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하와 정민, 시민군이 되다

by 정윤

*신군부의 비상계엄에 반대하는 학생들과 시민들<대문 사진 출처: 5.18 기념 재단>


동하는 원하는 대학에 갔지만, 고등학교 때 꿈꾸던 대학 생활은 아니었다.

대학에 들어가 보니 이건 그냥 고등학교의 연장선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약간의 자유가 주어졌다는 것 외엔 달라진 게 없었다. 대학 등록금이 왜 그리 비싼지도 모르겠고 비싼 돈을 내고 다닐만한 곳인가, 하는 의문마저 들었다.


고등학교 때는 학교마다 학도호국단이 생겼다. 학교 분위기는 군대처럼 변해 갔다. 교련 과목이 생겨서 군사 훈련을 받아야 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아침마다 교문 앞에서 복장 검사와 머리 검사를 했다. 학생 주임이 교문 앞에 서서 머리가 길면 여지없이 잘랐다. 그것도 보기 좋게 자르는 게 아니라, 머리 앞부분을 흉하게 잘라 머리를 빡빡 밀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건, 야간 통행금지 때문에 밤 12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거리를 못 다니게 했다. 자정이 가까워지면 경찰들이 골목을 뒤졌고. 미처 집에 가지 못한 사람들은 경찰서에 끌려갔다.

밤 10시가 되면 청소년들은 속히 귀가하라는 안내 방송이 거리에 흘러나왔다. 동하도 자정이 되기 전에 집에 돌아가느라 애를 썼다. 어떤 날은 통행금지에 걸려서 경찰서에 붙잡혀가 꼬박 밤을 새우고 다음 날 아침에 집에 들어간 적도 있었다.


경찰들은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며 죄인 취급을 했다. 노래도 마음대로 들을 수도, 부를 수도 없었다. 정부는 온갖 이유를 들어가며 여러 가요를 금지곡으로 지정했다. 읽고 싶은 책도 편히 읽을 수 없었다. 수많은 책과 잡지가 금서가 되었고, 몰래 읽다가 들키면 경찰서로 끌려갔다. 동하는 개인의 자유가 왜 정부의 통제권에 있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학은 걸핏하면 휴교령이 내려 문을 닫았다. 휴교령이 내린 날이 내리지 않은 날보다 더 많았다.

그날따라 매서운 강풍이 몰아치는 추운 날이었다. 늦은 밤 TV 속보가 떴다.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국민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대통령이 부하인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고 숨진 것이다.

집권 당시 대통령 박정희는 유신법을 만들어 대통령의 권한을 이용한 독재를 했다.

유신헌법으로 그는 막강한 권력을 누렸다.

대통령의 통치 방식에 불만을 품은 김재규 정보부장이 그의 머리에 총을 쏜 것이다.

대통령의 장례식날 국민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했고, 나라에서는 비상 계엄령을 선포했다.

다음 해 5월이 되었다.

동하는 자신이 5월 광주에서 시민군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일이 자꾸 꼬이고 얽혀 들어갔다.


정민의 부모님은 생선 장사를 했다. 새벽부터 수산물 도매 시장에 나가 생선을 받아와 시장 좌판에서 팔았다. 학교에 가면 아이들이 생선 비린내 난다고 코를 틀어막았다. 행여 생선 비린내가 날까 봐 아침저녁으로 씻고 또 씻어도 생선 비린내는 가시지 않았다. 집안에 속속들이 배어 있는 생선 비린내는 정민의 몸속까지 배어 있었다. 정민은 생선 비린내가 지긋지긋했다. 밥상엔 날마다 생선 반찬이 올라왔다. 생선을 팔다가 남은 걸 밥상에 올리는 탓이었다. 정민은 생선 반찬은 입도 대기 싫었다. 정민은 열심히 공부해서 구질구질하고 누추한 가난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가난한 아이들이 성공할 수 있는 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정민은 대학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친구들이 시위해도 정민은 관심 밖이었다. 학교에서 머리를 짧게 하라면 했고, 밤늦게 다니지 말라고 하면 그대로 따랐다. 그야말로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하며 공부만 열심히 했다.

1980년 5월 어느 날, 휴교령이 내려졌다.

학교 수업은 할 수 없겠지만 정민은 학교도서관에라도 가서 공부하고 싶었다.

학교 앞에 도착하니 군인들이 정문 앞에 진을 치고 있었다. 군인들은 학생들을 학교에 못 들어가게 할 뿐 아니라, 시위하지 않은 학생들까지 진압봉으로 때렸다. 학생들이 소리를 지르며 항의했다. 군인들은 앞뒤 분간 없이 학생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질 때까지 무조건 때렸다. 군인들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어떠한 말도 군인들에게 먹히지 않았다. 화가 난 정민은 시위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날만 참석하고 깊이 관여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일이 자꾸 꼬여 들었다.

