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고인 운동화 한 짝(1)

by 정윤

집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재이는 그날도 발 모양의 펜던트를 닦았다. 동하가 궁금했고, 혹시나 다시 그곳에 가게 될 수 있을까 내심 기대해서였다.


재이가 그런 생각을 하며 펜던트를 닦자마자 재이의 방은 매캐한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눈을 뜰 수도 없이 매운 냄새로 눈이 따갑고 재채기가 났다.

재이의 방은 최루탄이 발사하는 광주 시내로 변했다.


바바바방! 바바바바방! 바바바바바방!


학생들이 돌을 던지고 경찰들이 최루 가스를 쏘아댔다.

최루 가스가 너무 매워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재이는 쓰리고 따가운 눈으로 동하와 정민을 찾았으나 어디에도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잡혀간 건 아닐까? 불안했다.


그때, 갑자기 트럭을 타고 온 군인들이 거리에서 시위하는 젊은 사람들을 진압봉으로 패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도 저항하며 시위하던 젊은이들이 진압봉을 맞고 바닥에 꼬꾸라졌다. 군인들은 잡힌 젊은이들의 손을 등 뒤로 묶고 바닥에 무릎을 꿇렸다. 온몸을 공포로 벌벌 떠는 젊은이도 있었다. 군인들은 그들을 억지로 트럭에 태우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5.18 당시 계엄군들이 시민들을 구타하는 장면 <사진 출처: 네이버 블로그>


도대체 어디로 끌고 가는 것일까?

혹시 저 속에 동하와 정민이 있는 건 아닐까.

재이는 심장이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동하도 끌려간 것 아닐까.

길바닥에 벗겨진 운동화에 피가 가득 고여있었다. 피가 고인 운동화가 꼭 동하 운동화 같았다.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상가는 문을 닫고 거리는 아수라장이었다.

총 맞은 시민들이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실려 갔다. 적십자 병원은 밀려드는 환자들로 정신을 차릴 수 없이 북적거렸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이리저리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공수부대 군인들은 미친 사람처럼 거리의 시민들에게 아무 이유 없이 총을 쐈다. 시민들은 원인도 모르게 죽어갔다.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자 시민들은 공포에 떨었다.

다친 사람들이 많아 병원에서는 혈액이 모자랐다.


“시민 여러분. 지금 다친 사람들을 치료할 혈액이 모자랍니다. 헌혈해주세요! 여러분의 소중한 헌혈이 죽어가는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 도와주세요.”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거리로 흘러나왔다.

가슴을 콕콕 찍어 내리는 것 같은 그 목소리가 너무 애절해 시민들은 가슴이 아렸다.

곧이어서 헌혈을 하기 위해 모인 줄들이 길게 이어졌다.

시민들은 자진해서 헌혈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간호사들은 헌혈하는 시민들에게 눈물을 글썽이며 감사함을 표했다.


그때였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 하나가 헌혈을 하고 병원을 나오다가 군인들이 쏜 총에 맞아 쓰러졌다.

여학생은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여학생은 방금 헌혈 했던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지만 끝내 숨을 거두었다. 시민들은 숨진 여학생을 끌어안고 슬퍼한 겨를이 없었다. 군인들에게 발각되면 시신을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끌고 가 버린다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기 때문이었다.

시민들은 시신을 급히 적십자 병원 안치실로 옮겼다.

의사들은 절망했다. 군인들은 최악이었다.

그들은 정말 해서는 안 될 몹쓸 짓을 서슴지 않고 강행했다. 지금은 전시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공수부대원들은 광주사람들을 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하라고 지시를 받은 꼭두각시처럼 군인들의 행동은 거침없고 악랄했다.

재이는 동하를 찾아 정신없이 광주 시내를 헤매고 다녔다.


도청 앞에는 시민들이 빼곡히 모여있었다. 무고한 시민들이 군인들의 총검에 찔리고 죽었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흥분했다.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도 있고, 군인들을 향해 욕설을 퍼붓는 사람들도 있었다.


극에 달한 시민들이 총을 든 공수부대를 향해 돌멩이를 집어 던졌다.

시민들은 군인들이 최루탄을 쏘면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고, 또 흩어지곤 했다.

자꾸만 몰려드는 시민들 때문에 거리의 차들이 움직일 수 없었다.


몰려든 시민들과 차들이 얽혀서 금남로 거리는 거대한 주차장이 되었다.

시위대 중 몇 명이 버스 위에 올라서서 확성기를 들고 구호를 외쳤다.


“군사 정부 물러가라!”

“계엄령을 철폐하라!”


시민들은 구호를 따라 손을 높이 들고 외쳤다.

재이는 버스 위에서 구호를 외치는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머리에 띠를 두른 동하였다.

동하가 버스 위에서 손을 높이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공수부대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재이는 숨이 끊어질 듯 애가 탔다.

그때, 임을 위한 행진곡’이 거리에 울려 퍼졌다.

시민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대치해 있는 군인들과 시민들 사이에는 공터처럼 멀찍한 공간을 남겨두고 있었다.

화가 난 시민들은 군인들에게 바짝 다가가지는 못하고 멀리서 화염병을 던졌다.

시민들이 군인들에게 던진 돌멩이와 화염병이 펑! 펑! 소리를 내며 깨졌다.

헝겊을 두른 병에 휘발유를 묻혀 불을 붙인 뒤, 군인들을 향해 던진 화염병은 순식간에 불덩이로 변했다.

당장이라도 군인들을 모조리 휩쓸어 버릴 것 같은 분위기로 현장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불덩이가 된 화염병이 날아가고, 돌멩이들이 바닥에 흩어졌다.


시민들이 화염병을 던져도, 웬일인지 방패를 든 군인들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군인들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이상했다.

잠시 후, 전남도청 옥상 스피커에서 애국가가 흘러나왔다.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애국가가 흐르자, 시민들이 목청을 높여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애국가를 부르며 가슴속에 뭉쳐있던 서러움이 터지는 듯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던 군인들이 시민들을 향해 일제히 집단사격을 시작했다.

탕! 타당! 탕! 다다탕! 타다탕! 다다다다타당!

앞쪽에 선 시민들이 군인들의 총에 맞고 쓰러졌다. 밀려드는 인파에 피할 수도 없었다. 뒷걸음치던 시민들도 총에 맞고 앞으로 넘어졌다. 총소리와 비명이 거리에 어지럽게 나 뒹굴었다. 수백 명이 한꺼번에 넘어지고 밟히고 찢기고 아우성쳤다.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군인들은 달아나는 시민들을 향해 연속적으로 기관총을 쏘아댔다. 총에 맞은 시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거꾸러졌다. 일부 군인들은 건물 속으로 숨어 들어간 시민들을 향해 총을 갈겼다.


그때였다. 버스 위에 올라 서 있던 동하가 총을 맞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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