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제: 신체의 일부
우연히 뒤를 돌아보고플 때가 있다. 방금 웃으면서 헤어졌는데 멀어지는 그 사람의 뒷모습에서 못다 한 여운이 느껴질 때가 있다. 말로 다 못한 이야기를 등이 대신해 준다.
몇 년 전이었다. 아버님께서 밭일을 그만두고 아침마다 산책을 다니셨다. 걸어야 다리에 힘이 안 빠진다고 매일 걸으셨다. 몸이 약해지셔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말없이 뒤를 따라가 보았다. 어느 길로 산책하는지 알아둬야 될 것 같았다.
앞에서는 강직해 보이는 아버님의 뒷모습은 그 반대였다. 노인 그 자체였다. 아버님은 안 늙으실 줄 알았다. 워낙 철저하시고 강단이 있어서 백수는 끄떡없으리라 생각했다. 앞에서 뵐 땐 정말 그랬다.
신천을 따라 휘적휘적 걸으시는 아버님의 뒷모습이 아주 작아 보였다. 보통의 키와 몸무게를 갖고 계신데 그날따라 유독 키도, 등도 자그마했다. 그러고 보니 한 번도 뒤에서 부모님의 뒷모습을 관찰한 적이 없었다.
사람이 태어나 청년 장년의 시간을 지나 노년이 되면서 바뀌는 변화중 가장 큰 것이 등이 아닐까. 청년일 때 건장한 모습은 등짝만 봐도 알 수 있다. 믿음직하고 든든하다. 쌀 한 가마니도 지고 갈 듯한 기세로 듬직하다.
아버님 대학시절, 의대공부를 하면서 바쁜 시기엔 똥지게도 졌다고 하시며, 부모님을 돕는 일인데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다고 가끔씩 젊은 시절을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70세에 텃밭일을 시작하고 배추농사 지을 때 지게로 배추를 나르실 정도로 아버님의 등은 건강하셨다. 나이가 들고 세상과 가장의 무게를 감당하면서 등은 빛을 잃어가는 듯하다.
지금도 남편이랑 기세 좋게 싸우기도 하지만 돌아서 가는 남편의 등은 어느 사이 기운이 없어 보인다. 앞모습을 볼 땐 얼굴이 먼저 보여서 서로를 관찰할 수 있지만, 뒷모습을 보게 될 땐 등이 못다 한 말을 한다. 나이에 따라, 어떤 일에 종사했느냐에 따라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는 등의 언어는 생각보다 힘이 세다.
어느 정도 걸어가다가 의자가 보이니 앉으신다. 아마도 쉬어가고 싶으신가 보다. 먼 곳을 바라다보는 아버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지나고 보니 살면서 좀 더 많은 대화를 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언제 어떻게 돌아갈지 알 수 없는 이 길을 가고 있으면서, 우리는 천년을 살 것처럼 마지막 준비를 하지 않는다.
얼떨결에 통고를 받고 정신없이 일을 치르고 나면 회한이 많이 든다. 그나마 미리 작별인사라도 할 수 있기를 바래보지만 내가 모신 어르신 중 네 분이 갑자기 그날을 맞이했다. 나 또한 아무런 준비도 못하고 있다.
누군가의 등이 외소해 보이거나 힘이 없어 보인다면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전해 보는 건 어떨까? 알 수 없는 그날을 갑작스레 맞이하지 말고 미리 안부라도 물어보기를, 내가 나에게 먼저 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