계엄군에 맞서 저항하는 버스와 택시를 탄 시민들의 모습(사진 출처: 5.18 기념 재단)

그날도 생선을 팔고 집으로 돌아가던 정민 부모님을 군인들이 못 지나가게 막았다.


“우리는 아무 잘못 없는 선량한 시민들이어라. 우리를 보내주시오.”


정민이 아버지는 군인들에게 사정했다.


“그란해도 장사가 안돼서 일찍흐니 집에 가는 길이어라. 우리는 잘못없당께요.”


정민 엄마도 가게 해달라고 군인들에게 빌었다.


군인들은 수레를 이끌고 벌벌 떠는 정민 아버지 허벅지를 쐈다.

허벅지에 총을 맞은 정민 아버지가 털썩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허벅지에서 피가 쏟아지는 걸 보면서도 군인들은 표정 없이 말했다.


“이쪽으로 돌아다니면 다 죽어. 알았어?”


정민 엄마는 정민 아버지를 부축해 병원으로 갔다.


병원은 여기저기 다친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여그 사람이 다쳤어라. 군인들이 우리럴 쐈당게요. 치료조까 해주시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정민 아버지는 다리를 절게 되었다.


정민은 기가 막혔다. 이게 말이 되는가.

아무 이유 없이 아버지에게 총질을 해댄 군인들이 치가 떨렸다.

아버지는 다리 부상으로 장사도 못하고 집에 들어앉게 되었다.


어젯밤에는 광주 MBC가 오늘 새벽에는 광주 KBS가 불길에 휩싸였다.

죄 없는 시민들이 죽어 나가는데도 티브이에서는 드라마와 오락프로를 내보내며 시시덕거렸다.

광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일들은 단 한 번도 보도되지 않았다.

언론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방송국에 화가 난 시민들이 방송국을 불태웠다.


공수부대는 광주 소식이 바깥으로 새어 나가지 못하도록 광주 외곽으로 가는 길을 촘촘히 막았다. 이 기막힌 일들이 하루빨리 다른 지역에 알려져야 할 텐데 외곽을 다 막아놓은 상태라 소식을 알릴 길이 없었다.


방송국이 불타자 뉴스가 보도됐다. 북한에서 내려온 간첩들이 광주시민들을 선동해 폭도로 변한 광주시민들이 방송국을 불태웠다는 가짜 뉴스가 흘러나왔다.


“광주시민들이 폭도라고? 북한 간첩이 내려와서 광주시민들을 선동해?”


정민은 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라왔다.

선량한 시민들을 간첩들에게 선동된 폭도로 몰아가는 정부와 언론사들의 보도는 절망적이었다.


정민은 군인들이 더는 사람들을 죽이지 않고 물러나길 바랐다. 사과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런데 신군부는 자신들의 부당한 짓을 감추기 위해 오히려 광주시민들을 폭도로 뒤집어씌우고 있는 거였다.


“우리가 왜 빨갱이여? 참말로 기가 막히는 구마이.”


동하가 울분을 터트렸다.


그날도 동하와 정민은 금남로에서 시위를 했다. 건물 앞에 시신이 거적에 덮여 있었다. 공수부대에서 맞아 숨진 여자 시신이라는데, 형체를 알 수 없게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 도저히 겉모습만으로는 성별이 구별되지 않았다. 끔찍했다. 무자비한 군인들의 폭력을 더는 보고 있을 수만 없었다.


할 수 없이 동하와 정민은 다른 시민군들과 함께 파출소로 몰려갔다.

계엄군에게 맞서기 위해서는 무기가 필요했다.


현직 파출소장이 손수 나와 시민군들에게 무기고 열쇠를 주었다.


“무고하게 죽어간 광주시민들의 한을 풀어주시오!”

시민들의 희생에 참다 못한 광주 시민군들의 모습(사진 출처: 5.18 기념 재단)
시민군들이 트럭에 무기를 싣고 광주 시내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사진 출처: 5.18 기념 재단)

경찰들이 보기에도 계엄군들의 난폭함은 도를 넘고 있었다.

파출소뿐만 아니라, 예비군 무기고에 저장되어 있던 총과 탄환까지 바닥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총을 받지 못한 시민들은 총을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하지만 무기고는 순식간에 바닥이 나고 말았다.


동하와 정민은 지프차를 빌려 타고 광주 외곽지역의 파출소로 갔다.

무기고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고, 경찰은 아무도 없었다.

동하가 자물쇠를 지프차에 걸고, 정민이 운전하여 앞으로 나아가자 무기고 문이 열렸다.


무기고에는 실탄 한 상자와 총 20여 개가 있었다. 같이 간 다섯 명이 총 한 자루씩을 나눠 갖고, 나머지는 시민군들에게 나눠주었다. 계엄군들이 지닌 총에 비하면 오래된 총이라 낡고 형편없었지만, 더는 억울하게 당할 수만은 없었다.

