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휴가

공수부대원들에게 내려진 작전명

by 정윤

대문 사진: 광주 시내로 진입하는 공수부대원들 <출처: 5.18 기념 재단>


작년에 명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자 집안 형편은 더 힘들어졌다. 더구나 엄마까지 아파서 누워있었다. 집안에 돈 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명수는 병원비가 없어서 치료도 하지 못하는 엄마를 보면 가슴이 답답했다. 생각 끝에 다니던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방직 공장에 취직했다. 중학교 다니는 동생 윤수의 학비와 세 식구 생활비를 벌고 저축을 해서 엄마를 병원에 데려가겠다고 마음먹었다.


공장 생활은 힘들었다. 종일 기계가 돌아가는 실내에는 환풍기마저 없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종일 마신 먼지 때문에 목이 컬컬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했지만, 한 달 월급은 먹고살기에도 빠듯했다.

명수는 퇴근길에 연탄 두 장을 사서 들고 집으로 갔다. 그나마 엄마 방이라도 연탄불이 꺼지지 않게 신경을 쓰느라 밤중에도 나와 아궁이 연탄불을 들여다보았다. 아침부터 밤까지 고된 작업에 매달려도 공장에서는 일요일에도 쉬지 않고 일을 시켰다. 수습공이었던 명수는 철야 근무를 해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았다. 언제나 일한 만큼 제대로 대가를 받는 날이 올까, 쪼들리는 생활에 희망이 없는 날이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공수부대원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공수부대가 되면 군인 월급의 다섯 배를 주고 포상금도 준다는 말에 명수는 눈이 번쩍 뜨였다. 훈련이 힘들기는 하겠지만 엄마를 병원에 데려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별 고민 없이 지원했다. 상급자들은 명수가 광주 출신이라 탐탁지 않아 했다. 공수부대에서는 광주사람이 아닌 다른 지역 사람들을 더 선호했다.


명수는 행여나 미움받을까 두려워 남보다 더 열심히 훈련에 임했다. 훈련은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지휘관들은 폭동진압훈련을 속히 끝내라는 지시를 내렸다. 공수부대는 정규 훈련은 포기하고 오로지 진압훈련만 했다. 야간에는 정신교육, 주간에는 CS탄과 MD장갑차까지 동원된 훈련이 이어졌다.

매일 밤 출동 무장을 꾸렸다가 빠르게 해체하고 반복하는 훈련의 연속이었다. 훈련 기간 동안 외출이나 휴가가 금지되었다. 공수부대에서는 젊고 패기에 넘치는 군인들의 욕구를 철저히 차단했다. 상부에서는 국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혹독한 훈련은 당연하다는 세뇌 교육을 했다.

특수 훈련을 마친 명수는 광주로 투입됐다.


중대장은 명령을 내렸다.


“광주에서 빨갱이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북한에서 내려온 간첩들이 광주시민들을 선동해 빨갱이들이 판을 치고 있다. 그것들을 때려잡아야 나라를 지킬 수 있다. 알겠나?”


날마다 극기 훈련으로 힘든 사병들에게 주어지는 식사는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형편없는 식사에 힘들어진 군인들은 정신이 피폐해졌다. 휴가도 가지 못하고 폭동 진압훈련에 힘들었던 공수부대원들의 스트레스는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우리가 누구 때문에 집 나와서 이 개고생을 하는 거냐. 너희들이 고생하는 이유가 다 광주사람들 때문이다.”


중대장은 공수부대원들이 힘들어할 때마다 광주 시위대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하는 거라 말했다. 하루빨리 시위대를 해산시키고 집으로 돌아가자고 부추겼다.


공수부대원들에게 광주시민들이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그들은 광주시민들과 학생들에게 적개심이 생겼다. 자신들을 힘들게 한 원인이 광주시민이라고 생각했다. 자신들은 고향에 가지도 못하고 고생하고 있는데, 학생들의 시위는 눈엣가시였다. 그들은 못 배워서 고된 훈련을 받고 있는데, 대학생들은 부잣집에서 잘 먹고 편히 살면서 자신들을 힘들게 한다고 생각했다. 열등감과 피해의식이 증폭된 공수부대원들은 시위하는 광주 대학생들을 더 미워했다.

