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보리 Aug 06. 2022

초보 농사꾼의 옹졸한 마음

만신창이 텃밭 농사일기

길을 다닐 때마다 다른 밭에 심겨 있는 옥수수만 눈에 들어온다.


'아니 저 집은 뭘 했길래 옥수수가 저렇게 자랐지?'


우리 집 애들(옥수수)은 심은지 벌써 한 달이 넘었는데 모종에서 그 상태 그대로 키만 자라서 꼭 나무젓가락 같이 생겼다. 그런데 길가에 있는 옥수수들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팔뚝만 한 줄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런가 자꾸 길가에 옥수수만 눈에 들어온다. 다른 집들은 옥수수가 얼마나 자랐는지, 대가 얼마나 굵은지 벌써 옥수수가 달린 곳도, 아직 작지만 튼실하게 자라는 곳도, 다 제 각각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우리 집 옥수수는 비실비실 하다는 것이다.


사실 난 '식물 파괴자'라고 스스로를 칭했었다.

식물을 기르는 데 에는 취미 같은 게 없었다. 분명 엄마도, 아빠도 집에 분재며 꽃나무며 참 열심히도 잘 기르셨는데, 나는 어째서 인지 식물은 좀 어려웠다. 물을 너무 많이 줘도, 너무 적게 줘도 안됐다. 기르기 쉽다던 다육이나 선인장 같은 애들도 나한테서는 못 버텨냈다. 아마도 식물들도 살아있는 생명이라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정성과 노력, 관심을 들여야 잘 살 수 있을 텐데, 도시에서 살 때에는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어서 그랬는지 그걸 잘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런 내가 농사를 짓겠다고 시골로 내려왔으니 내가 생각해도 조금 어이가 없긴 했다. 다만 땅과, 바람과 물, 햇빛이 있으니 화분에서 자라는 애들보다는 좀 더 자연의 힘에 맡길 수 있겠구나 하는 약간은 비겁한 생각이 조금 있었다.


텃밭 3년 차, 농사 1년 차.

사과는 아직 무지렁이라 아버님이 하라는 대로, 아주버님이 하라는 대로, 하면 되니까 내 실력이라고 할 법한 게 아무것도 없다. 남편은 나보다는 좀 더 낫긴 했지만, 시키는 것만 해봐서 남편도 많이 알지는 못했다.


텃밭은 자연의 힘으로 자라긴 하는데 그게 또 맘대로 잘 안됐다. 토마토는 순도 잘 못 치는 데다가 재크와 콩나무 같이 계속 자라서 괴물같이 무섭게 자라났고, 고추에는 온 동네 벌레들이 다 모여든 것 같았다. 또 풀은 어찌나 빨리 자라는지 돌아서면 자라 있는 것 같았다. 약을 치지 않겠노라고 계속 우기는 탓에 손으로 뽑거나 낫으로 쳐냈는데, 그것도 쉽지 않았다.


텃밭은 온전히 나와 남편이 기르긴 한 거니, 마치 우리의 실력을 보여주는 것만 같아서 자꾸 마음이 옹졸해졌다.


처음엔 땅을 탓했다. "우리가 비료를 너무 안 줬나 봐", "땅에 양분이 하나도 없나 봐"라고 이야기하며 잘 자라지 않는 채소들의 핑곗거리를 찾았다. 그런데 거름이 많이 필요하다던 호박이 아무것도 없이 마당 반을 점령할 만큼 자라나는 걸 보니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다음엔 우리가 혹시 종류를 잘못 심었는지, 모종을 잘못 산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사실 둘 다 알고 있었다. 우리의 관심과 실력이 부족하다는 걸.


애써 변명과 핑곗거리를 대 가며 우리의 부족함이 원인이 아니길 얘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올해 텃밭도 바쁘다는 핑계로 잘 돌보지 않아서 또 토마토는 사방팔방 괴물같이 뻗어나갔고, 큰 토마토는 병이 와서 열매가 달리자마자 모두 뽑아버렸으며, 약을 안 친 탓에 상추는 뒷면에 벌레가 빼곡히 있는 걸 목격하고는 먹지 못했다. 그 와중에 잘못 산 모종도 있었다. 상추라고 사온 모종은 배추였고, 벌레들의 좋은 밥이었다. 덕분에 채소 배틀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버린 게 절반은 됐다. 텃밭이 만신창이다.


그 와중에도 옹졸한 초보 농부는 제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여기저기 남의 텃밭을 기웃거리며 어떻게 저렇게 잘 기르는지, 우리 밭에 있는 만신창이 작물들과 자꾸 비교를 하게 된다.



그래도 호기심과 도전정신은 뛰어나서, 자꾸 길에서 뭘 캐다 텃밭에 심기도 하고, 텃밭에 심으려고 씨앗을 모아 오기도 한다. 또 누가 나눠 준다고 하면 신이 나서 받아다가 마당에 옮겨 심는다. 올해는 허리 정도밖에 자라지 않았지만 해바라기도 심었었고, 남편 친구가 '방아'라는 풀도 줘서 심고, 길에 나 있던 꽃도 마당에 옮겨 심었다.  물론 모두 조금 이상하게 자랐지만 말이다.



만신창이가 된 텃밭을 보고 그래도 내년에는 이렇게 저렇게 심어봐야겠다며, 남편과 함께 벌써 내년을 기약해 본다. 큰 토마토는 심지 말고, 옥수수는 집 뒤쪽으로 심기로 하고, 감자는 다시 씨를 사다가 심고, (작년에 수확한 감자를 심었더니 씨감자 만한 게 나왔다.) 오이는 좀 늦게 심기로 했다.


그래도 텃밭에서 막 딴 싱싱한 채소들을 먹을 때면 옹졸한 마음이 조금 풀어진다.


"이렇게 저렇게 하다 보면 나아지겠지" 둘이 텃밭을 보며 허허 웃고 말았다.



가느다란 줄기에서 아주 조그만 열매가 달렸다. 알알이 찬게 신기하다.



농부 속담 '콩 심은 데 풀나고, 팥 심은 데 풀난다'. 풀밭이 된 콩밭




텃밭과 관련된 다른 글 보러 가기


* 채소 배틀 이야기

* 잡초와의 싸움 


                     

작가의 이전글 계절의 냄새를 맡을 수 있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