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정오쯤 되었을 때 시민군 대장이 조를 편성했다.
5인 1조였다. 동하와 정민은 같은 조가 되었다.
“여그, 5조는 광주 외곽지역을 지키시오.”
대장이 지시했다.
동하는 외곽지역을 지키는 일보다 도청에 가서 시신을 지키는 일을 하고 싶었다.
“도청에서 시신 지키는 일을 허고 싶은디요, 어츠케 안될 게라?”
대장은 한참 생각하더니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때부터 동하와 정민은 각처에서 도청으로 옮겨진 시신들을 지키는 일을 하게 되었다.
상처 난 시신들을 닦고 옷을 입혀서 관에 넣고 관 위에 태극기를 씌워 주는 일이었다.
다음날 새벽이었다.
동하와 정민은 도청 강당에서 교대를 서고 있었다.
대장의 무전기에서 연락이 왔다.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이 있다고 하니 빨리 가서 이쪽으로 델꼬 오시오.”
동하는 다른 시민군에게 임무 교대를 하고 정민과 함께 트럭을 운전했다.
현장에 도착하니, 골목 한쪽에 중학생 정도의 학생이 피를 흘린 채 실신해 있었다.
“아니, 야는 윤수아니여?”
정민이 놀라 소리를 질렀다.
자세히 보니 명수 동생 윤수가 확실했다.
윤수가 어쩌다가 이런 변을 당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옆구리에서 계속 피가 흐르고 있었다.
우선 지혈부터 해야 했다.
“윤수야. 정신 차려!”
윤수는 이미 많은 피를 쏟았는지 의식이 없었다. 정민은 입고 있던 속옷을 벗어 윤수의 옆구리에 묶었다. 지혈한 탓인지 흐르던 피가 멈추었다.
윤수는 내성적이었지만 명수와는 다르게 공부를 곧잘 했던 아이였다. 공부하다가 모르는 게 있으면 윤수는 형인 명수에게 묻지 않고 이웃에 사는 정민에게 묻곤 했다. 그럴 때마다 정민은 윤수의 공부를 가르쳐주었다.
둘은 윤수를 트럭에 태우고 곧장 전남대학교 응급실로 갔다.
트럭 밖으로 보이는 광주 거리는 텅 비어있고 차도 다니지 않았다.
길거리의 상점마다 문들이 닫혀 있었다. 도시 전체가 침묵에 잠긴 듯 조용했다.
“근디 명수 이 새끼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거여?”
동하는 명수가 궁금했다.
명수는 지난해부터 행방을 감추고 연락이 되지 않았다.
혹시 계엄군에게 잡혀간 건지, 죽었는지 소식을 알 길이 없었다.
“환자들이 꽉 차 있어서 더 이상 수용할 수 없어요. 다른 병원으로 가보세요!”
병원 응급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간호사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사람이 다 죽어가는디 어디로 간다요? 바닥에 눕혀서라도 좋은께, 빨리 부탁 좀 헙시다. 피를 많이 흘려서 지체하믄 야, 죽어요!”
간호사와 한동안 실랑이하고 있는데 의사가 들어왔다.
동하는 의사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사정했다.
“선생님, 제발 치료 좀 해주십시요. 급합니다!”
힐끗 환자를 본 의사가 외면하며 말했다.
“지금 병원에 환자들 꽉 차 있는 거 안 보입니까? 여기 환자들 보기도 바빠요!”
의사가 냉정하게 돌아섰다.
동하는 의사의 머리에 총을 들이댔다.
“수술하는 사이에 죽는 한이 있드라도, 빨리요! 안 글믄 방아쇠 당깁니다!”
당황한 의사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손을 들어 수술하겠다는 의사를 비쳤다.
곧바로 윤수는 수술실로 옮겨져 수술을 받게 되었다.
수술을 마친 의사가 말했다.
“옆구리로 총알이 관통해 갈비뼈 두 개가 나갔습니다. 수술 전에 워낙 피를 많이 흘린 데다 실신한 상태였기 때문에 혹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괜찮을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동하와 정민은 의사에게 허리 굽혀 인사하고, 윤수가 누워있는 회복실로 갔다.
윤수는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못한 채 잠을 자고 있었다.
안도감이 든 동하와 정민은 병원을 급히 빠져나왔다.
공수부대가 도시 밖으로 나갔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며칠 동안은 잠잠했다.
광주시민들은 시민군과 정부가 화해하고 더는 싸우지 않게 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동하는 불길했다. 이대로 순순히 물러날 공수부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라도 불시에 그들은 시민들을 향해 총구를 겨눌지 모른다. 그들이 잠시 작전을 재정비하기 위해 물러갔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자 공포심이 밀려들었다.
“이대로 물러갈 군인들이 아니여! 다시 쳐들어 오겄제. 더 많은 총알, 더 강력한 폭격기를 앞세우고.”
정민이도 말했다.
동하는 침묵에 싸인 광주가 오히려 더 무서웠다.
그날 밤 가두방송이 흘러나왔다.
