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제: 호칭
“며늘 아가!”
항상 아가로 따스하게 불러주시던 아버님, 더 이상 뵐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태어나면서 딸이었고, 누나였고, 언니였고 동생이었고 자식이었다. 학교 다니면서 선배였고, 후배였고, 제자였고, 동기였다. 그리고 결혼하면서 며느리가 되었다. 그리고 아내, 엄마도 되었다. 그 많은 호칭 중에서 아버님이 불러주시던 ‘아가’가 제일 좋았다.
신기하게도 아버님은 내가 아이를 셋 낳고 그들이 장성했어도 나를 부르실 땐 아가로 불러 주셨다. 하루는 남편이
“아가가 아니고 이제는 할머니 나이인데요.”라고 말했다. 그래도 아버님은 나에게
“ 미희가 할머니가 되어도 나에겐 아가다.”라고 하시며 여전히 나를 부르실 때 아가라고 불러주셨다.
시어머님은 나에게 ‘에미’라고 하셨다. 나는 그 호칭이 부담스러웠다.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늘 드는 호칭이었다. 하지만 호칭은 부르는 사람의 몫이니 들을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큰아이 낳기 전까지 내 이름을 불렀다. 지금은 결혼한 지 37주년이 지났지만, 효겸이 엄마다. 나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 다 ‘여보 당신’이라는 말이 안 나온다. 큰 아이 낳기 전까진 서로 이름을 부르다가 지금은 서로 큰아이의 엄마, 아빠다. 아래 두 녀석이 자기 이름은 왜 안 부르냐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냥 주야장천 큰아이 이름을 부른다. 아마도 큰아이와 둘째 사이 터울이 커서 그런 것 같다.
세상에 나와서 여러 호칭으로 불리었지만, 아가는 지금도 내 가슴속에 있다.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호칭이라 더 그립다. 그렇게 사랑을 주신 아버님 덕분에 나는 글을 쓰게 되었다. 아버님께서 병원에 입원하고 투병하시는 동안 내가 간병했다. 그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해 아버님과의 좋았던 추억을 글로 써서 지인의 카페에 올렸다. 그것을 읽고 사람들이 전자책으로 내 보라고 권해서, 아버님 덕분에 전자책 작가가 되었다.
30년 시집살이 중 20여 년 홀시아버지를 모셨으니, 아버님도 아마 내가 자식 같으셨으리라.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해 주시고 항상 “편한 대로 해라, 아가 시간에 맞춰서 해라.” 그렇게 말씀해 주셨다. 친정아버지보다 더 오래 같이 살았고 사랑을 많이 받았던 아버님이 주고 가신 선물이다.
이제 아가라 불릴 고운 며느리가 생기면 나도 그녀를 ‘아가’로 불러주어야겠다. 앞으로 시어머니, 친정어머니, 할머니, 외할머니도 되겠지만 나를 부르는 가장 좋은 호칭은 아버님이 불러주셨던 ‘아가’였다.
아버님 평안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