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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러시아 바이칼호수에서

by 김미희건이나비

사람들은 말한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찬란했던 시기를 화양연화라 부른다고. 나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 지금도 그 시절을 떠올리면 가슴 한편이 따뜻해진다.

2005년, 내 생일날. 초등학교 5학년이던 둘째 딸이 말했다.

“엄마, 이메일 열어봐요. 생일선물이에요.”한다.

기대하며 열어본 메일함엔 도착해 있던 편지가 있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라는 이름의 따뜻한 문장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 인연은 내가 감히 상상조차 못 했던 경험으로 나를 이끌었다.


몇 해 뒤, 서울로 대학을 간 큰딸아이를 따라 올라간 김에 아침 편지의 공간을 찾았다. 고도원 님이 편지를 쓰는 집무실, 아침지기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사무실, 그리고 멀리 몽골과 바이칼, 일본으로 떠나는 명상 여행안내서. 그 모든 것이 나와는 너무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아이 셋을 키우며, 학비에, 시집살림에 분주하던 나날들. 나는 조심스레 말했다.

“이 여행 프로그램 오래 하세요. 저 아이들 셋 다 대학 보내면, 꼭 참여하고 싶어요.”

그러자 아침지기 한 분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책 읽고 밑줄 긋기 대회가 있어요. 1등 하면 공짜로 여행 가실 수 있어요.”

그 한마디가 마음을 흔들었다. 나는 해마다 진행된다는 대회 소식을 찾아 메일함을 샅샅이 뒤졌다. 당첨되면 겨울 바이칼, 몽골의 말타기, 일본 온천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나는 눈 덮인 바이칼호수를 가장 가고 싶었다.


나는 다섯 권의 책을 고르고, 정성껏 읽고, 밑줄을 그었다. 이미 알려진 베스트셀러는 피하고 사람들이 흔히 고를 법한 책도 피하고, 조금은 낯설지만 내 마음에 와닿은 문장들이 있는 책을 찾았다. 그 모든 과정을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결과는 우수상. 최우수 한 명만 여행을 가게 되었고, 나는 50만 원 상금과 함께 서울 식사자리에 초대받았다. 그 자리에서 고도원 님 앞에서 소감을 말했다.

“저, 여행을 꼭 가고 싶습니다. 될 때까지 계속 도전할 거예요.”

그 마음이 전해졌던 걸까. 이듬해, 나는 드디어 초대받았다. 꿈에도 그리던 러시아 바이칼로 떠나는 여행이었다.

그 당시 내가 살던 시집살이에서는, 해외여행이란 단어 자체가 사치였다. 국내 여행조차 눈치를 봐야 했으니까. 하지만 이건 ‘부상’으로 주어지는 여행이었기에 가족들이 모두 응원해 주었다.

눈 내리는 자작나무 숲. 몽골을 지나 러시아로 이어지는 밤열차.

차창 너머 펼쳐지는 세상은, 내가 알던 세상과는 너무도 달랐다.

끝을 알 수 없었던 바이칼호수. 펼쳐지는 아름답고 이국적인 풍광들 눈을 뗄 수 없었다. 마음이 자꾸 뜨거워졌다.


그 여행 이후, 나는 조금씩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1년에 단 일주일쯤은 내가 사라져도 괜찮지 않을까?’ 조심스레 그런 생각을 품고 가끔은 눈치 보며 때로는 억지로라도 해마다 한 번쯤은 짧은 여행을 떠났다.

돌아보면, 그 시절이 내 인생의 화양연화였다. 찬란했고, 뜨거웠고, 무엇보다 잠시라도 내 삶의 중심에 나를 세워 보았던 시간이었다. 그 여행이 가르쳐준 건 세상이 허락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 내가 먼저 스스로를 허락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이제 나는 안다. 발목을 잡고 있던 건 형편도, 시집살이도 아닌 ‘나는 안 될 거야’라고 믿던 내 마음이었다는 걸.


지금도 가장 하고 싶은 건 여행이다. 지금도 많은 이유가 나를 묶고 있지만 그 모든 것보다 강력한 건, 나 자신을 믿고 다시 문을 여는 용기라는 걸, 그리고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는 것을. 앞으로 남은 생에서 또 한 번, 무모함과 설렘이 뒤섞인 화양연화를 피워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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