가냘프면서 또랑또랑한 여자 목소리는 가슴에 총알이 박히듯 뜨겁고 아프게 밤하늘에 울려퍼졌다.
"광주 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쳐들어 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형제 자매들이 계엄군의 총칼에 숨져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일어나서 계엄군과 끝까지 싸웁시다. 시민들은 속히 광주 도청으로 모여주세요."
가두 방송을 듣고 시민들은 물론 중. 고생들까지 광주 도청으로 몰려들었다.
다음 날 오후, 광주 외곽을 지키고 있던 시민군에게서 다급한 소식이 들려왔다.
탱크 2대가 바리케이드를 부수고 광주로 들어오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운암동 쪽에서도 탱크가 나타났다는 연락이 왔다.
도청에 있던 지도부는 시민군들에게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으니 대비하라고 말했다.
도청 안에 있던 시민군들이 술렁거렸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계엄군 대장은 시민군들에게 대치를 포기하고 무기를 반납하면 살려줄 것이고, 끝까지 버티는 사람은 죽게 될 것이라고 선포했다. 말을 따르지 않으면 도청을 진압하겠다는 통보를 전해왔다.
도청은 저항의 중심이었다.
계엄군들은 도청을 진압함으로써 시민들의 저항을 완전히 짓밟겠다는 의도였다.
시민군은 계엄군과 화해를 시도하고 싶었지만, 계엄군은 화해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일방적인 통보만 해왔다. 무기 반납하고 투항하지 않으면 다 죽이겠다는 거였다.
시민군들은 도청에서 밤새워 회의했다.
“일단 무기를 반납하면 살려 준다 하니 무기부터 반납합시다.”
“참 순진도 허시네요잉. 지금 그 말을 믿어요? 우리가 총을 반납하믄 그 순간부터 우리는 죽은 목숨이요.”
“총을 반납하드라도 순서가 있는 법입니다. 일단 계엄군의 사과를 받아야 하고요, 계엄군이 죽인 광주시민들의 시신을 되돌려 받아야 합니다. 끌고 간 시민들도 풀어줘야 하고, 그동안 광주에서 일어난 참상을 전국에 알려서 우리의 명예를 회복 받아야 합니다.”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닌디요, 그동안 계엄군들을 겪어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요? 계엄군은 이미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것들이요, 그런 말은 씨알도 안 먹히는 말이란 말이오. 우리는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총을 반납하면 안 되고, 마지막까지 남아서 싸워야 한당께요.”
“우리가 전부 다 해산해 뿔믄 계엄군들이 우리럴 폭도로 몰아서 어츠케 결론을 낼랑가 모릉께, 여그 남아서 광주 도청을 지킵시다.”
동하와 정민도 끝까지 도청을 지키기로 했다.
계엄군들에게 항복하는 것은 비겁한 짓이고, 이제까지 싸워온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었다.
“차라리 도청을 지키다가 죽는 게 낫제, 항복은 싫소!”
시민군 중 한 명이 큰소리로 의견을 말했다.
그러자 너도나도 옳소! 옳소! 의견들을 내놓았다.
좌중을 둘러보던 시민군 대장이 말했다.
“그럼 도청을 지키는 게 좋겄다고 생각허시는 분들 손 좀 들어보시오.”
시민군들이 여기저기서 손을 들었다. 동하와 정민이도 손을 들었다.
아직 손을 들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럼 여그서 항복하고 나가고 싶은 사람 손 드십시오. 괜찮은께 솔직하게 말해도 되어라. 여그서 항복하고 나간다고 누가 욕할 사람 한 사람도 없응께. 각자 의견을 존중할랍니다.”
시민군 중에 몇 명이 가까스로 손을 들었다. 그들은 마치 죽을죄를 지은 것처럼 미안해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도청을 지키는 시민군 중엔 중학생도 있었고, 고등학생도 있었다.
시민군들은 어린 학생들부터 먼저 내보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느그들은 아직 앞날이 창창헌디, 여그 있으믄 안 된다. 손들고 투항해라!”
“이왕 싸우겄다고 들왔는디, 항복은 비겁한 짓이어라. 죽드라도 그냥 여그 있을랑마요.”
아직 미성년자인 학생들은 나가지 않고 도청을 지키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안 있냐. 느그들은 집으로 가야 헌다. 우리 말 들어라이. 느그들이라도 살아남아서 더 좋은 세상 만들어야 안 허겄냐!”
시민군 대장이 눈물을 글썽이며 학생들을 설득했다.
여기저기서 학생들을 설득하자, 나중에는 몇몇 학생들이 마음을 바꾼 것 같았다.
하지만 끝까지 투항을 거부하고 도청에 남겠다는 학생들도 있었다.
고등학생 하나가 시민군들에게 말했다.
“시민군 형님들, 죄송합니다! 즈이들만 살 것다고 나갈랑께, 염치가 없네요. 죄송합니다.”
학생들이 눈물을 훔치며 시민군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그밖에 투항하고 싶은 시민군들 몇 명이 고개를 조아리며 밖으로 나갔다.
