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제: 의인화
어디든 가자 하면 군말 없이 데려다주고, 나의 어떤 이야기도 들어주고 다독여준다. 항상 내 옆에 있으면서 무슨 일이든 소문내지 않고 편안하게 해주는 나의 친구인 애마.
지금까지 내 명의인 차는 두 대였다. 첫 번째 차는 트라제로 당시 꽃가게를 하면서 내 차를 가지게 되었다. 그전에는 키가 작으신 아버님 차를 몰면 당겨서 앉아야 했고, 다리가 긴 남편 차를 타게 되면 다리를 쭉 뻗어서 운전해야 했다. 가끔 얻어 타면서 바꿔놓기가 불편하여 그리했더니 이제는 어지간한 차는 백미러도 안 바꾸고 운전한다.
트라제는 9인승이라 그 당시 아이들이 어려서, 놀러 갈 땐 뒷좌석을 펴서 편안하게 잘 놀았다. 또 남편이 선루프를 넣어주어 아이들이 아주 좋아했다. 특히 앞산을 드라이브할 때는 머리를 내밀고 소리도 지르며 신나 했다. 그리고 친구들과 모여서 조금 먼 곳으로 이동할 땐 내 차에 탔다. 승용차보다 많은 인원이 탈 수 있으니 항상 나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트라제엔 늘 사람들로 붐볐다. 사람뿐이 아니었다. 꽃이나 화분을 넣어도 높이가 있어 차에 싣기가 좋아 배달도 많이 다녔다.
아이들이 크면서 서울로 가고 나도 부지런히 트라제를 몰고 서울로 다녔다. 짐을 잔뜩 싣고 가기도 하고 음식을 해서 가기도 했다. 거의 13년을 타면서 23만 킬로를 뛰었다. 늘 타면서 묵묵한 내 차에게 ‘고맙다, 오늘도 잘 달려보자’ 했고 집에 돌아오면 ‘오늘도 수고 많았어, 고마워’하면서 늘 인사했다. 마땅한 이름을 못 찾아서 그냥 애마라 불렀다. 거기엔 내가 승마를 배워보고 싶었는데 하지 못한 아쉬움이 담겨있다.
그렇게 좋을 때도 힘들 때도 늘 나랑 함께했다. 속상한 일이 있어 울면서 운전할 때면 ‘너는 다 알지? 너는 말 안 해도 알지!’ 하면서 나의 설움을 토해내기도 했다. 트라제는 높아서 운전하기도 편했고 LPG라 부담 없이 잘 다녔다. 그러다 12년이란 세월이 지나면서 애마가 좀 힘들어했다. 신기하게도 내가 새 차를 알아보고 온 다음날 트라제는 멈추었다. 미안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정말 나랑 소통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친구를 보낼 때처럼 마음 아팠다.
그리곤 작은 I-30을 선택했다. 나이도 들고, 꽃가게도 그만두었고 해서 부담 없는 작은 차를 선택했다. 결혼할 때 남편이 빨간 차를 타고 있었는데 그 색이 마음에 들어 빨간색을 정했다. 이 차도 어느덧 10년이 지났다. 내 차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차 바꿨냐고 묻는다. 색이 아직도 새 차 느낌이 난단다. 난 ‘십년지기인데요’ 하면서 웃는다.
빨간 애마도 아들 군에 갔을 때 강원도 철원에 몇 번이나 다녀왔었다. 가볍고 연비 좋고 예쁘고 지금도 잘 타고 있다. 이렇게 나와 인연이 된 두 차는 나에게 참 소중한 친구다. 나의 어떤 부분도 말없이 받아주고 들어주는 소중한 친구 말이다. 손이 시리면 핸들도 따뜻하게 해 주고, 더운 날은 엉덩이도 시원하게 해주는 센스도 발휘한다. 아직은 빨간색이 아주 잘 어울리는 아이서티와 함께 보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