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방학이다!”
종례를 마친 담임이 교실 밖으로 나가자 아이들이 소리를 질렀다.
오늘부터 겨울 방학이다. 사실 방학이라고 해봐야 재이는 딱히 좋을 것도 없었다. 오히려 더 지루하고 재미없을 뿐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방학 동안 더 바쁘다는데, 재이는 학원에 다니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남아돌았다.
재이는 신발주머니를 챙겨 복도를 지나 아래층 계단을 내려갔다.
짝 민준이가 같이 가자며 뒤에서 재이의 목을 껴안았다.
“재이야, 넌 방학 동안 어디가?”
“아니, 갈 데 없는데?”
“부럽다! 난 숨 쉴 틈이 없는데.”
민준이와는 집 방향이 달라서 교문 앞에서 헤어졌다.
재이는 집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고개를 숙이고 걷다가, 발에 뭐가 걸려 무심코 툭 찼다. 순간 뭔가가 반짝 빛을 냈다.
뭐지?
재이는 바닥 쪽을 유심히 살폈다.
발 모양의 펜던트가 흙투성이가 되어 길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재이는 그것을 주워 들었다. 한 손에 쏙 들어왔다.
앞부분은 다섯 발가락이 달린 발 모양이고 뒷면은 납작한 평면이었다. 펜던트 뒷면에 5.18이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5.18? 이게 뭐지?
누가 목에 걸고 다니다가 떨어뜨린 모양인지 목줄이 끊어져 있었다.
펜던트는 들여다볼수록 알쏭달쏭했다. 그냥 버릴까, 했는데 이상하게 호기심이 끌렸다.
재이는 대충 흙을 털어 바지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집에 도착해 번호키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가방을 책상 위에 던져두고 펜던트를 꺼냈다.
흙이 묻은 누런 펜던트를 헝겊으로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았다.
펜던트는 닦으면 닦을수록 노랗게 광채가 났다.
갑자기 주위가 어슴푸레한 안개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방안은 금세 숲의 싱그럽고 풋풋한 향기가 퍼졌다. 재이는 낯선 상황에 어리둥절했다.
꿈인가?
밖은 분명 겨울인데 방안은 연둣빛 새순이 뾰족뾰족 돋아나는 봄 숲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방문 밖으로 나가려 해도 방문이 보이지 않았다.
방문을 찾으려고 앞으로 나아가면 갈수록 자꾸 숲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재이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엄마에게 전화하려고 핸드폰 전원 버튼을 켰다.
핸드폰은 되지 않았다. 와이파이도 전화기 작동도 되지 않았다.
재이는 새소리가 나는 숲 속으로 걸어갔다. 아니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안개에 묻힌 숲 속 고목엔 푸른 이끼가 깔리고, 나무뿌리가 뒤엉켜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숲 속은 쭉쭉 뻗은 나무들이 끝도 없었다.
재이는 숲 속 풍경들이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었다.
새순이 돋아나는 나뭇가지로 쏟아지듯 내리쬐는 햇살, 어디선가 들려오는 맑은 새소리, 부드러운 바람결에 전해오는 꽃향기. 마치 꿈속을 걷는 듯했지만, 꿈이라기엔 눈앞의 사물들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였다.
숲을 따라 걷다 보니 오솔길이 보였다. 바닥은 부드러운 잡초들이 깔려 있었다.
재이는 저도 모르게 뭔가에 홀린 듯 오솔길을 따라 계속 걸어갔다.
숲 한쪽 계곡에서 아이들이 뭔가 잡고 있었다.
아이들은 재이가 온 것도 모르고 바위틈에서 뭔가를 잡느라 정신이 없었다.
재이도 아이들 틈으로 그곳을 들여다보았다.
커다란 돌덩이를 젖히자 가재가 놀란 듯 빠른 걸음으로 달아났다.
한 아이가 그것을 잽싸게 잡아 병에 넣었다.
재이도 얼떨결에 아이들 곁에서 가재를 잡았다.
같이 있던 아이 중 하나가 물었다.
“근디, 니는 누구여?”
“어디 산당가?”
재이는 좀 당황스러워 얼굴이 붉어졌다.
“어,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어. 근데 너희들은 어디 살아?”
“우리는 양림동 살어. 근디 니는 워디 사냐?”
“어, 나는 서울 살아.”
“근디, 여까지 어츠케 왔다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니는 몇 학년이여?”
“나, 초등학교 오학년.”
“뭐? 초등학교? 그거이 뭔 소리여. 초등학교가 뭐시당가?”
“초등학교, 초등학교도 몰라?”
재이는 초등학교를 모르는 아이들이 의아했다.
아이들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중학교 가기 전에 다니는 학교 말이야. 초등학교.”
“아따, 고거는 국민학교제. 뭔 초등학교여, 국민학교가 맞제.”
“우리는 다 국민학교 오학년들이랑께.”
재이는 검색을 하기 위해 들고 있던 휴대전화기를 습관적으로 켰다.
휴대전화기는 작동이 멈춰져 아예 켜지지 않았다.
지금의 초등학교를 옛날에는 국민학교라고 불렀다는 말을 누구에겐가 들었던 기억이 났다.
“그럼 지금이 몇 년도야?”
아이들의 말이나 행동이 왠지 지금과 동떨어져 보여서 재이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까맣게 탄 얼굴에 검정 고무신을 신고, 헐렁한 바지에 늘어진 티셔츠 차림의 아이들 행색도 요즘 아이들 같지 않았다.
“아따, 고것도 모르냐? 1971년이제. 야가 뭔 뜬금없는 말을 자꼬 해쌓는다냐.”
“지금이 1971년이라고?”
“글제.”
재이는 알 수 없는 과거의 시간 속에 와 있음을 깨달았다.
발 모양의 구리 펜던트를 닦다가 숲 속으로 들어오고,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 과거로 와 있었다.
-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