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고인 운동화 한 짝(2)

by 정윤

“악! 아악!”

동하의 목덜미에서 붉은 피가 쿨럭쿨럭 흘러내렸다.

“동하야, 정신 차려!”

재이는 쓰러진 동하를 끌어안고 울었다.

재이의 손도 피범벅이 되었다.

동하가 재이의 손을 잡았다. 동하의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동하는 숨을 몰아쉬었다. 호흡이 가빠지고 있었다. 동하는 끅끅 소리를 내다가 숨을 거두었다.


재이는 동하를 부둥켜안았다.

“여기, 좀 도와주세요!”

재이는 갑자기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일들을 감당할 수 없었다.

광주 도청 상황실에 안치된 시민들의 관에 도청 직원들이 태극기를 씌워주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네이버 블로그>

시민들의 도움으로 동하의 시신은 들것에 실려 도청 안으로 옮겨졌다,

재이는 정신없이 동하를 붙들고 도청 안으로 따라갔다.

동하의 시신이 바닥에 눕혀졌다.

아직도 동하의 몸은 따뜻했다. 시민들이 동하의 시신을 거적으로 덮어씌웠다.


숨진 사람들의 시신이 도청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재이는 도청 바닥에 앉아 동하의 시신을 지켰다.

고개를 돌리자 동하의 시신 옆에 짓이겨지고 뭉개져서 누군지 알아볼 수조차 없는 시신이 누워있었다.

“헉!”

재이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얼굴은 형태도 없이 치아만 나와 피범벅이 된 시신을 보니 너무 무서웠다.

시신들을 지키던 남학생이 커다란 태극기로 그 시신을 덮어주었다.

계엄군들에게 희생당한 시민들의 주검 <사진 출처: 네이버 블로그>

뒤늦게 동하의 부모님인 듯한 분들이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허겁지겁 들어왔다.

거적에 덮인 동하 시신은 청바지를 입은 다리와 운동화가 삐죽 나와 있었다.


동하 엄마는 거적 밖으로 튀어나온 동하의 청바지와 피 묻은 운동화를 보더니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바들바들 떨었다.


동하 아버지가 동하에게 씌워진 거적을 들치며 신음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동하야, 왜 여그 있냐. 얼릉 일어나. 동하야, 언능 일어나라고!”


동하 아버지는 동하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눈물을 쏟았다.


동하의 시신 앞에서 엎드려 울던 동하 엄마가 일어날 힘도 없는지 겨우 고개를 들고 말했다.


“여그 태극기 하나만 주시오! 다른 사람들 껀 다 태극기가 덮어져 있는디, 우리 아들만 태극기가 없어라.”


동하 아버지가 동하 엄마를 부축해 앉혔다.

누군가 커다란 태극기를 가져와 동하의 시신 위에 덮어씌웠다.


한참 후에 동하 엄마가 비칠비칠 일어나 흐느낌을 삼키며 애국가를 불렀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유족들이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듯이 일어나서 애국가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애국가는 합창이 되어 도청 상황실을 울렸다.

슬픔을 억누르며 부르는 애국가.

눈물이 삐질삐질 새어 나오는 동하 엄마의 얼굴은 비장했다.

아들이 죽었는데 그 앞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엄마의 마음.

그 마음의 깊이에 대해 재이는 뭐라 할 수 없는 아픔에 가슴이 무너졌다.


5월 하순의 후덥지근한 날씨와 높은 습도,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봄꽃 향기에도 애절한 사무침이 실려 있었다.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시신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도청 상황실 안은 짓이겨지고 뭉개져서 누군지 확인할 수도 없는 시신들이 즐비했다.


“방송국 기자덜이 요런 걸 테레비에 내고 신문 기사에 내야제. 뭣허고 있능가 모르겄네!”


유족 중 누군가 불만을 터트리며 소리를 질렀다.


“광주에 있는 방송국은 다 불타부렀어라. 신문사도 폐쇄되고 기자들은 어디로 싹 다 숨어 불고, 시외전화도 먹통인 거 보시오.”


“엊그저께 우리 형님이 전주에 갔는디,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말헝께 안 믿드라 안허요. 뭔 소리냐고. 그런 일이 있으믄 신문이나 방송에 왜 안나왔겄냐 함시로 코웃음치드라 안 허요. 참 나!”


“아따, 말도 마시오. 댑데 북한에서 내려온 간첩들이 광주시민들을 선동해 빨갱이들이 판치고 있다고 허드랑께요.”


“군인들이 긍께 우리를 북한에서 내려온 간첩으로 생각허고 저리 총을 쏴대는 거다요 시방?”


유족들의 불만에 찬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광주에서 일어나는 일은 외부에 알려질 수가 없었다. 전화기는 먹통이고 시외버스 터미널은 물론, 외부로 나갈 수 있는 도로는 모조리 공수부대가 막고 있다고 했다. 기자들도 목숨이 두려워 쉬쉬하며 숨어버렸다고 했다. 광주에서는 날마다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광주 바깥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신문이나 TV는 광주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공수부대의 폭력에 대해서든, 시민들의 죽음에 대해서든 그 어느 것도 보도하지 않았다. 광주 밖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 하나 진실을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저녁때가 되자 동하 엄마가 근심 어린 얼굴로 재이에게 말했다.


“아가, 여그 있지 말고, 언능 느그 집으로 가그라. 느그 집이 어디냐?”


“아뇨, 전 여기 그냥 있을게요. 동하 형 옆에 있고 싶어요.”


“아니여! 아가, 언능 느그 집으로 가야 쓴다. 여그는 위험허다.”


동하 엄마가 재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가, 집이 어디냐? 나가 델다 줄랑께 가자 나랑.”


곁을 지키던 동하 아빠가 재이에게 말했다.


“아니에요. 저는 그냥 여기 있을게요.”


“아따, 어린 아가 고집도 세네. 얼릉 가야 헌다고 안 허냐!”


재이는 고집을 부리며 동하 옆을 지켰다.


밤이 되자 졸음이 쏟아졌다. 아무리 눈을 부릅뜨려고 해도 자꾸 닫히는 눈꺼풀을 감당할 수 없었다. 재이는 그 자리에 쓰러져 잠에 빠져들었다.


-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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