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이네 집은 엄마 아빠가 포장마차를 했다.
엄마 아빠는 새벽에 들어와서 잠을 자고 오후 2시가 되면 일하러 나갔다.
재이의 부모님은 항상 지쳐 있었다. 일에 파묻혀 재이에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재이의 부모님은 재이가 그저 건강하게 자라 평범하게 살아가길 원했다.
방학 동안에도 재이는 날마다 게임에 빠져 지냈다.
재이는 날마다 도돌이표 같은 일상을 되풀이했다. 방학하고 나니 더 지루했다.
오늘도 재이는 뭘 할까 하다가 책상 위에 있는 구리 펜던트를 닦기 시작했다.
펜던트를 닦자마자 재이 방이 지난번처럼 숲으로 변했다.
재이는 숲속을 두리번거렸다. 희뿌연 안개로 뒤덮인 숲길은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길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가도 가도 알 수 없는 길뿐이었다.
숲속을 헤매던 재이는 점점 불안해졌다. 아무도 없는 숲은 왠지 으스스했다. 금방이라도 뭔가가 툭 튀어나올 것만 같아 심장이 조마조마했다.
구불구불한 숲길을 걸어 가보니 멀리 오두막집이 보였다.
이런 숲속에 오두막집이라도 있으니 그나마 반가웠다. 하지만 숲속에 오두막집은 동화 속에 나오는 집처럼 현실감이 없었다. 과연 저곳에 사람이 살기나 할까. 두려운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궁금증이 일었다.
재이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흙과 나무껍질을 얼기설기 엮어서 만든 오두막집 앞으로 다가갔다.
오두막집 앞에서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밖에서 조심스레 문을 두드렸다.
톡톡톡.
안에서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돌아갈까?
마음속에서 갈등이 일어났다.
한 번만 불러보고 소식이 없으면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안 계세요?”
재이는 무서워서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문을 두들겼다.
안에서 누군가 문을 열고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놀란 재이는 몸이 움츠러들었다.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청년이었다.
그런데 동글동글한 얼굴이 어딘지 낯이 익었다.
청년은 재이를 빤히 바라보더니 말했다.
“들어 와. 재이야.”
재이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내 이름을?”
재이는 당황스러워 청년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여. 동하.”
청년은 하얀 이를 내보이며 웃었다.
“뭐라고? 동하라고?”
재이는 동하라고 말하는 청년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서글서글한 눈매와 입 주위 보조개가 어릴 적 동하 모습이었다.
“어? 어떻게 된 거야?”
“어츠케 되긴 뭐가 어츠케 돼야?”
“재이야, 언능 와. 여그 앉어야.”
방 한가운데 둥그런 탁자 앞에 둘러앉은 정민이 웃으며 재이를 반겼다.
그러고 보니 정민이도 청년으로 변해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이제 형이라고 불러야겠네.”
“괜찮애, 니 편할 대로 불러. 우린 친군께 그냥 동하라고 부르든지.”
정민이도 괜찮다고 편하게 부르라고 말했다.
재이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탁자 앞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명수가 보이지 않았다.
“근데 명수는 안 보이네?”
“명수? 그 느자구없는 새끼는 요새 코빼기도 안 뵌다. 어디 갔능가.”
“그런데 왜 여기, 와 있는 거야?”
“우리는 지금 숨어 있는 거여. 잡히믄 안된께.”
“왜? 왜, 숨어 있는데?”
동하가 말했다.
“데모허다가 군인들을 피해 숨어 있다고.”
“데모? 그런 걸 왜 하는데?”
동하는 한참 동안 무슨 말을 할까 궁리하다가 재이를 바라봤다.
“니, 학교에서 반장 선거 헐 때 아이들이 직접 뽑냐, 안 뽑냐. 만약 반장을 선생님 마음대로 정한다고 생각해봐야. 기분이 어쩌겄능가.”
동하가 재이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거야 말도 안 되지.”
“그래, 바로 그거여. 그 말도 안 되는 짓을 지금 나라에서 하고 있잖애. 한 나라의 대통령을 국민이 못 뽑고 자기들 맘대로 독재를 허고, 그렁께 우리가 이러는 거제. 뭐 땀시 그러겄냐.”
“왜 투표를 안 하는데? 다 하면 되잖아.”
재이가 말했다.
“아따 야는! 니, 학교에서 안 배웠냐? 5학년이믄 배울 만도 한디. 참 깝깝해브네. 박정희 대통령은 헌법을 고쳐서 임기 제한을 싹 다 없애부렀어. 국민이 직접 투표할 수 없게 만들어브렀다고. 결국 장기 집권을 허다가 부하의 총에 맞아 죽게 됐제, 인자는 또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박정희와 똑같은 방식으로 쿠데타를 일으키고 국민을 탄압허고 있단 말이여, 시방. 학생들이 데모허는 이유를 아직도 모르겄냐?”
동하는 답답하다는 듯이 재이를 바라봤다.
“어즈께, 우리 학교에 휴교령이 내려부렀어. 아침부터 정문 앞에 군인들이 쫙 서서 학생들을 못 들어가게 막는 거여. 학생들이 항의했고, 항의하는 학생들을 군인들이 곤봉으로 두들겨 팼어. 많은 학생이 다쳐 부렀다고. 정민이도 많이 맞았고.”
“정민이를 군인들이 왜 때려?”
재이가 말했다.
“아따, 참말로 답답해부네. 정민이 니가 말 좀 해 봐야.”
동하가 답답하다는 듯이 정민을 바라보았다.
-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
#장기집권 #유신 #휴교령 #데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