도청을 진입한 계엄군들이 시민들을 연행하는 모습( 사진 출처: 5.18 기념 재단)
5.18 당시 시민군 모습( 사진 출처: 5.18 기념 재단)
5.18 당시 시민군 모습(사진 출처: 5.18 기념 재단)

막상 총을 가졌지만 동하와 정민은 총사용법을 몰랐다.

교련 시간에 총 쏘는 법까지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동하는 태어나 처음 잡아본 총이 무섭고 떨렸다.


시민군 중에 군대 갔다 온 남자들이 동하와 정민에게 총사용법을 가르쳐주었다.

동하와 정민은 금세 총 쏘는 법을 익혔다. 총의 구조는 의외로 간단했다. 총알을 탄창에 집어넣고 간단히 방아쇠만 당기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총알이 나간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총을 잡으니 떨리고 긴장됐지만, 한편으론 든든한 마음도 있었다. 이제 더는 군인들에게 당하지 않고 맞설 수 있다는 생각과 시민들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에 힘이 솟았다.


총을 나눠주던 남자가 총을 받아든 시민군들을 모이게 한 뒤 말했다.


“여러분, 총을 가지고 있다 해서 함부로 총을 쏘면 안 돼요. 절대 아무 때나 위험한 총알을 남발해서는 안 된다 이 말이요. 한 자리에서 계속 쏴도 안 돼요. 안전한 방패막이를 확보한 다음 그 뒤에서 쏘고 숨고, 쏘고 숨고 해야돼라. 인자부터 내 작전 명령에 따르시믄 좋겄소만, 다들 어찌 생각허시요?”


남자의 말에 시민들이 만세를 부르며 기뻐했다.


“몸을 드러내면 위험해요. 자기 몸을 보이믄 놈들에게 금방 표적이 된다는 걸 명심허시오. 알겄지라?”


“네, 알겄습니다!”


남자의 당부에 다들 큰소리로 대답했다.


동하는 실탄 몇 발을 탄창에 넣으며 손이 덜덜 떨렸다.

생전 처음 사용해보는 총이라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동하와 정민은 시민군과 함께 계엄군이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 옥상으로 몰래 올라가 숨어서 동정을 살폈다.


조금 전 시민군을 지휘하던 더벅머리 남자가 지시를 내렸다.


“발사!”


시민군들은 도청 앞에서 계엄군을 향해 총을 내리쐈다.


탕, 타다다탕, 타당, 탕탕. 탕, 타타다탕, 타타탕.


정신을 차릴 수 없이 많은 총알이 계엄군들을 향해 튀어 나갔다.

방아쇠를 당기는 손끝이 덜덜 떨렸지만, 멈출 수 없었다.

동하는 어떻게 총을 쏘았는지 정신이 멍했다. 그저 목표물을 향해 쐈을 뿐이다.

한참 동안 총을 쏘고 나자 탄창에 총알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동하는 옥상 난간에 숨어서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갑자기 총소리가 잦아든 거리는 텅 비어있었다. 웬일인지 군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갔을까.


동하는 군인들이 사라지자 더 긴장되었다. 군인들이 언제라도 불쑥 모습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전쟁터 같았던 금남로가 한순간에 찬물을 끼얹듯 조용해졌다.


숨어 있던 사람들이 주변을 살피며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군인들이 물러갔다는 것을 확인하고 환호했다.


“군인들이 물러갔다아. 우리가 공수부대를 이겼다아!”

계엄군이 물러갔다고 태극기를 들고 환호하는 시민들

시민들은 목이 터지게 소리를 지르며 기뻐했다.

시내는 밀려든 사람들로 술렁거렸다. 금남로 거리는 기쁨으로 차올랐다. 사람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얼싸안고 만세를 불렀다. 공수부대가 광주 시내를 빠져나갔다는 정보는 사실이었다.


거리에는 불타버린 버스와 수 십 대의 자동차들이 불에 탄 채 버려져 있었다.

길가의 건물들이 흠집이 나고 유리창도 깨져 엉망이었다.

도로는 깨어진 유리조각과 뒤엎어진 보도블록들이 뒤엉켜 있었다.

공수부대가 물러갔다는 소식을 들은 시장 상인들이 주먹밥과 김밥을 만들어 시민군들에게 나눠주었다.

시민군들에게 음식을 만들어서 나눠주는 시장 상인들의 모습( 사진 출처: 5.18 기념 재단)

“아이고, 장허다! 무지막지헌 군인들하고 싸우니라고 얼매나 무서웠을꼬이. 어서 묵고. 힘내소!”


아주머니들은 지나가는 시민군들의 얼굴을 물수건으로 닦아주었다.

음료수와 빵을 나눠주고 가는 시민들도 있었다.

동하와 정민도 아주머니들이 주는 음식들을 감사히 받아먹고 인사를 했다.

얼굴이며 손이며 최루탄 가스로 범벅이 되어 알아볼 수 없었지만 오랜만에 웃음꽃이 활짝 피어올랐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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