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제: 건망증
동네를 돌다가 차를 찾아서 문을 터치하는데 아무 반응이 없다. 주택이라 차고가 하나밖에 없어 나는 늘 동네 빈자리를 찾아 헤맨다.
‘아 키도 잘못 갖고 왔구나.’ 할 수없이 먼 길을 돌아 다시 벨을 눌렀다. 그날따라 가지고 나갈 짐도 많았는데 연타를 친다.
“왜 또 오노? 이제 문 안 열어준다.”하며 남편이 눈을 흘긴다. 대문 창을 통해 가만히 서 있는 남편이 보인가. 나도 내가 밉다. 이미 폰을 두고 와서 나가다가 아차하고 돌아왔고, 두 번째 벨을 누르니 그런 소리 들어도 할 말이 없다. 나갈 때 분명 챙겼는데 가방 안에는 내 키랑 비슷한 아들 차 키가 들어있다.
건망증이 생기면 먼저 두려움이 올라온다. 이러다가 자꾸 잊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도 들고, 치매로 고생하시는 엄마가 떠오른다. 손끝이 야무지고 눈도 매서워서 허튼 것이 없는 엄마가 지금은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다. 물론 치매 진단을 받은 지 9년째 접어들었다. 다행인 것은 약이 그나마 듣는지 진행속도가 느린 것이다.
물론 가끔 언니 동생들도 오고, 나도 가서 잘 때도 있지만 거의 혼자 생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낮엔 주간보호센터에 가신다. 긴병에 효자 없고 다들 자신들의 일상이 바쁘다 보니, 가는 길이 멀기도 해서 오래 머물지는 못한다.
엄마가 78세에 치매가 왔는데 그전에 건망증이 있었는지는 내 기억에 없다. 같이 안 살았다 보니 세세한 것은 생각나지 않는다. 물론 아버지 돌아가시고 20년을 혼자 살아왔으니 많이 외로우셨을 것이다. 내색 안 하고 어디든 잘 다니긴 했지만, 밤에 혼자 아파트에서 자야 하는 것은 싫어하셨다.
그렇다고 누가 와서 함께 지낼 사람도 없었다. 다섯 형제가 서울에 셋, 부산에 하나, 나만 대구에 있지만 작년까진 시댁에서 어른과 함께 살았으니 마음만큼 몸은 자유롭진 못했다.
잊어버리는 문제로 큰 일을 당하진 않았지만 소소히 잘 일어난다. 그래서 자기 전에 다음 날 할 일을 메모하고, 또 갖고 나갈 것이 있으면 항상 현관문 앞에 갖다 둔다. 물론 그리하고도 잊고 나간 적이 많다. 무슨 행사나 수업이 있으면 미리미리 챙기고 급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실수가 따르는 일도 많다.
예전에 친정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가끔 낮에 잠시 친정을 들르는 경우가 있었는데 아버지는 용케도 알고 전화를 하신다.
“너 집에 다녀갔구나?”
“오, 어찌 아셨어요? “하고 물으면
“네가 두고 간 물건이 있네, 그것보고 알았지.”
낮에 살짝 다녀가면 아버지가 섭섭해할까 봐 아무 말 없이 종종 다녔는데, 어김없이 들통나고 만다. 예전부터 ‘내가 잘 까먹고 허당이구나.’로 위로하지만 뭔가 대책을 세워야겠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한 가지 방법을 찾았다.
1. 키
2. 지갑
3. 핸드폰
글자 수도 맞고, 123을 잊진 않을 것 같아 대문 앞에서 1 있나, 2 있나, 3 있느냐로 확인하고 대문을 닫았다. 사실 그전에는 잘 잊는 성격 때문에 대문을 살짝 당겨놓고, 차 있는 곳으로 가면서 확인해 보고 다시 돌아와 잊은 거 챙기고 문을 닫고 간 적이 많았다. 이제는 자신 있게 123을 외치고 대문을 세게 닫고 나온다. 일단 외출하는데 저 세 가지만 있으면 안심이다.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혹시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