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과 한강 사이
우리는 가볍게 치맥을 먹으러 갔다. 분위기 있는 펍 느낌의 호프였다. 자리를 안내받고 기본적인 후라이드를 한 마리 시켰다. 순살이 있었지만 뼈를 주문했다. 소개팅이고 나발이고 일단 치킨은 뼈지 암.
테이블 모양이 옆으로 길어서 마주 보고 있는 그와 나의 간격은 좁은 편이었다. 나는 편안한 게 말을 이어 갔다. 그는 리액션을 잘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는 솔직히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도 편안하다고는 했지만 약간의 긴장을 한 모양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그가 내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애꿎은 포크로 치킨을 찢어 먹더니 답답했는지 나중에는 손으로 집어 들었다. 치킨에 집중하는 눈 빛. 나와 눈을 좀 마주치며 이야기하는가 싶다가도 3초가 넘어가면 빠르게 시선을 피하는 게 느껴졌다.
약간의 충격을 받았던 지점은 '쪽쪽 거림'이었다. 그는 손가락에 묻은 치킨 양념은 쪽쪽 빨았다. 나의 눈은 동그라졌다. 뭐지? 내가 벌써 이렇게 편하다고? 양념을 쪽쪽거리는 모습에 적지 않은 당황을 했지만, 이상하게 비호감으로 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그는 외국 생활을 오래 하다 한국에 왔는데 나는 이를 문화 차이로 이해하기로 했다. 그래 양놈들은 치킨 먹고 손가락 빠는 게 매너인가 보다.
치킨 양념빨기에서 잠시 머뭇거렸지만 맥주 알코올의 기운으로 산책을 갔다. 그는 술을 잘하지 못했고 맥주를 조금 먹으니 얼굴이 벌게졌다. 카페에선 섹시한 워커홀릭, 치킨 먹을 땐 학원 다녀온 중딩이 따로 없는데 또 술이 들어가니 귀여운 루돌프가 됐다. 이 남자 정체가 뭐냐!
우리는 한강을 걸었다. 그는 숄더백을 매고 있었는데 그 가방이 아주 무거운지 어깨 한쪽이 살짝 굽어있었다. 과장 좀 보태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걸음걸이 같았다. 약간의 연민이 들었다. 과로에 절어있는 K직장인을 상징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나는 척추를 바짝 피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초면에 실례인 것 같아 속으로만 생각했다. 대신 내 척추를 바르게 피고 걸었다.
한강을 가는 길에 그는 말을 놓는 것이 어떻냐고 제안했다. 갑자기? 이것이 알코올의 힘이었던가. 나는 알겠다고 했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진 않았다.
"그럼 제가 뭐라고 부르면 편하실까요? 음.. K오빠?"
수줍은 그의 입이 갑자기 귀에 걸렸다. 그는 벌게진 루돌프 코를 만지작 거리며 그렇게 불러주면 좋다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했지만 그 이후로 '오빠'라는 말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고 말만 놓았을 뿐이었다. 연상을 많이 만나보지 않은 탓에 오빠라는 말은 아직 내게 낯선 단어였다.
한참을 걷다가 한강 둔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우리 발 밑에는 바로 강이 흘렀고 뒤로는 사람들이 있었다. 앞에는 다리가 보이고 조용히 이야기를 하기엔 최고의 공간이었다.
우리는 옆으로 나란히 앉았는데 치킨집에서보다 더 가까웠다. 마주 보는 것과 옆으로 앉는 느낌은 확실히 달랐다. 시선은 편안하지만 근육은 더 긴장된 그런 느낌이랄까.
그는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내게 줄 게 있다며 가방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주섬주섬 뭔가를 하나 꺼내 들었다.
-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