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제 : 시계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였으니 세월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한 번은 큰 아이랑 스누피 시리즈를 보고 있었다. 사실 원제목은 ‘피너츠’이지만 아이들은 늘 스누피라 했다. 워낙 나온 지도 오래되었고 인기가 많아 NASA의 비공식 마스코트이기도 했다. 지금은 검색하면 다 나오지만, 그 당시만 해도 비디오에 녹화를 떠서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종류가 그리 많지도 않고 자주 하지도 않았으니, TV에서 방영될 때 녹화해서 마르고 닳도록 보곤 했다.
마침, 스누피가 전 주인 여자애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찾아가는 길이었다. 제일 친한 친구인 우드스톡과 함께 노숙하면서 먼 길을 가고 있었다. 아침이 되어 자명종 시계가 울렸다. 스누피가 일어나지 않으니 계속 울렸고 화가 난 스누피가 시계를 위에서 누른다는 것이 너무 세게 때리다시피 해서 시곗바늘이 다 찌그러졌다. 나는 그 장면이 재미있어서 “시계 안까지 자세히도 묘사한다.”라고 했더니 옆에서 딸아이가
“뭐가?” 한다.
“저 시곗바늘이 다 찌그러졌잖아.”하니까 자긴 그게 안 보인단다. 아직 저학년인데 걱정이 되어 안과에 갔다. 안경을 쓰라고 한다. 이럴 때 그냥 두면 더 나빠질 수도 있다고 해서 안경을 맞추고 왔다. 그 뒤로도 둘째 셋째가 비디오를 볼 때, 그 부분이 잘 보이는지 계속 물어보면서 스누피 애니메이션을 보여주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영화가 내게는 아이들의 시력과 자라는 모습을 확인하는 매개였다. 그들이 자라면서 애니메이션을 같이 보고 즐겼다. 그래서 인가 나는 어린아이 같은 감성이 오래 남아있었다. 다 큰 아이들이 제주도에 가서 스누피 정원을 보고 오면서 나에게도 엽서를 사 주었다.
며칠 전 아들이 ‘케데헌’을 봤는지 묻는다. 나는 뭐라고? 이름도 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요즘 아이들이 말할 때 “제발 엄마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해달라.”라고 부탁한다. 좀 슬프기도 하지만 어쩌겠나 바뀌는 세상을 따라가야지. 그래서 아이들에게 ‘뭐 재미난 거 있음. 엄마에게도 알려줘.’라고 했었었다.
“그게 제목인가?” 했더니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줄임말이라네. 요즘 세계적인 인가를 끌고 있다고 한다.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은 다 외국인 작품이라는 선입견을 여지없이 깨 버렸다. 지금은 K자가 들어가면 폭발적인 관심을 얻는다.
K팝 걸 그룹 구성원들이 악귀를 사냥한다는 독특한 세계관을 가진 애니메이션인데 그와 관련된 굿즈나 한국의 관광 특히 김밥을 한입에 틀어넣는 외국인 영상도 유튜브에 많다고 하니 놀라울 뿐이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까지 파급 효과를 미치며, 외국인들이 한국으로 달려오고 엄청난 시장이 창출되고 있다고 한다.
참으로 세상은 살아있는 유기체이다. 만화 하나도 이렇게 바뀌고 있으니, 얼마나 달라져 가겠나. 하지만 시곗바늘이 찌그러져도 여전히 시간을 가리키듯 이름조차 낯선 애니메이션으로 다양해지지만, 그 시간을 함께 나누는 마음만은 변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