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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늠 자

글제 :휴지

by 김미희건이나비


“당신은 휴지를 나랑 다른 방향으로 걸어두네?”

난 무슨 말인 줄 몰라서 남편을 바라보았다.

“화장실에 휴지를 바꿀 때 나랑 늘 방향이 틀리더라고”


사실 나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습관대로 하는 방향대로 갈고, 어떤 땐 바뀌었나 하다가도 빨리 휴지가 닳으니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나는 안쪽에서 휴지가 내려오도록 사용하고 남편은 위에서 내려오도록 한다. 난 좀 둔한 편이라 별생각 없이 봤고, 남편보단 내가 갈아 끼우는 날이 많으니 바뀌어져도 무심히 지냈다.

그런 말을 듣고 나서, 친정 화장실에도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가 바꾸는 횟수가 많다 보니 또 그러려니 했다. 하루는 분명 새것을 내 식대로 갈고 집에 왔는데 다음 날 엄마가 사용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있었다. 그래서 또 돌려보았다. 다음 날 엄마도 바꾸어놓았다. 그러면서 나는 안심이 되었다.


사실 엄마는 10년째 치매를 앓고 계신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해서 약을 꾸준히 들고 계셔서인지 아직 상태가 심하진 않다. 형제가 많아도 엄마는 “내 집 두고 어디 가노.” 하셔서 아직 당신의 집에서 혼자 기거한다. 그러다 보니 주간보호센터에 가야 하고, 나는 아침마다 그 준비를 해드려야 한다.

세월이 흐르다 보니 잊어버리는 것이 많다. 심지어 일요일은 목욕하는 날이다. 머리는 엄마가 감고 내가 몸을 씻기는데, 샴푸도 못 찾고 머리에 비누칠을 해두고도 헹구는 것을 잊어버리기도 했다. 그래서 뭐든 자꾸 기억을 시키려고 노력하는데 화장실 휴지를 돌려놓는 것을 보니 너무 반가웠다. 그건 안 잊고 엄마의 방향으로 돌려놓는다. 그 단순한 반복이 잊지 않고 기억해 내는 엄마의 작은 승리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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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기억력을 체크하는 나만의 가늠자는 현관문이었다. 엄마는 아파트 문을 열어두게 하는 발걸이를, 문을 닫고도 늘 내려놓는다. 그것이 문을 잠그는 기능이라고 착각하시는지 언제나 발이 내려와 있다. 내가 친정에 들어가기가 무섭게 엄마는 현관문에 가서 발을 내린다. 그래서 문을 열 때 그것이 내려져 있으면 안심이 된다. 그건 집에 계신다는 말이니까.


잃어가는 기억이 많은 것 중에도 지켜지는 것이 몇 가지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이젠 휴지 방향도 가늠자가 되었다. 그 작은 가늠자가 엄마의 인지와 우리 관계를 지켜주는 버팀목이 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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