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심과 긴장감은 다르다
나는 천성적으로 내성적인 성격을 가지고 태어났다. 오죽했으면 중학교 1학년 때 가정통신문에 '내성적이고 적극성이 부족'이라고 담임선생님이 적었을까? 중학교 3학년 때는 한 술 더 떠서 '지나치게 내성적인'이라는 강화된 코멘트가 붙었다.
어느 모임에서 돌아가면서 간단하게 자기를 소개하거나, 순번이 돌고 돌아서 건배사를 제창할 때, 노래방에서 선곡을 하고 일행 앞에서 노래를 할 때도 긴장한다. 그래서 아예 노래방은 가지 않는다. 하물며 수백 명의 청중을 대상으로 2시간 강연을 하려면 경험이 일천한 강사는 오금이 저린다. 무대 긴장감을 해소하지 못하면 나와 청중에게는 악몽이기에 고민이 깊었다.
생각 다 못해서 중대한 결심을 했다. 서울역 광장 앞에서 5분 스피치를 하자! 노숙자들이 시비를 걸어서 5분을 채우지 못하고 도망갔다. 비교적 한가한 시간대인 오전 10시에 지하철을 타고 행상처럼 5분 스피치를 해보기도 했다. 모임이나 파티에 나가면 일부로 나가서 큰 목소리로 구호(일본에서 연수받으면서 배운 MK택시 사훈)를 외쳐서 분위기를 깨기도 했다. 그만큼 나에게 공포심의 제거는 간절했다.
2009년 9월 16일, 드디어 대기업에서 강연할 기회가 생겼다. 장소는 삼성생명 ‘전주 연수소’였고 강연 시간은 오후 1시 30분부터 3시까지 90분간이었다. 새벽에 서울에서 출발해서 아침 7시에 도착했다. 강연 시작 시간보다 6시간 30분이나 일찍 도착한 것이다. 경비실 창문을 두들겼다.
“제가 오늘 오후에 이곳에서 강연을 하는데, 아직 생초보라서 긴장이 많이 됩니다. 그래서 미리 강연장을 둘러보고 익숙해지기 위해서 지금 도착했습니다. 강연장으로 안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 간절한 눈빛이 통했는지 경비원은 열쇠 꾸러미를 챙겨서 나를 강연장으로 안내해 주었다. 강연장 문을 열고 스위치를 올리니 강연장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계단식으로 된 객석과 원형 극장식의 멋진 장소였다. 경비원에게 1시간만 있다가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아무래도 9시에 다른 강좌가 시작되면 8시경에는 장소를 비워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빈 객석이지만 청중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무대 위에서 리허설을 했다. 그리고 천천히 객석의 다섯 곳-사각형의 코너와 정중앙-에 앉아서 내가 강연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피교육생의 입장이 되어 보았다. 무대에서 강연하는 나의 모습과 내 강연을 듣는 청중을 유체 이탈된 듯이 높은 위치에서 관망하고자 했다.
당연히 마이크로부터 스피커로 전달되는 소리도 음미해보았다. 무대와 각 객석의 위치에서 들리는 소리는 서로 다르다. 기준은 강사가 무대에서 말하는 자신의 소리가 아닌 객석의 위치에서 들리는 소리여야 한다. 어느 정도의 톤과 속도와 강도로 말해야 가장 좋은 소리인지도 예상해보았다. 빈 강의실과 사람으로 꽉 찬 강의실은 소리가 다르다. 사람이 소리를 흡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 리허설할 때는 목소리 톤을 높였다.
“교육 담당자에게는 제가 왔다는 것을, 리허설을 했다는 것을 비밀로 해주십시오.”
친절한 경비원에게 신신당부를 하고 나는 차를 몰아서 인근 무인 텔 숙박업소로 행해서 강연 시작 전까지 반복해서 가상 리허설을 진행했다. 실제 강연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경험의 누적은 일상이 되어 무대공포증을 자연스럽게 없앴을 수 있었다. 그래도 적당한 긴장감을 가지고 임하려고 한다. 지금은 강연을 하지 않는 상태나 청중이 적으면 오히려 더 긴장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작은 노력으로 무대공포증을 해소하는 시간을 단축했음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