1980년 5월 20일, 광주 금남로에서 시민들과 차량 행렬이 시위를 벌이는 모습 (사진 출처: 5.18 기념재단)
광주 시민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공수부대원들과 그에 맞서는 시민들의 저항 (사진 출처: 5.18 기념 재단 )
장갑차를 앞세운 2만 여명의 계엄군 광주 진입 (사진 출처: 민주화 운동 기념사업회)


화려한 휴가


광주로 투입된 공수부대원들에게 내려진 작전명이었다.

군인들은 빨갱이로 변한 광주시민들의 집단 저항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기 전에 미리 싹을 잘라 내야 한다는 세뇌를 당했다. 군인들은 광주시민들을 북한 간첩의 지령을 받아 구제 불능인 폭도라 생각했다. 그래서 광주시민들을 폭력으로 진압하고 총으로 쏴 죽여도 괜찮다는 교육을 받았다.


“진압을 잔인하게 하는 군인들에게는 특별 포상금을 주겠다. 폭도들이 다른 지역으로 번지지 않게 최선을 다하라!”


명령을 받은 군인들은 전혀 거리낌 없이 시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맨 얼굴로 나가는 것보다 방독면을 쓴 공수부대원들의 공격성은 더 거칠어졌다.


자신이 살고 있던 광주에서 광주시민들을 진압해야 하는 명수는 괴로웠다.

어떤 날은 명수가 사는 동네로 가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명수는 방독면을 썼다. 방독면을 쓰면 누가 누군지 몰랐다.


광주로 투입된 지 하루가 지났다.

시위진압을 끝내고 임시 사단에 쉬고 있는 부대원들을 중대장이 모이게 했다.

하루 동안 현장을 지켜봤던 중대장은 시위진압을 너무 부드럽게 한다고 화가 잔뜩 나 있었다.

몇몇 대원들이 불려 나갔다. 그중에 명수도 끼어 있었다.

중대장은 진압봉을 높이 쳐들더니 앞으로 나간 군인들을 무차별 때리기 시작했다.


“진압은 이렇게 하는 거다! 알겠나?”


진압봉으로 두들겨 맞은 명수와 군인들이 고통스러워하자 중대장은 군인들을 다시 불렀다.


“엎드려, 뻗쳐!”


중대장은 자신이 휴대한 진압봉으로 군인들의 엉덩이를 무자비하게 내리쳤다.


명수와 군인들은 죽을 것 같은 고통으로 신음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공수부대원들은 낮엔 시위 현장에 나가 광주시민들을 진압하고, 밤엔 중대장에게 구타를 당해야 했다. 군인들은 자기 부하를 무자비하게 때리는 중대장이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중대장이 미울수록 광주시민들에 대한 증오심은 더 심해졌다.

상급자의 무자비한 폭력으로 악에 받치면 받칠수록 계엄군들은 광주시민에게 화풀이했다.


이성을 잃은 계엄군들은 사무실이나 집까지 쫓아 들어가 시민들을 곤봉으로 때리고 대검으로 찔렀다. 그들은 광주시민들을 트럭에 실어 약속된 장소로 끌고 가서 죽이고 암매장했다.

계엄군들에게 광주시민들은 보호해야 할 국민이 아닌 분노 대상이었다.


어느 날, 명수는 공수부대원을 피해 도망가는 남학생을 쫓아갔다.

도망가던 학생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자 어쩔 줄 몰라 뒤를 돌아봤다. 학생은 중학생쯤으로 보였다. 명수 동생 윤수 또래 같았다. 아이는 공포에 질려 두 손을 싹싹 빌었다.

아이의 처연한 눈빛이 절박하고 간절했다.

“살려주세요! 제발 한 번만 살려주세요!”


잠시 윤수의 얼굴이 스쳐 갔다.


명수는 그 아이에게 차마 총을 들이댈 수는 없었다. 다행히 명수 외에 지켜보는 다른 공수부대원은 없었다.


