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다
우리의 시작은 역설적이게도 이 도시에서 가장 소란스러운 클럽의 심장부였다.
하지만 쏟아지는 미러볼의 파편과 고막을 짓누르는 비트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가 가진
'화려하지 않은 결'을 본능적으로 알아봤다. 그는 번쩍이는 조명 아래 서 있었지만, 그 눈빛만은 갓 길어 올린 심해의 물처럼 고요하고 투명했다. 사람들이 에메랄드빛 환상에 취해 몸을 흔들 때, 우리는 그 소음의 한복판을 마치 정막한 숲속처럼 거닐었다. 자극적인 향수 냄새 대신 서로의 소매 끝에 밴 희박한 담배 연기와 차가운 밤공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화려한 소굴에서 우리가 추구했던 것은 과시적인 열광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을 만큼 낮고 고요한 우리만의 주파수였다. 우리는 클럽의 자극적인 소음을 뒤로하고, 우리만의 요새였던 밤바다로 향했다. 검푸른 수평선 너머로 밀려오는 파도는 낮에 보았던 우울한 푸름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의 감싸주는 거대한 커튼이었고, 심장 박동 소리를 대신해 주는 오케스트라였다. 백사장을 걷는 내내 우리의 손끝은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그 짧은 접촉만으로도 온몸에 전기와 같은 진동이 일었다. 생애 처음으로 느껴보는 이성과의 좁혀진 거리. 나는 그 낯선 긴장감이 무서우면서도,
그가 더 가까이 다가와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잠깐만.”
그가 내 걸음을 멈춰 세웠다. 파도 소리가 갑자기 고막을 때릴 듯 크게 들려왔다. 그는 천천히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어둠 속에서도 나를 투과할 듯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는 오직 나만이 담겨 있었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못하고 혼자서만 꼿꼿하게 서 있으려 했던 내 어깨를, 그가 조심스럽게 감싸 안았다. 말은 필요 없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그동안 내가 들어왔던 '장하다'거나 '고생한다'는 말들 대신, 전혀 다른 이야기를 내게 건네고 있었다. 그 무언의 긍정만으로도 내 세상은 멈춘 듯 고요해졌고,
그의 얼굴이 조금씩 가까워졌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주한 생애 첫 입맞춤.
처음 느껴보는 타인의 숨결은 뜨거웠고, 입술에 닿는 감촉은 솜사탕처럼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했다.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아 발가락 끝까지 힘이 들어갔다.
그 순간만큼은 아빠가 사라진 기나긴 단절의 시간도, 엄마의 마른 흐느낌도, 내일의 고단함도 모두 파도 소리에 씻겨 내려갔다. 오직 그의 입술에서 전해지는 온기와 내 몸을 관통하는 찌릿한 전율만이 유일한 현실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입을 맞추는 행위가 아니었다. 억눌려 있던 나의 생명력이, 그동안 잊고 살았던 나의 욕망이 비로소 깨어나는 의식이었다. 나는 그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며 그 강렬한 쾌감 속으로 깊이 침잠했다. 비참했던 새벽길의 공기마저 이 순간만큼은 축복처럼 느껴졌다. 긴 입맞춤이 끝나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세상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색채로 빛나고 있었다. 젖은 모래알도, 저 멀리 보이는 등대 불빛도 모두 나를 축복해 주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품에 얼굴을 묻으며 생각했다. 이 낯선 땅에 온 이후 처음으로, 나는 이곳에 내가 살아있음을, 그리고 사랑받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지독하게 시렸던 나의 계절에,
드디어 가장 뜨겁고도 아찔한 첫 번째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