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꽃이 피는 이유

글제: 꽃

by 김미희건이나비

내가 어렸을 때 엄마는 꽃꽂이를 배우고 올 때 수업한 꽃다발을 늘 가슴에 안고 오셨다. 손잡이가 있는 가방 안에 꽃을 신문으로 말아 넣고는, 들지 않고 안고 오는 모습이 어린 나이지만 궁금했다. “엄마 왜 가방을 안고 오세요?”라고 물으니, 엄마는 “꽃을 아기처럼 대해야 한다고 선생님이 알려주셨어. 그래서 이렇게 안고 오면 너희들을 안고 있는 것처럼 좋단다.” 하셨다. 아마도 그때부터인 거 같다. 꽃을 사랑하게 된, 나에겐 하나의 포인트였다.


중학교 2학년 때 대덕산 근처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조금만 걸어 나오면 충혼탑이 있었다. 전쟁 때 가족을 잃은 후손도 아닌데, 그 동네로 이사 가서는 현충일이 되면 안개꽃을 사서 충혼탑으로 갔다. 무슨 이유가 있었던 것은 기억나지 않고 그렇게 하고 싶었다. 지금도 안개꽃을 보면 어린 내가 그 꽃을 들고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고등학교 때 방과 후 참여 활동을 꽃꽂이반으로 정했다. 엄마처럼 꽃을 꽂고 꽃을 안고 다녀보고 싶었다. 누가 꽃을 선물해 주는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빠듯한 용돈으로 꽃을 사기도 쉽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수업에서 배워보면 좋을 것 같아서 선택했고 꽃꽂이 전시회라는 경험도 해보고 싶었다. 엄마가 하던 것처럼 꽃을 안고 다니니 정말 기분이 좋았다. 그 뒤로는 나는 가방을 덜렁덜렁 들고 다니기보단 뭐든 잘 안고 다녔다. 책도 가방에 넣지 않고 가슴에 안고 다녔다.

대학 땐 사진 찍는 것이 좋아져서 사진반 활동을 하면서 꽃과 자연을 많이 찍었다. 봄이면 벚꽃길을 찾고, 그러다 수국을 만나고 코스모스를 쫓아다니다 보면 국화가 피면서 세월이 흘러갔다. 엄마가 다니던 절이 비구니 절이라 청년회 활동을 하면서 꽃꽂이를 배우고 행사 있을 때 꽃 공양 준비를 도우며 꽃과의 인연이 이어졌다.

KakaoTalk_20241227_203235566.jpg


어느 사이 아이들이 커서 학원에 다니고, 어머님은 병중이라 좀 답답할 때였다. 아이들 학원에 데려주고 기다릴 때 꽃가게가 보여 들어갔다. 꽃을 좋아하는데 바구니나 꽃다발을 만들어서 선물하고 싶은데 가르쳐 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 선생님은 빈 시간에 와서 지내다 보면 차츰 할 수 있을 거라 얘기했고 나는 꽃꽂이 수업을 듣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고 내가 처한 사정도 알게 되니 꽃가게를 한번 해 보라고 권했다.

아이들도 커가고 나도 좀 나와 있을 공간도 필요했다. 다행히 작은 공간을 만들어 꽃가게를 하게 되었다. 꽃을 좋아하다 보니 매일 꽃 속에 살게 되었다. 아쉬운 점은 다 못 팔면 먹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짚신 장수 헌 짚신 신듯 시든 꽃을 들고 와서 내 방에 꽂아두곤 했다. 그러다 어머님이 돌아가시면서 꽃집도 문을 닫았다.


그 뒤로는 꽃을 보고 싶으면 행사장이나 수목원 등을 찾았다. 얼마 전 대구 하중도에서 열리는 정원박람회에 갔다. 코스모스가 아름답게 피어있었다. 나는 늘 꽃만 바라봤는데 우연히 그 많은 꽃 중에서 씨를 물고 있는 시든 꽃이 눈에 들어왔다.

꽃잎은 시들어 아래로 쳐져 있는데, 중앙에 씨앗이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한 기세로 360도 둘러쳐져 뾰족이 하늘로 비상의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 그제야 꽃들이 꽃을 피우는 이유가 온몸으로 전해졌다. 왜 그리 아름답게 피워내는지…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keyword
금요일 연재
이전 12화지휘자님의 반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