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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글제 : 도둑

by 김미희건이나비

우연히 한 모임에서 단소를 배우고 있다는 분을 만났다. 단소란 단어에 귀가 번쩍 뜨였다. 대학 다닐 때 잠시 차를 배우고, 단소 불며 붓글씨를 쓴 적이 있다. 그 뒤로 아무것도 다시 시작해 보지 못하고 무심히 세월이 흘렀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하다가 60이 넘어버렸다. 다른 것보다 단소는 다시 한번 불어보고 싶었다. 막연히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그분이 “배우러 오세요, 강사님이 참 좋은 분이세요.” 한다.


용기를 내어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40년 전에 사용하던 단소를 아직 버리지 않고 갖고 있는 내가 신기했다. 언젠가는 하는 시간이 나에게 도달한 것 같다. 단소를 찾아서 가야 할 장소를 물었다. ‘현음회관’으로 오라 하는데 문득 현음이란 글자가 내 단소를 싸고 있는 공단 보자기에 적혀있는 것을, 들고나가면서 알게 되었다. 설마 같은 곳일까라는 생각이 잠시 스치는데, 기억은 없다. 누가 내 기억을 가져가 버렸지? 어디서 언제 누구에게 배웠는지 아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지 그 보자기만이 유일한 증거물이다. 한 페이지가 찢겨 나간 듯 흔적을 찾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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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으로 된 건물 입구에 현음회관이라고 쓰여있다. 1층은 창을 배우는 교실이고 2층이 단소 교실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강사님이 내 단소 보자기를 보더니 바로 알아보면서 묻는다.

“어떻게 그걸 갖고 계십니까?”라며 놀란다. 완전 초창기의 보자기이고 그 뒤로 디자인이 좀 바뀌었다가 이제는 그것마저도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80년대에 배웠는지 묻는다. 대표님이 81년도에 현음회를 만들었고, 지금은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의 강사님은 2015년에 현음회로 들어와서 선배님들이 들고 다니는 것을 보았다면서 정말 반가워하시며 한번 열어보자 한다. 나무로 된 단소가 얌전히 들어있다. 시간이 지나다 보니 아랫부분이 좀 갈라져있다고 하면서 그래도 소리는 잘 난다고 한다.

집에서 불어봤을 땐 소리도 나지 않았다. 책이랑 연습용 단소를 받고, 다시 배워보니 의외로 소리가 나고, 희미하게 기억나는 음률도 있다. 처음이라 긴장했는지 어깨도 아프고 몇 번 불어보려 하니 어지럽기까지 하다. 아마도 긴장해서 그럴 거라고 힘을 빼고 편안히 하라고 한다.


기분 좋게 단소 소리를 내어보면서 첫 수업을 마치고 나왔다. 생각할수록 신기하다. 40년 전에 무심히 던져두었던 씨앗이 이제야 작은 싹을 틔우려는 것일까? 그 오래된 인연이 다시 나를 부른다.

“인연은 두 번도 쉽게 오는 것이 아니지만 세 번까지의 행운은 바랄 수가 없다.”고하며 꼭 나와보라고 한다. 시간 있을 때 스스로 나를 위로하는 연주를 하고 내 친구를 만들고 싶을 뿐이다.

지금이 기회인가? 무슨 일이든 때가 있고 인연이 있어야 다시 만날 수 있다. 나는 단소를 꼭 안고 도둑맞은 듯 지워진 추억의 나와 지금의 나를 같이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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