고 미국 나이를 먹고 있어요




한 해가 저물어가고 새로운 해가 코 앞에 다가오는 시점이 되면 사람들이 "나이" 이야기를 많이 한다.

내 주변의 마흔과 쉰의 어디쯤에 있는 사람들이 나이와 건강 이야기를 제일 많이 하는 때도 이맘때이다.


십 대이던 시절에는 떡국 한 그릇과 함께 나이 한 살 더 먹는 것이 신이 났다.

나이를 더 먹을 수만 있으면 떡국을 두 그릇, 세 그릇이라도 먹고 싶은 시절이었다.

스물 중반 까지만 해도 새해가 시작되는 것이 즐겁고 설렜다.

그러나 서른에 가까워지면서 새해와 함께 늘어나는 나이가 부담스러워졌다.

그래서 누가 나이를 물으면 “만으로……”라면서 한국 나이가 아닌 만으로 나이 계산을 하기도 했다.

마흔에 다가가면서부터는 떡국을 안 먹어서 나이를 안 먹을 수 있다면 떡국 같은 것은 안 먹고 싶었다.

새해가 되어도 아이들만 나이를 먹고 내 나이는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12월 31일을 끝으로 2018년이 끝나고  2019년이 시작된다.

한국에 살았다면 한 밤 자고 나면 내 나이는 한 살 올라가게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새로운 해가 시작되면 "올해 몇 살이나 되었나?"는 질문에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낯선 나이를 답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미국에 살면서 좋은 점이 새해가 다가와도 나이가 더해지는 부담이 없다는 것이다.

1월 1일에 태어난 사람을 빼고는 아무도 1월 첫날이라고 자기 나이에 숫자 하나를 더 얹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만으로 계산하는 나이가 미국의 나이 계산 법이다.

생일이 되어야 나이 숫자 하나가 올라간다.

그래서 미국의 새해는 Age-Free New Year이다.

덕분에 나이 한 살 더 먹고 몸 여기저기가 더 쑤시는 듯한, 한 살 더 늙은 사십 대의 새해가 아닌, 오늘과 같은 나이로 새해를 맞을 수 있음에 자유로움을 느낀다.

내 생일인 여름이 올 때까지 나는 여전히 오늘과 같은 나이로  2019년의 반을 살 것이다.

여름이 오기까지 한국 나이 말고 미국 나이로, 나는 여전히 두 살이나 젊은 나이로 살고 있을 것이다.




나이를 빨리 먹고 싶은 어리고 젊은 사람들에겐 한국 나이로

나이를 더디 먹고 싶은 덜 어리고 덜 젊은 사람들에겐 미국나이로 계산해주면 어떨까?

내일이면 한국 나이로 한 살 덕 먹는다고 신이 난 우리 아이들을 보며 생각해본다.


한국 나이, 미국 나이 사실 별거 아니야.

내가 얼마나 살았나 세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

마흔이든 쉰이든 100살 인생이라는데 아직 멀었으니

반이나 남은 세월을 열심히 사는 게 더 중요하지.

미국에 살면서 내일이면 나이 한 살 더 먹을 생각에

한국 나이 따라 늙는 몸 걱정하는 남편의 어깨를 위로의 말로 두드려준다.  


2018년 계획한 일들이 아직 그대로라구요? 괜찮아요. 우리에겐 2019년이 있잖아요. ^^




한국 나이 먹고 싶은 사람은 원하는 대로 내일 한 살 더 먹고

미국 나이 먹고 싶은 사람은 태어난 날까지 기다려서 한 살 더 먹으면 되고.

Age is Free!


Boys and Girls,

Ladies and Gentlemen,

Happy Age-Free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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