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집 앞에 도착한 재이는 급히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동하가 빼꼼히 얼굴을 내밀었다.
“동하야!”
재이는 동하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대학생 모습으로 다시 살아난 동하의 얼굴을 보자마자 동하를 덥석 끌어안았다.
“야가 갑자기 왜 이런다냐?”
동하가 쑥스러워하며 웃었다.
“동하야, 고마워!”
“야가 지금 뭣이 고맙다고 이래 싼다냐.”
“살아 있어 줘서 고맙다고.”
“아따, 야는. 언제는 나가 죽었냐? 뭔 싱거운 소릴 하고 있다냐, 야가.”
재이는 펜던트의 마법으로 동하가 살아났다는 사실을 말할 수가 없었다.
동하는 자기가 죽었던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말 그대로 예전 기억들이 다 잊힌 모양이었다. 그건 정민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시위 현장에서 겪었던 일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마치 낙서한 노트를 깨끗이 지우면 하얀 백지만 남는 것처럼, 그 위에 다시 글씨를 쓰듯이 동하와 정민은 6개월 전으로 다시 돌아가 살면 되는 거였다.
그들은 광주 민주항쟁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마침 밥을 먹고 있던 중인지 비빔밥이 담긴 둥그런 양푼엔 수저들이 꽂혀 있었다.
“재이야, 이리 와. 밥 묵어.”
탁자 위로 다가간 재이는 기분이 좋아서 비빔밥을 볼이 미어지게 욱여넣었다.
“아따, 재이가 배고팠능갑따. 많이 묵어라. 어서.”
정민이 동하를 바라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동하가 밥을 먹으며 말을 꺼냈다.
“박정희 대통령이 죽어서 지금 나라 안이 뒤숭숭허다.”
“인자 나라가 어츠케 될랑가.”
둘의 대화를 듣던 재이가 말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죽었어?”
“그래. 그래서 시방 나라 분위기가 안 좋아.”
정민이 말했다.
“앞으로 나라 꼴이 어츠케 될랑가 모르겄다.”
동하가 한숨을 쉬었다.
“앞으론 동하야, 절대 데모 같은 거 하지 마! 절대로 하지 말라고.”
재이의 말에 동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야가 뭔 소릴 하고 있어, 시방.”
“동하야. 실은, 나……, 2025년 미래에서 왔어. 그러니까 나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다 알고 있거든. 머지않아 광주에서 시민들이 많이 죽게 될 거야.”
“그건 또 뭔 소리여?”
동하와 정민이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물었다.
재이는 내년 5월이 되면 신군부 전두환 정권을 반대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이어지고, 계엄군이 쳐들어와 많은 광주시민을 죽이고, 시민들이 힘을 합해 시민군을 만들게 되는데, 그 시민군들조차도 결국 계엄군들에게 다 죽게 된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재이는 머지않아 광주에서 일어나게 될 비극적인 일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상세하게 말했다.
“야가 뭔 소리를 허고 있어. 학생이 돼 갖고 그런 걸 보고 가만있으라는 거냐?”
“동하 네가 나선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겄다만, 달라지는 것이 없다고 해도 난 그냥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그래도 다 죽게 되는 일을 왜 하느냐고!”
“재이, 니가 아무리 그래도 난 그럴 수 없어.”
“공연히 나서서 개죽음당하지 말고, 제발 내 말 좀 들으라고!”
“니가 뭘 보고 그른 소릴 허는가 모르겄다만 난 그럴 수 없다고!”
“나서지 말고 피해 있다가, 나중에 해도 되잖아. 꼭 시위 현장에 나가지 않아도!”
동하는 재이의 말을 귀담아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재이는 답답해서 한숨을 쉬었다.
“재이 니, 그런 말 자꼬 헐라믄 앞으로 여기 오지도 마!”
동하가 퉁을 주며 화를 냈다.
재이는 앞으로 일어나게 될 일들을 뻔히 아는데,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 동하가 답답하고 미웠다.
“나, 더는 니, 보고 싶지 않응께, 어서 가그라! 여그는 다시 오지 말어!”
동하는 오두막집 문을 열고, 재이를 나가라고 했다.
재이는 너무 쌀쌀맞게 변한 동하의 모습을 보자 울컥 눈물이 솟았다.
동하의 기세에 눌려 엉겁결에 오두막집 문을 나오자마자 동하가 문을 쾅 닫았다.
제이는 너무 서러웠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다 알고 있는 재이로서는 동하가 걱정되어서 한 말이었는데, 동하의 격한 반응이 너무 놀랍고 당황스러웠다.
그렇다고 다시 오두막집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다.
숲 속은 눈발이 휘날리기 시작했다.
재이는 눈 속을 헤치며 숲 속을 걸었다.
집을 향해 가고 있는데 가도 가도 집은 보이지 않았다.
눈은 바람을 타고 휘몰아쳤다.
눈은 하늘에서 내리는 게 아니라 땅에서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얼굴이 시리고 따가웠다.
어느덧 눈이 무릎까지 차올랐다. 발목이 푹푹 빠지는 눈 속을 걸으면서 재이는 점점 힘이 빠졌다. 발끝이 시리고 손가락이 콕콕 쑤시듯이 아렸다. 털장갑을 꼈어도 소용없었다. 재이는 손을 호호 불며 앞으로 나아갔다. 눈발은 점점 더 거세어졌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희뿌옇게 변한 눈 쌓인 숲 속을 걷는데 졸음이 또 쏟아졌다. 이대로 잠들면 눈 속에 얼어 죽을 것 같았다. 정신을 차려야지 하면서도 자꾸 감기는 눈꺼풀을 감당할 수 없었다.
오두막집에서 쫓겨난 재이의 몸은 피로까지 몰려들어 저절로 눈이 감겼다.
재이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재이는 눈밭에서 잠에 빠져들었다.
-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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