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만남에서
첫 만남 이후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날짜는 잡히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와 나는 모두 직장이 바쁜 축에 속했다. 개인적으로 애프터 만남 전까지 별 시답잖은 카톡을 주고받는 것은 질색이다. 이 상황을 빠르게 종결짓고 다음 만남 때까지는 연락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별로여서는 아니었다. 그냥 그런 카톡으로 신비감이 떨어지는 게 싫었을 뿐.
그는 텀이 좀 길었지만, 계속해서 '물음표'로 끝맺으며 성심성의껏 메시지를 보냈다. 안 되겠다. 이렇게 이어가는 카톡은 내 스타일이 아니다. 확실히 해야겠다. 나는 애프터 날짜를 잡기 위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저는 K 씨를 한 번 더 만나보고 싶은데요, 혹시 이 날짜에 괜찮으신가요?"
그는 나의 명쾌하고도 깔끔한 일처리(?)에 사뭇 감동받은듯한 반응이었다. 이남자, 연애나 썸을 많이 안타본 티가 난다. 그래 그게 매력이지. 선수보단 어설픈 게 귀엽단 말이지. 그렇게 금요일로 날짜를 잡고 우리는 4일간 톡을 하지 않았다.
금요일 저녁이 됐다. 그와 나의 근무지역은 같았다. 그래서 인근 카페로 약속을 잡았다. 그 카페까지 그 사람의 직장과 나의 직장이 불과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라는 건 신기했다. 어쩌면 그동안 수없이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퇴근이 조금 일렀고 그는 처리되지 못한 업무가 있었다. 그는 상사에게 붙잡히지 않으려고 일찍 나와 카페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하게 일이 길어졌다며, 죄송하지만 여기로 오실 수 있냐고 물었다.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였기에 나는 흔쾌히 YES를 했다. 그렇게 카페로 향했다.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화장실에서 몇 번 화장을 다시 고치고 머리를 묶었다 풀었다를 반복했다. 두 번째 만남은 퇴근 후 만남이기 때문에 약간은 가벼운 커리어우먼 스타일의 옷을 입었다. 화이츠 셔츠를 입으니 얼굴이 조금 더 화사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카페로 향했다. 카페는 넓었고 마치 <월리를 찾아라>처럼 수많은 사람들 중 소개팅 남을 찾아야 했다. 과연 누굴까? 멀리서 바라보는 소개팅남은 설렐까? 제삼자 시선을 유지하며 주변을 두리번대기 시작했다.
낯익은 한 사람의 얼굴이 레이더망에 잡혔다. 그는 캐주얼한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살짝 인상을 쓴 채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가려진 모습에서도 섹시함이 묻어 나왔다. 만약 이 카페 안에 있는 손님 중에서 가장 사귀고 싶은 남자 한 명을 골라야 한다면? 했을 때 나는 주저 없이 저 소개팅 남을 꼽을 거라고 생각했다. 일하는 그의 모습은 유독 섹시했다. 왜 여자들은 남자들의 집중하는 모습에 홀리는 걸까.
멀리서 그를 보며 살짝 멍 때렸던 나는 정신 차리고 천천히 그의 앞에 가 섰다.
".. 안녕하세요!"
그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 위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무장해제 웃음이 됐다. 인상 쓰다가 갑자기 활짝 웃으니까 왜 이렇게 섹시하냐. 뭐지, 나 원래 섹시한 남자를 좋아했나? 아니면 나이가 먹어서 주책인 건가...
그는 죄송하단 말을 거듭하며 10분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는 빠르게 일처리를 했다. 나는 알겠다며 무심히 핸드폰을 바라봤다. 핸드폰을 하는 '척' 했지만 모든 신경은 그에게 가 있었다. 아마 정수리에도 눈이 달렸다면 그런 느낌일 거다. 그의 일하는 모든 모습을 세밀하게 내 오감이 관찰했다.
문득 생각한다.
쳇 이거, 자기가 아는 거다. 자기가 일할 때 섹시한 거. 그래서 어필하려고 일부로 일 덜 끝낸 거 아냐?
몰라 어쨌든 호감이었으면 됐다. 그는 잽싸게 일을 마치고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다고 했다. 우리는 애프터 메뉴로 가볍게 치맥을 하기로 했다. 자리에서 일어났고 내가 앞서 나갔다. 왠지 뒤통수가 따가웠다. 내가 그를 멀리 스캔했던 것처럼, 그도 지금 뒤에서 내 몸매를 훑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 서로 해야지 암. 난 마음에 들었는데 그쪽은 어땠으려나? 스키니를 입긴 했습니다만..
- 다음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