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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꿀 Jun 18. 2021

엄마와 모텔에 가다

비싼 밥은 먹으면서도 잠은 왜 허름한 모텔에 갔을까?

아빠가 화가 많이 났을 때, 나는 직장에서 엄마의 다급한 전화를 받는다. "너희 아빠 오늘 난리 났다." 나는 이 열 마디로. 이미 엄마는 아빠에게 맞고 도망을 쳐서, 이웃집에 숨어 있다가, 아빠가 집을 비우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몰래 집에 들어가서, 옷가지 · 속옷 · 현금 · 화장품 몇 가지를 챙겨 나와,  어디선가 아빠를 피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안다. 나는 남아서 일을 하지 않고 퇴근시간에 퇴근을 한다. 집과는 거리가 있는 어느 도로에서 만나자고 한다. 나는 아빠를 마주칠까. 늘 가는 방향이 아닌 다른 쪽으로 마티즈를 운전한다. 초조해져 있는 엄마의 얼굴을 발견하고 차를 멈춘다. 엄마는 옆 자석에 올라탄다. 우리는 그 순간 안도한다.


엄마에게 "맞았어?"라고 물어본다. 엄마는 "피할 수 있었는데 갑자기 그래서" 또는 "그럴 것 같아서 퍼뜩 도망쳐 나왔다" 라던가 하는 말을 한다. 그런 대화는 참 마음이 무너지는 대화이다. 예전에는 이런 날. 엄마와 나는 한참을 밖에서 돌다 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다행히 그러다 그냥 넘어가는 날도 있고 한밤중 다시 난리가 나는 날도 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직장에 다니면서 많지 않은 월급을 받으면서부터는 나는 엄마에게 애써 웃으며 "엄마! 오늘 맛난 거 먹자" 하고 음식점을 찾아 저녁을 산다. 한우 소고기를 먹기도 하고, 갈비를 먹기도 하고, 피자를 먹기도 하고 그렇게 저녁 식사를 다하고 우리는 모텔을 찾아갔다. 지금은 좋은 모텔도 많더라만. 15년 전 엄마와 내가 갔던 모텔은 많이 낡고 허름한 곳이었다. 엄마와 내가 가면 주인장은 다소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지만 이내 우리에게 열쇠를 주고 몇 층이라고 알려주었다. 엄마와 나는 TV를 일부러 크게 틀고 소곤소곤 대화를 시작한다. 식사할 때 차마 하지 못한 이야기. 오늘 무엇 때문에 아빠가 화가 났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론 그걸 다 들어도 나는 아빠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시집간 두 언니들이 있지만 엄마와 나는 연락하지 않는다. 그들이라도 편안한 밤을 보내길 바라기 때문이다. 큰언니 집은 보통 거리상 우리가 가는 여러 모텔들과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다. 큰언니의 집은 브랜드 아파트이다. 결혼하면서 시댁에서 집을 해주었다. 둘째 언니는 거리가 아주 먼 타 지역으로 시집을 갔다. 출가외인. 그 말이 아니어도. 결혼 후에도 이 지긋지긋한 폭력과 싸움을 지켜보는 일 그만하고 싶은 마음일 것 같아 엄마와 나는 연락하지 않는다. 그런데 참 오묘하게도 말을 하지 않으니 언니들은 모르는 듯했다. 한 번씩 "여전히 아빠 그러느냐. 네가 마지막에 남아 혼자 힘들지는 않으냐"라는 안부를 물어올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을 탓하기는 우리 모두 너무 힘들지 않았냐는 생각에 나는 표현하지 않는다.


그러 모텔 침대의 이불, 눅눅한 공기, 불안해서 계속 쳐다보는 문고리.. 순간 삐쭉한 마음이 솟아 나온다. 같은 가족이어도 아주 가까운 거리에 깨끗하고 넓은 아파트에 사는 언니가 있고, 나는 여전히 이곳에 있구나 하는. 지나고 나서 우리가 모텔에 갔었다는 걸 알고 "다음에는 연락해" 아니면 그럴때 쓰라고 "용돈 챙겨줄까" 하는 말은 바라지도 않았다. "그때는 그래도 셋이었는데, 이제 너 혼자 힘들지. 너가 고생이다" 걱정해주는 말 한마디를 듣고 싶었다. 말로 꼭 전하지 않아도 "너가 고생한다. 엄마 잘 챙겨줘" 하는 그런 마음을 받고 싶었다. 하지만 가끔씩 연락되는 언니들은 조카들이 태어났는데 이모 선물 없냐고.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조카들은 큰언니 쪽 둘, 작은언니 쪽 셋, 언니들은 당연한 듯 선물을 받았다. 사회 초년생 얼마 되지 않은 월급은 차 할부금을 빼고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오랜만에 내려온 둘째 언니는 무엇 때문인지 모른 채, 삐진 채로 올라가기도 했다. 그때 나는 기댈 곳이 없었다. "다들 예전에 어떻게 살았는지 잊었나 봐" 엄마와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래 탓할 수는 없지만, 왜 마음으로라도 공감해주지 않는 걸까. 다 알면서 예전에 다 겪었으면서.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이 언니들에게 못할 짓인지, 고민도 마음이 힘들다.


치매를 걱정하던 엄마가 담도 으로 돌아가신 이후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그때 비싼 밥은 먹으면서도, 잠은 왜 허름한 모텔에 갔을까? 호텔이나 조금 더 좋은 곳으로 가서 여행 온 듯 기분 내고 그랬으면 어땠을까? 직장인 대출을 알아보고, 을 내서, 보증금 500에 월 25만 원, 나라도 그런 월세를 얻을 생각은 왜 못했을까? 서울 지역이 아니라서 그 정도면 충분히 깨끗하고 좋은 방을 구했을 텐데.. 


물론 엄마는 집을 아예 나올 생각은 하지 않았다는 걸 안다. 엄마는 모텔에서 아빠에게 걸려오는 모든 전화를 받으셨다. 술이 채서 욕지거리. "니 죽인다! 거짓말인 거 같냐!" 하는 말들을 들을 걸 알면서도, 혹시라도 놓치면 시집간 딸 아니면 사위에게 전화할까 봐. 딸의 직장에 전화를 할까 봐 걱정하셨으니깐 말이다. 그래서 엄마와 나는 그 낡고 허름한에 모텔에서 큰 목소리 한번 내지 못 하고 소곤소곤. 다음날 내가 출근하러 나올 때 "엄마 점심 꼭 챙겨 먹어" 하고 엄마만 혼자 두고 나왔던 기억들이 만들어졌겠지. 나는 어느 순간 그 기억이 떠오르면 마음이 아프다 못해 멍이 든다. "그래도 너희 아빠는 너희들 다 대학 보내줬잖아. 훨씬 더 심한 사람도 더 많다" 엄마가 늘 말해왔던 그 말들 때문에. 나는 혼자가 된 아빠에게 기본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게 옮은 일일까. 한 번쯤은 화내야 하지 않을까.

엄마 생각은 어때?

거기는 좋은 곳이지? 편안하면 좋겠어.

사랑해 나의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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