“얼능 집으로 가! 여그 있다가 걸리면 죽어. 빨리 튀어!”


아이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허둥지둥 골목을 빠져나갔다.


명수는 가슴이 답답했다.

자신이 왜 총을 들고 여기 서 있어야 하는지. 자신의 모습이 끔찍했다. 명수는 공수부대에 지원했을 때 이럴 줄 몰랐다. 왜 공수부대에 지원했을까.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후회하기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의도치 않은 일이 벌어졌고, 지금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실정이었다. 상부의 지시대로 광주시민들을 폭력으로 진압하면 무서워서 저항을 못 할 줄 알았다. 머지않아 이 진압과정도 금방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광주시민들의 저항은 점점 더 드세어졌고 들풀처럼 번져 나갔다.

명수는 시민들을 진압봉으로 때리고, 잡아 가두며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그냥 적이다!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지금 저들은 적이다.’


광주시민들을 대할 때마다 그렇게 자신을 세뇌했다.


너는 적이다, 퍽! 너는 적이다, 퍽! 퍽!

시민들은 가족들이 죽어 나가고 친구들이 죽어 나가자 보이는 게 없었다.

돌멩이와 화염병으로 대항하던 시민들은 예비군 무기고를 털어 총을 들고 나왔다.

군인들의 총을 피해 뿔뿔이 흩어졌던 시민들이 총을 든 시민군들을 보자 다시 몰려들었다.


“공수부대 물러가라!”


“무고한 시민들 죽이는 살인마! 공수부대 물러나라!”


“비상계엄 해제하라!”


“독재 전두환은 물러나라!”

광주 시민들이 태극기를 펼치고 시위 행진하고 있는 모습 ( 사진 출처: 네이버 블로그)

시민들이 다시 뭉쳐 시위했다.

시민들은 끓어오르는 분노로 불타올랐다.

언제 총알이 날아오를지 모를 상황에서도 시민들은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대항했다.

길바닥에 수많은 보도블록 조각들과 돌멩이들이 나뒹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계엄군들은 침착하게 어떤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전남도청 옥상 확성기에서 애국가가 흘러나왔다.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탕! 타타타타탕! 탕탕! 다다다다타타탕탕탕!”


요란한 총성이 거리에 울려 퍼졌다.

애국가는 시민들을 쏘라는 집단 발포 명령 신호였다. 군인들은 애국가가 흘러나오자마자 발포를 했고, 멋모르고 애국가를 따라 부르던 시민들이 총에 맞고 쓰러졌다.

광주 도청 분수대 앞에 모인 광주 시민들 (사진 출처: 5.18 기념 재단)


와 아아아아 아!


군인들이 앞으로 돌진하며 나아갔다.


“탕! 타당! 탕! 탕! 다다다다 타타타 타당!”


시민들에게 가해지는 대규모 학살이 이어졌다. 총에 맞아 쓰러진 시민들을 보고 분노하던 청년도, 부상자들을 구하려고 도로로 뛰어들던 사람도 총에 맞아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총소리가 뒤섞인 금남로는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금남로는 순식간에 시민들의 고통스러운 신음으로 생지옥이 되었다.

계엄군들의 총에 맞고 죽은 학생들( 사진 출처: 네이버 블로그)
광주 시민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참여한 시민군들의 모습 (사진 출처: 5.18 기념 재단)

그때였다. 골목과 옥상, 건물 사이 여기저기서 총알이 날아들었다.

총을 든 시민군들의 대항이 시작된 것이다.

예상치 못한 시민군들의 반격에 군인들은 당황했다.


“저것들이 어디서 총을 구했지? 이건 전쟁상황이다! 일단 몸을 피해라!”


당황한 군인들이 중대장의 지시에 따라 빠르게 건물 뒤쪽으로 몸을 피했다.

몸이 노출되면 위험해지므로 건물 뒤에 숨어서 작전을 다시 정비하려는 것이다.


“일단 몸을 피하고 후퇴하라!”


중대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계엄군들은 일사불란하게 트럭을 타고 광주 외곽으로 빠져나갔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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