동하는 창문 밖으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총을 버린 채 두 손을 높이 들고 도청 밖으로 나갔다.
항복을 표하며 앞으로 걸어 나가는 그들에게 계엄군들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총을 난사했다.
“저 나쁜 새끼들!”
도청 안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시민군들이 울분을 터트렸다.
항복하면 살려주겠다고 했던 약속을 믿고 나간 미성년자들과 시민군들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안에 있던 시민군들은 도청을 지키겠다는 학생들을 설득해 투항하게 했던 걸 후회했다.
참혹한 꼴을 보고 난 시민군들은 울화통을 터트리며 계엄군들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이제 희망 같은 건 없었다. 어차피 다 죽게 되어 있는 시나리오였다.
군인들은 방금 숨진 시신들을 군용트럭에 싣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동하와 정민, 시민군들은 밤새 두려움을 안고 총을 멘 채 도청을 지켰다.
일 초, 이 초. 피가 마르는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시민군들은 무한정 피 흘리기를 원치 않았다. 계엄군과 화해를 시도해 평화적으로 사태가 해결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럴 가망성은 전혀 없었다. 계엄군이 탱크를 동원해 쳐들어온다면 시민군은 어차피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이었다. 하지만 과연 그런 해결책밖에 없었을까. 안타까웠다.
동하와 정민은 담담한 마음이었다. 그들은 이미 죽음을 예고하고 있었다.
참으로 길고 긴 밤이 지나갔다.
창밖엔 서서히 어둠이 걷히기 시작했다.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다다다다다 다다다다다!
군화를 신은 수많은 발걸음이 박자를 맞추듯 몰려드는 소리가 들렸다.
동하는 급히 창문 너머로 도청 밖을 내다보았다.
중무장한 계엄군들이 도청 주위를 사방으로 에워싸고 있었다.
탱크와 장갑차가 도청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총을 든 군인들이 신속한 동작으로 도청 주위를 세 겹, 네 겹으로 포위하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사천여 명은 되는 것 같았다.
동하는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눈을 질끈 감았다. 전신으로 조여오는 긴장감, 주체할 수 없는 불안감이 온몸을 내리덮었다. 계엄군의 강력한 무기 앞에 동하는 절망스러웠다. 동하의 총은 그들의 힘에 비해 너무 무력했다.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동하와 정민은 눈을 감고 부모님에게 마지막 절을 했다.
자꾸만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자신의 시신을 확인하고 무너져내릴 부모님에게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닦아도 닦아도 눈물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
시민군들은 긴장한 채 총을 겨누고 일제히 창밖을 응시했다.
도청 안으로 서치라이트를 비추며 방송이 흘러들어왔다.
“폭도들에게 경고한다. 너희들은 완전히 포위되었다.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
“폭도들에게 경고한다. 너희들은 완전히 포위되었다.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
두 번의 경고음을 마치자마자 계엄군들이 도청 담을 넘어 들어왔다.
펑! 펑! 탕탕타타타다탕! 타타타타타타탕! 펑! 펑! 탕탕탕! 타타타타타타탕탕!
도청 안으로 들어온 계엄군들은 층마다 수류탄을 던지며 닥치는 대로 총을 쐈다.
수많은 총알이 안으로 날아 들어왔다.
여기저기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가는 시민군들이 늘어났다.
동하는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이 시간을 견디느니 차라리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하는 온몸에 힘이 빠져 꼼짝할 수 없었다. 극도의 공포심에 자신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가늠조차 어려웠다. 귓전에 울리는 총소리가 꿈처럼 아득했다.
“생포해!”
계엄군 대장이 명령을 내리는 소리를 들었던 것도 같았다. 하지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내가 살아난 건가. 계엄군의 총 앞에서 죽지 않고 살아난 건가.’
동하는 흐득흐득 눈물이 흘러내렸다. 살아났다는 게 실감 나지 않았다.
몇 명이 사망하고 몇 명이 살아남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계엄군들은 살아남은 동하를 보자마자 곤봉으로 내리치더니 포승줄로 묶었다.
동하는 계엄군들에게 끌려서 힘없이 계단을 내려왔다. 온몸에 맥이 빠져 다리가 후들거렸다. 계단으로 피가 콸콸 흘러내렸다.
계엄군들은 살아남은 자들을 도청 앞마당에 엎드리게 했다.
바닥에 엎드린 시민군들을 군홧발로 밟고 닥치는 대로 때리기 시작했다.
동하는 기진맥진한 몸을 축 늘어뜨리고 바닥에 엎어졌다.
계엄군들은 죽은 시신들을 트럭에 싣고, 남은 자들에게 차에 타라고 지시했다.
동하도 계엄군들이 시키는 대로 무거운 몸을 움직여 차에 올라탔다.
차창 밖으로 묵묵히 서 있는 도청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도청 건물에 퍼부어진 수만 대의 총알로 도청 벽은 뻥뻥 구멍이 패어 있었다.
동하는 짐짝처럼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끌려갔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