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다

by 윤슬

그해 여름 비는 때때로 또 예고 없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의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창밖의 빗소리는 더 이상 불안의 전조가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완벽하게 격리해 주는 다정한 성벽이자, 오직 두 사람만이 공유하는 은밀한 배경음악이었다.

현관문을 닫자마자 폐부로 스며드는 따스한 온기. 그의 공간은 내가 늘 지도를 펼치고 거친 길을 개척해야 했던 바깥세상과는 전혀 다른 주파수가 흐르는 곳이었다.

그는 젖은 내 코트를 받아 걸어주며, 비에 젖어 서늘해진 내 어깨를 커다란 손으로 감싸 안았다. 그는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 어깨에 실린 삶의 무게를 눈빛 하나로 읽어내는 깊이를 지니고 있었다.


"오늘 유독 지쳐 보이네."


그가 내어준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는 동안, 나는 비로소 수만 톤의 무거운 책임감을 벗어 던질 수 있었다. 밖에서는 내가 모든 것을 결정해야 했지만, 이 방 안에서만큼은 나도 길을 잃고 누군가의 품속으로 숨어들 수 있는 한 사람이 되었다.


창밖의 빗소리가 거세질수록 방 안의 정적은 더욱 농밀해졌다.


그가 내 곁으로 다가와 앉으며 뺨을 타고 흐르는 빗물 한 방울을 손가락으로 닦아냈다.


그의 손가락 끝이 살결에 닿는 찰나, 아찔한 전율이 등줄기를 타고 낮게 깔려 나갔다.


"너는 가끔 너무 멀리 있는 사람 같아. 내가 이렇게 옆에 있어도 말이야."

그의 나직한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그 진지하고도 다정한 음절들에 가슴 한구석이 눅눅하게 풀려내렸다. 그는 나를 동정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온전하게 '나'로서 숨 쉴 수 있도록 자기의 온기를 아낌없이 나누어 줄 뿐이었다. 그 다정한 위로가 도화선이 된 듯, 서로의 숨결 속으로 깊게 침잠했다.


맞닿은 입술은 그동안 억눌러왔던 모든 생존 본능의 분출이자, 지독한 갈증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의 뜨거운 숨결이 파고들 때마다 나는 그의 목을 꽉 끌어안으며

거친 파도처럼 밀려오는 감각에 몸을 맡겼다.


거실의 조명은 아득하게 멀어지고, 오직 서로의 뜨거운 심장 박동과 살결이 맞닿으며 내는 눅눅한 소리만이 정적의 빈틈을 메웠다.


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