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동하의 이야기만 듣고 있던 정민이 입을 열었다.
“난 데모 같은 건 관심도 없었시야. 친구들이 데모를 허든지 말든지 나는 공부만 했제. 그날도 학교 들어 갈라는디, 군인들이 안 막아브냐. 나가 데모를 한 것도 아닌디, 왜 근다요? 그라고 물었제. 그랬드마 다짜고짜 곤봉으로 안 때리냐. 참말로 정신이 어츠게 된 거 같어야, 군인들이.”
정민은 곤봉으로 맞은 부위가 쑤시는지 어깨를 만지며 얼굴을 찌푸렸다.
“곤봉 한번 맞아 봉께 지독스럽게 아프드라. 그거 맞고 견딜 장사가 없겄등마.”
“재이야, 니가 맞았다고 생각해 봐. 기분이 어쩌겄능가.”
옆에서 동하가 거들었다.
“그거야 당연히 안 좋지.”
재이는 당연한 걸 뭘 묻느냐는 얼굴로 말했다.
동하가 말을 이었다.
“폭력을 먼저 쓴 건 군인들이여. 우리말은 안 듣고 다짜고짜 폭력을 씅깨, 화가 난 학생들이 거리로 나갔제.”
정민이 말했다.
“시민들이 손뼉을 치고 손을 흔듬서 학생들을 응원했시야. 그걸 본께 힘이 나등마. 그래도 우리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구나 싶어서.”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건데?”
“아따, 야는. 으떡하긴 뭣을 으떡해야? 우리가 잘못한 일이 뭐가 있냐? 권력을 잡을라고 군인들을 내세워서 누르려고 하는 사람들이 나쁘제.”
“이해가 안 돼. 나라를 지키고 국민을 지켜줘야 할 군인들이 왜 죄 없는 국민을 때리는 거냐고. 그럴 수 있어?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
“왜 그런지 모르겄냐?”
“모르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아따, 야는. 깝깝허다. 니한테 뭔 말을 허겄냐. 못 알아 듣는디!”
“내 말은 군인들이 아무 죄 없는 학생들을 왜 때리는 거냐고!”
“긍께 말이여. 우리 학생들은 태극기를 들고 질서 정연하게 광주 시내를 행진하고 있었다고. 근디 그때, ‘거리에 있는 사람 전원 체포하라!’는 소리가 확성기로 울려 나오드라고. 갑자기 공수부대 군인들이 뛰쳐 나오등마, 학생들 허고 길 가던 시민들을 곤봉으로 치고 발로 차는 거여. 피가 튀고 비명으로 아수라장이 됐제. 공수 군인들은 미친 사람들 같았어. 정민이하고 나는 건물로 숨어 들어가서 다행히 안 잡힌 거시고."
“근데, 왜 그러는 거야. 군인들이, 이해가 안 되네.”
“군인들이 아무래도 미친 거 같어. 안 글믄 그르케 독을 품고 때릴 수가 없는 것이여.”
정민이 투덜거렸다.
“도대체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네.”
재이는 알쏭달쏭한 얼굴로 동하를 바라보며 투덜거렸다.
“나도 군인들이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가.”
재이는 동하의 말을 들을수록 머릿속이 더 혼란스러웠다.
“근데 여기에 숨어 있는 이유는 뭐야? 왜 여기 있느냐고.”
“지금은 군인들한테 잡혀가지 않는 거이 대수여. 그것들한테 잡혀가뿔믄 개죽음이여. 얼척없긴 허지만, 일단 숨어서 앞으로 어츠케 헐 건지 생각해 봐야제.”
재이는 동하의 말을 들을수록 현실감이 없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아무래도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럼 지금은 몇 년 도야?”
“1980년.”
“아, 1980년? 그럼 저번 만났을 때보다 9년이 흐른 거네.”
“그라제.”
재이는 자신도 알 수 없는 1980년의 일이 궁금해졌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오두막집 창으로 어스레한 저녁 빛이 감돌았다.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재이는 슬그머니 불안해졌다. 여기 있는 동안 얼마쯤의 시간이 흘렀는지 궁금했다. 만약 며칠이 지났다면 재이가 없어진 줄 알고 엄마가 얼마나 놀랄까. 오두막집을 떠나려고 하니 발길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재이는 집으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 집에 갈래. 다음에 또 올게.”
“그래, 재이야, 잘 가고, 다음에 또 놀러 오니라이.”
“집까지 델다 줄끄나?”
동하가 나서며 말했다.
재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나 혼자 갈 수 있어.”
재이는 오두막집을 뒤로하고 급히 숲 속으로 들어섰다.
처음에 왔던 길을 더듬어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온몸에 힘이 쭉 빠지며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다. 자꾸만 눈이 감겼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집에 가면 몇 시나 됐을까. 엄마가 찾지는 않을까? 재이는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도 몰려드는 졸음을 참기 어려웠다. 재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르륵 바닥에 주저앉아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마자 곧바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눈을 뜨자 재이는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시계는 오후 5시 10분이었다. 재이는 시간의 숲 오두막집에 갔던 기억을 되새겨봤다. 펜던트를 닦고 방이 숲 속으로 변할 때가 오후 5시였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겨우 10분 남짓밖에 시간이 흐르지 않은 거였다.
재이는 책상 앞으로 가서 노트북을 켰다.
검색창에 ‘1980년 광주’를 검색했다.
‘군사 정권을 반대한 시민들의 민주화 투쟁’
머리기사부터 온갖 기사들과 정보들이 주르륵 달려 있었다.
동하가 얘기한 사건은 광주 민주항쟁이었다.
재이는 인터넷에 올려진 정보로 광주 민주항쟁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1980년 5월, 그 열흘 동안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일들이 광주에서 실제 벌어진 사실이었다.
재이는 믿어지지 않았다.
광주항쟁이 처음 시작된 전남대학교 정문에서부터 학생들의 시위가 시작되었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정보와 아까 동하가 얘기해 준 게 맞아떨어졌다.
재이는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광주항쟁 시위가 처음 일어났던 곳. 그곳에 동하와 정민이 있었던 거였다.
동하와 정민은 시위했고, 군인들의 진압봉을 맞았으며, 태극기를 들고 행진을 했던 거였다.
재이는 그 이후에 일어난 사건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검색해서 읽었다.
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숨졌고, 원인도 모르고 죽어가는 시민들을 지키기 위해 시민군이 결성되었지만 결국 그들도 계엄군에 의해 숨져간 이야기.
결국 광주 민주항쟁은 민주화의 밑거름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남아 있는 슬프고 뼈아픈 역사의 기록이었다.
재이는 많은 기록과 동영상을 찾아보며 기가 막히고 화가 나서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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