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제: 종교
“정각화 보살님 손녀라고요?” 아무도 없는 큰 법당에 혼자 앉아 있는 나를 보고 스님이 어떻게 왔냐고 묻는다. 일이 있어 간 것은 아니었기에 외할머니 불명을 말씀드렸다. 외할머니는 그 절에 오래 다니셔서 대부분의 스님이 알고 있었다. 대학 2학년 때의 일이다.
그날은 엄마가 우리 가족을 나에게 맡기고 유럽으로 날아가고 돌아올 시간이 다 되어 갈 때쯤이었다. 처음엔 호기 좋게 ‘가족들 다 잊고 여행 잘 다녀오라’고 했다. 20일 정도인데 엄마 대타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동생들 도시락이며 아버지 뒷바라지를 하면서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있었다.
모두 집에 있는 일요일 그냥 발길 닿는 대로 나와보니 할머니, 엄마가 다니던 절이었다. 그 당시는 엄마가 결혼하기 전에 종교가 굳어지면 선택의 폭이 좁아지니 우리 자매들을 절에 못 가게 하실 때였다. 그저 초파일 날 한 번씩 따라다녔을 정도였다. 나도 신기했다. 자주 다니던 곳도 아닌데, 법당에 앉아 있었다. 스님이 또 묻는다.
“그럼 대광명 따님이네, 지금 여행 갔다고 들었던 거 같은데.” 하신다. 그러면서
“이리 장성한 딸이 있는데 왜 청년 법회에 나오지 않아?” 고 묻는다. 대답을 얼버무리고 있는데,
“거 참 신기하니 어젯밤에 대광명 보살을 꿈에서 봤거든.”
“ 아마도 따님을 만나려고 그랬던가 봐.” 비구니절이다 보니 신도들의 개인사도 좀 알고 계셨다.
그러면서 스님 방에 가서 차라도 한 잔 하고 가라 해서 따라갔다. 그렇게 나는 불교청년회에 들어가게 되었고 법회도 참석했다. 불자로 수계도 받고 봉사활동도 하고 ‘선하고 묘한 구슬이란 의미의 선묘주’란 불명도 받았다. 더불어 스님께 붓글씨도 배우고 차도 배우며 재미나게 청년회 활동을 했었다.
그러다가 선을 봐서 결혼하게 되었다. 남편은 종교가 없지만 할머님 어머님께서는 성당에 다니셨다. ‘종교는 자유롭게 믿어야지’ 하시며 강요는 하지 않으셨지만 마음은 불편했다. 그 뒤로 정해놓고 절에 다니지는 못하고 중요한 날만 챙기면서 조용히 다녔다. 그러다 보니 자꾸 멀어지게 되고, 같이 다니던 엄마마저 치매가 와서 나의 종교 생활은 흐지부지되어가고 있었다. 여행지에 가서야 사찰에 들러 법당에서 예의를 갖추는 관광 불교 신도가 되었다.
꼭 절에만 간 것도 아니었다. 성당에 가게 되면 촛불을 밝히고 마리아님을 부르고, 교회에 가서 찬송가를 부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것이 좋다는 생각도 한동안 했었다. 예전 열심히 다닐 때는 매일 108배도 하고 초하루도 지키면서 법문 듣고 기도도 했는데 오랫동안 잊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이 정토회가 좋다면서 나에게 권했다. 처음에는 그저 귓등으로 들었다. 그러다가 즉문즉설을 우연히 보면서 마음이 조금씩 열렸다. 이제는 맘 편히 절에 다닐 수 있는 시간도 되었다. 감사히 여기고 내 몸을 잘 돌보아 제대로 된 불자가 되어볼 시간이 왔다. 어느 사이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아파 절하기도 쉽지 않지만, 청년회 때 가졌던 불심을 이제 다시 피워보자.
더 늦기 전에. 좋은 스승님 만났을 때 인연을 이어야지. 이 나이가 되어도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지 답답할 때가 많다. 내 마음 밭에 좋은 말씀으로 거름도 뿌리고 돌보아야 할 시간이다.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려고 한 것이 무엇일지도 알아가고 싶다. 마음속 번뇌에 끌려다니지 말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수행자의 길을 따라가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