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제: 비 오는 날의 추억
'나이가 50이 넘었으니 여기저기 아플 만도 하지.’
남편이 중학생 때 지어진 집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살고 있다. 지난해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이상하게도 집에 많은 문제들이 생겼다. 비가 새질 않나, 대문이 떨어지질 않나, 태양열 전기에 문제가 생기질 않나. 여하튼 하나 수리하고 나면 또 하나가 터지고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예전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그다음 해 석류꽃이 피지 않았다. 석류나무는 영험이 있어 자기를 심은 주인이 돌아가면 그해에는 꽃을 피우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어느 어르신에게 들었다. 다음번엔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보라색 꽃을 피우는 맥문동이 흰 꽃을 피웠다. 식물이 어찌 알고 이런 변화를 일으키는지 너무 놀라웠다. 그런 뒤로 식물은 사람보다 영험한 기운이 있다는 말을 몸으로 믿게 되었다. 그런 경험으로 아버님 돌아가시고 꽃밭에 어떤 일이 생길까 내심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꽃밭이 문제가 아니었다.
아버님께서 지으신 집이라, 아마도 주인을 잃은 마음을 표현하는가 싶었다. 물론 집수리를 안 해온 것은 아니다. 처음 시집에 왔을 땐 쓰레기를 따로 버리는 곳도 있었고, 청소해 주는 사람도 있었다. 정원사도 가끔 와서 약도 치고 나무도 보기좋게 잘라주곤 했었다. 어머님이 오래 누워계셨고 할머님도 돌아가시면서 집을 잘 돌보지 못했다.
그러다 재개발된다는 소리에 아예 방치하고 살았다. 크게 문제 일으키는 것이 없었는데 갑자기 우후죽순처럼 일이 터졌다. 가장 큰 문제가 누수였다. 아버님 방을 새로 도배하고 남편이 쓰게 되었다. 그런데 도배한 천정이 조금씩 젖기 시작했다. 작년엔 지겹게 비가 많이도 왔었다. 큰방 창가 쪽부터 시작해서, 부엌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층 집이다 보니 비가 오면 베란다 쪽에서 물이 고였나 보다. 처음엔 원인을 빨리 못 찾아, 기어이 부엌 천장에선 물 파티가 열렸다.
한 곳에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타고 내려오면서 여기저기 물이 새는 거였다. 동화책에서나 보던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떨어지는 곳마다 양동이를 두니 무슨 ASMR(백색소음)도 아니고 기가 막혔다. 방수페인트를 바른 지가 오래되었고 여기저기 쌓인 낙엽들로 인해 물이 바로 하수구로 빠지지 못해 고여있는 것도 원인이었다. 여하튼 비 갠 더운 여름날에 방수페인트를 바르는 등 난리를 쳤다. 그때 남편이 수고를 많이 했다.
다행히 올해는 조용하다. 평범한 일상이 이리 감사할 줄이야. 작년엔 비만 오면 간이 오그라들었다. 페인트를 바르면 또 비가 오고 연거푸 힘든 시간을 보냈다. 아직은 재미난 추억이라 말할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리되리라 믿는다. 빗소리를 참 좋아했는데, 떨어지는 곳마다 묘한 음색을 만드는 그 화음을 즐겨서 비만 오면 비 멍하고 앉아 있었다. 문을 열어두면 앞창문에서 들려오는 소리랑 뒤쪽 문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화음을 만든다. 거기다 차가 빗길을 타고 지나는 소리까지 합치면 완전 오케스트라인데, 한동안 그 소리가 힘겹게 들렸다. 그래 늘 비는 왔는데, 내 맘이 좋았다 힘들었다 하는 거였다. 무슨 일이든 겪고 나면 그림자처럼 배움이 따라온다. 다 나쁜 것은 없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